120만원 빌렸다 알몸사진까지 내줬다…'연이자 3000%' 지옥 [월간중앙]
3000% 넘는 사채시장 활개… 알몸 사진 유포하며 성착취까지
막다른 길에 봉착한 서민들, 수백만원대 비대면 온라인 대출 ‘덜컥’
초과 상환해도 협박 문자, 채무자 일상 무너뜨려 극단 선택 내몰아
연이율 3000%를 우습게 상회하는 불법 사채가 우리 사회 한구석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고금리에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막다른 길에 봉착한 서민들의 급전 창구가 된 탓이다. 길바닥에 널려 있는 ‘일수대출’과 같은 불법 대출광고 명함은 이미 낯익은 풍경이 됐다. 문제는 채무자들이 대출을 제때 못 갚을 경우 이들의 추심이 도를 넘어 살인적으로 변해간다는 데 있다. 단 1초라도 변제시간을 늦춰주는 도의는 없다. 협박과 폭행도 모자라 채무자를 몰아붙여 알몸 사진을 받아낸 뒤 유포하기도 한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악착같이 살려고 무슨 짓이든 한다. 훔치든, 가족한테 빌리든 돈만 갚으면 된다. 추심은 그 불씨를 댕겨주는 것이다.” 한 사채업자의 말이다. 월간중앙은 빚 독촉에 시달리는 채무자들을 통해 불법 사채 시장의 실태를 추적했다.
4월 3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한 카페에서 채권추심 업자에 의해 알몸 사진이 유포된 유성은(가명·30대)씨를 만났다. “살려고 돈을 빌렸는데 그게 죽는 돈이었다.” 유씨가 자조하듯 말했다. “내 알몸 사진이 사업상 만난 도매상 사람들에게까지 유포됐다. 다들 오래 본 사이여서 이해해주겠지만… 어쨌든 지금부터 제가 일일이 만나서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유씨는 지난해 말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소송을 시작하면서 급하게 집을 나왔다. 당시 사업자 명의가 남편으로 돼 있어서 기존 사업장을 폐업하고 새로 꾸려야 하는 부담까지 짊어졌다. 대출중개 사이트에 급전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는데 하루도 안돼서 업체 4곳에서 연락이 왔다.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사채업체들인데, 정식 등록된 곳은 없었다. 그들 모두 ‘30·50’ 대출을 제안했다. 30만원을 빌리고 일주일 뒤 50만원을 갚는 것이다. 6~7년 전부터 사채시장에서 흔히 쓰여 온 수법이다. 무려 3476%에 달하는 연 이자율이 맹점이다.
“못해도 500만원은 필요한데 그 이상은 안 되느냐고 했더니 ‘잘 갚는 모습을 보여주면 우리도 믿고 더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4곳에서 총 120만원을 빌리고 일주일 안에 200만원을 갚기로 했다. 일주일 단위로 연장하는 이자는 20만원이었다.”
그들은 담보를 요구했다. 유씨의 신분증과 주민등록초본,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가족과 지인 10명을 포함한 연락처를 요구했다. 차용증도 썼다. 빈 종이에다 그들이 보낸 글을 옮겨 적은 뒤 얼굴과 함께 나오도록 사진을 찍어 보냈다.
당초 유씨는 빚 청산 일자를 석 달 후로 염두에 뒀다. 장사를 시작한다고 해서 다음 달 바로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일단 자리를 잡아야 조금씩 수익구조가 전환될 것이었다. 유씨의 채무 금액은 석 달만에 200만원에서 1080만원으로 불어났다. ‘신속대출’이라는 편의만 눈에 들어왔지, 그 배후에 숨어 있는 고리대의 덫은 생각하지 못했다.
사건은 넉 달째에 터졌다. 다른 3곳은 거래를 청산하고 남은 1곳에서만 채무 관계를 이어간 유씨였다. 사업장에서 정산 문제가 생겨 1시간만 납입 시간을 늦춰달라고 요청하자 사채업자는 추가적인 담보로 반라의 사진을 요구했다. “무슨 소리냐고 따지니까 속옷을 입은 사진을 보내라고, 포즈도 이렇게 취하라며 텔레그램으로 예시 사진까지 보냈다. 거기에는 20대 초반의 어린 여자가 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후 이자 납입이 늦어질 때마다 사채업자는 유씨에게 다른 사진을 요구했다. 수위도 높아졌다. 호칭은 어느새 ‘고객님’에서 ‘씨XX’로 바뀌었다. “그때부터는 말을 안 들으면 가족과 지인들에게 모두 터뜨릴 거라고 협박했다. 그게 무서워서 요구를 들어줬다. 마지막으로 알몸 사진을 찍어 보내라면서 사채업자가 보낸 예시 사진에는, 처음에 봤던 여자애가 다 벗은 채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걔도 나처럼 피해자였던 거다.”
유씨와 해당 사채업자 간 거래 내용을 보면 초과 대출금액만 400만원이다. 그럼에도 사채업자는 상환 일자가 다가올수록 하루에 수십 번씩 전화를 해댔다. “하루 남았다. 이번에도 늦으면 사고로 간주해 전부 퍼뜨린다. 경찰에 신고해봐라. 다음은 네 가족이다”라고도 했다. 유씨가 시간을 어긴 날 그는 “네가 뿌리라고 아주 재촉하는구나”라는 문자를 남긴 뒤 유씨의 가족과 지인은 물론, 유씨의 인스타그램팔로어 계정 500개에 유씨의 알몸 사진을 유포했다.
“죽으려고 했다. 도로변에서 달리는 차에 콱 뛰어들려고. 그때 웬 할머니가 말렸다. 얼굴에 귀신이 씌어 있었다고 하시더라….”
대출 금액 늘리는 조건으로 알몸 사진 요구
김씨는 사채업자를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지만 사채업자의 인적사항을 전혀 모르는 상태여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원금과 이자를 초과 변제했는데도 나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빚 독촉 연락을 지금까지도 해대고 있다. 너무 무섭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피해자는 늘고 있지만 수사는 쉽지 않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성착취 추심은 SNS나 온라인으로 알몸 사진까지 유포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악성 사이버범죄로 분류된다. 범행 아이피와 사건 간 연결고리를 추적해 용의자를 특정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사채업자가 채무자에게 범죄 혐의를 덧씌우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통장 대출’이다. 인천 부평구에서 만난 윤종수(가명·30대)씨도 대출중개 사이트에서 불법 사채업자와 연결됐다. “솔직히 도박 빚이다. 판돈 자체가 크지 않아서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돈이 들어오는 사채에 손을 댔다. 정신 차리고 보니 문어발 식으로 8곳에 돈을 빌리고 있었다. 한 주에 나가는 연체 이자만 160만원이었다. 온갖 욕설을 들어가며 겨우겨우 갚아나가던 찰나, 1곳에서 통장 명의를 넘기면 더 많은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윤씨의 말이다.
채무 못 갚으면 불려가 범죄행위에 이용당하기도
대포통장은 금융 경로의 추적을 피하고 범죄수익을 현찰로 수거할 수 있어 각종 범죄에 활용되기 때문에 주의가 요구된다. 천호성(38·법무법인 디스커버리) 변호사는 “통장을 넘겨준 사람은 범죄 공모자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비대면 사채업자는 목소리를 제외하고 모든 게 차명이어서 실체가 드러나지 않지만, 통장 명의자의 신원은 아주 뚜렷하다. 진범은 빠져나갔는데 피해자만 범죄 가담자로 수사기관에 붙들려 조사받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대개 불법 사채업체는 3~6명으로 구성된 점조직으로 운영된다. 이들 개개인이 ‘BNK대부’, ‘용기대부’, ‘소중대부’ 등 영업을 뛸 때마다 상호를 달리한다고 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채무자는 “사업을 확장하려고 급하게 사채를 빌려 썼지만 매주 몇 십만원씩 완납 처리하는 게 너무 번거로워 거래를 끝내겠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동료를 붙여서 금액을 맞춰주겠다. 정 부족하면 다른 업체도 소개해주겠다’면서 업자들을 거래에 끌어들였다. 그러는 동안 총 30군데로 늘어났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1개 조직에서 나를 돌려쓴 것 같다”고 설명했다.
도저히 채무를 갚지 못할 형편이 되면 불려가서 범죄행위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채권 추심업자들이 합숙하는 오피스텔을 다녀온 적이 있다는 김경백(가명·40대)씨가 경험담을 들려줬다. 김씨는 이자 상환에 거듭 실패하자 어느 날 사채업자로부터 경기도 구리시의 한 오피스텔로 찾아오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했다. 김씨는 “그들로부터 1000만원을 넘게 뜯긴 데다 빚 갚느라 살림살이에 필요한 가재도구까지 전부 중고로 팔아치웠다. 여기서 무엇을 더 잃겠느냐는 심정으로 갔다”고 한다. 오피스텔 건물에 도착하자 40대쯤 되는 남자가 나와 입구를 서성이던 김씨를 데리고 들어갔다. 8평이 안 되는 방에는 2명의 40대 남성이 더 있었고, 그들은 김씨에게 나흘 정도 자신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 하면 된다고 했다. “옆에서 추심 과정을 지켜보는데, 나도 당했지만 참 몹쓸 짓이었다. 채무자한테 전화 걸어서 욕지거리를 내뱉고 안 통하면 그 부모에게 따지고… 물귀신도 그런 물귀신이 또 있을까.”
보이스피싱 조직과 흡사, 검거 쉽지 않아
이틀 뒤 새벽, 한 명은 돈을 인출하러 나가고 다른 두 명은 곯아 떨어진 틈에 김씨는 사무실을 뒤졌다. 거기서 대포폰 10여 대를 발견했는데, 그중 1대를 살펴보니 카카오톡에 뜬 피해자만 60명이 넘었다. 한 달에 최소 5000만원에 육박하는 범죄 수익 금액이었다. 김씨는 그날로 오피스텔을 뛰쳐나왔다. 며칠 뒤 다시 들렀을 때는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관리인에게 알아보니 포장 이사를 불러 급하게 빠져나갔다고 한다.
“총책이 수익의 60%를 챙기고 나머지를 각자 분배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기동(42)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의 설명이다. 이 소장은 2013년부터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위한 피해자 자문은 물론, 최근에는 불법 사채 피해자를 구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 의뢰 들어온 건수가 1100건을 넘을 정도로 활개를 치고 있다고 했다. 이 소장은 채권 추심 조직의 활동 패턴도 특정했다. “전주 노릇을 하는 ‘총책’을 정점으로 영업을 뛰는 ‘작업팀’, 대포통장에서 현금을 수거하는 ‘인출책’으로 나뉜다. 유사 보이스피싱 조직인 셈이다. 이들의 생활 패턴을 보면, 오전 11시부터 피해자들에게 수금 문자를 보내고 오후 1시에 출금하는 게 일반적이다. 수사기관이 일망타진하려면 이들이 주로 몇 시에 어디의 ATM기를 사용하는지 특정해서 미리 덫을 놓아 타이밍을 보고 덮치는 수밖에 없다.”
경찰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도 악성 민생범죄인 불법 사채를 엄단하기 위해 특별 단속에 들어간 상태다. 다만 이들의 수법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 여타 지능범죄 조직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수사가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불법 채권추심 조직은 보이스피싱이나 재테크 사기와 달리, 특별한 장비 없이 대포폰만으로도 범죄 활동을 이어갈 수 있기에 조직 거점도 뚜렷하지 않아 수사가 쉽지 않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지능범죄팀장은 “단속하는 속도보다 저들이 달아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1개 조직이라도 총책부터 중간책, 단순 가담자까지 일망타진하려면, 이들 신원과 활동반경을 웬만큼 특정하는 수준까지 수사가 진척돼 있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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