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K리그1도 접수한 이진현 "더브라위너처럼 알고도 못 막게 할 겁니다"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대전하나시티즌의 97년생 미드필더 이진현은 2021년까지 비슷한 결의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왼발을 이용한 킥과 기술은 탁월한데,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선수'. '순간순간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하지만 경기와 시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쉬운 선수'.
이미 2018년에 A대표팀에 뽑힐 정도로 가진 재능은 인정받았지만 소속팀에서조차 확실한 주전감이라고 여겨진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오스트리아빈, 포항, 대구를 거치며 한창 빛나야 할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던 2021년 이진현은 대전 유니폼을 입고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함께 한 이민성 감독과 재회했다.
대전이 8년 만에 K리그1으로 돌아온 2023시즌. 지금 이진현은 대전의 가장 빛나는 선수고, 리그 전체를 뒤흔드는 지배자가 될 기세다. 지난 시즌 K리그2 27경기에서 4골 5도움(승강 플레이오프에서 2도움 추가)을 기록했는데, 올 시즌은 1부 리그에서 9경기 만에 3골 4도움을 올리고 있다. 도움 공동 1위, 공격포인트 공동 1위다. 이민성 감독은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진현이가 축구에 눈을 떴다. 본인 노력도 굉장했고, 팀과의 시너지도 잘 맞으면서 자신감이 쌓여 올 시즌 활약으로 폭발 중이다"라고 평가했다.
2023시즌 매 경기 인상 깊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이진현은 26일 열린 9라운드 전북 원정에서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후반 28분 코너킥 상황에서 왼발로 강하게 감아 찬 공이 그대로 전북 골망으로 빨려 들어갔다. 신태용, 고종수, 현영민 등 K리그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키커들이 보여준 진기명기였다. 이날 중계는 역시 킥에 일가견이 있었던 김형범 JTBC 골프앤스포츠 해설위원이 맡았는데 이진현의 왼발 킥에 연신 찬사를 보냈다. 이날 오전 유럽 출장 일정을 마치고 바쁘게 전주로 내려와 경기를 지켜본 위르겐 클린스만 A대표팀 감독에게도 강한 인상을 심어 줄만한 장면이었다.
이진현은 경기 후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노리고 찬 득점이었다고 설명했다. 특별히 연습했던 건 아니지만 그런 장면을 즉각적으로 시도해 골을 만들 정도로 그의 킥 감각은 현재 절정에 도달해 있다.
"이전에 따로 연습했던 건 아니었어요. 즉석에서 시도한 거죠. 그런 노림수는 있습니다. 골키퍼가 예측해서 나오면 일부러 강하게 파포스트로 붙여서 차는 걸 선호해요. 앞서 두 차례 코너킥을 할 때 상대 골키퍼(김정훈)가 니어포스트로 나오길래 세번째는 직접 노려야 되겠다 싶어서 그렇게 찼습니다."
"당연히 상대가 저를 분석하고 방향을 예측하고 나오겠죠? 저는 세트피스를 준비하는 것도 있지만 그 상황이 왔을 때 모두의 위치를 다 보고,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제 킥 감각만 유지하면 세트피스에서 골을 더 노릴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큽니다."
대전 팬들에겐 지난 시즌 이진현의 왼발 실력을 제대로 실감한 명경기가 생생하다. 2022년 5월 홈에서 열린 부산전에서 이진현은 후반에 팀이 기록한 4골을 모두 자신의 왼발로 이끌었다. 그가 오른쪽에서 감아 올린 코너킥 3방에서 골이 나왔고(2도움 인정), 마지막 역전골은 박스 안에서 침착하게 구석을 노린 왼발 슛이었다. 3골을 먼저 허용했던 대전은 이진현의 원맨쇼로 4-3 역전승을 거뒀다. 이진현은 그때보다도 현재 킥 감각에 더 자신감을 보였다.
"요즘 킥 감각이 제 축구인생에서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작년 하반기부터 슈팅 연습, 킥 연습을 계속 했거든요. 습관이 됐어요. 지금도 이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연습을 계속 하거든요. 팀 훈련 후 거의 30분가량 무조건 하고 들어가요. 30개를 차서 넣어야 해요. 그 이상을 하면 무리가 오니까 매일 그 정도 횟수로 감을 유지합니다."
상대가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킥. 현재 이진현의 확고한 목표다. 그는 왼발잡이는 아니지만 맨체스터시티의 케빈 더브라위너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팔색조 투수처럼 다양한 구질의 킥을 상황과 위치에 따라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의 선수가 되길 원한다. 조유민, 티아고, 김민덕, 공민현 등 박스 안에서 자신에게 좋은 타깃이 되어 줄 움직임과 제공권을 지닌 동료들이 있는 것도 킥의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원동력이다.
"더브라위너 선수를 보면 다양한 구질을 적재적소에 써요. 탑스핀(떨어지는 공), 감아차기, 무회전. 위치와 상황에 맞춰서 판단하고 그걸 정확하게 구사하는 게 가장 좋다고 봐요. 상대가 예측하면 그보다 한 수 더 앞서고 싶어요. 모든 구질의 킥을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쓰는 게 제 목표입니다."
올 시즌 이미 이진현 스페셜 모음집이 가능할 정도로 왼발을 이용해 멋진 장면을 여러 차례 만든 이진현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바로 올 시즌 K리그 '이달의 골' 첫 수상을 만든 수원전 원더골이었다.
"수원 원정 때의 감아차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그 위치가 제가 감아차기를 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였고, 너무 좋은 타이밍에 궤적도 잘 맞았어요. 그런 슛이라면 어떤 골키퍼도 막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진현은 대전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선수다. 처음에는 전술적으로 부조화도 있었지만, 지난 여름 주세종이 합류하면서 이진현은 자신의 공격적 재능을 찾을 수 있는 위치로 이동했다. 그때부터 이진현의 성장세는 속도가 더 붙었다.
"대전에 처음 왔을 때는 공격보다는 뒤에서 공을 배급하는 역할을 맡았죠. 저는 더 높은 공격 지역에서 활동하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작년 후반기부터 되면서, 팀의 시스템과 어우러지면서 잘 나오고 있어요. 뒤에 세종이 형이 있으니까 맘껏 나갈 수 있죠. 뒤에 누가 남아줌으로써 공격에 집중하게 됐어요. 마음이 놓인달까. 제가 수비를 안 하는 타입도 아니기 때문에, 공격에서 수비로 복귀할 때 그 시간을 제 뒤에 동료들이 벌어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지난해로 대전과의 기존 3년 계약을 마친 이진현은 유럽 재진출을 노렸다. 오스트리아 무대에서 완결 짓지 못하고 온 데 대한 미련이 남아서였다. 그는 1월 초 유럽으로 넘어갔고, 폴란드의 명문 레기아바르샤바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연습 경기에 나서며 입단을 타진했지만 구단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지 못했다. 그때 대전이 다시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민성 감독은 "유럽 진출에 대한 선수의 열망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본인이 확실히 결론을 내는 게 우선이라고 봤다. 결과적으로 그 경험을 하고 오면서 진현이가 더 큰 동기부여와 목적을 안고 우리에게 돌아왔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진현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다시 유럽으로 가서 선수들과 오랜만에 훈련하니까 옛 생각이 났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스스로 조금 더 성숙해진 거 같아요. 입단 테스트는 쉽지 않을 거라 봤어요. K리그 시즌이 끝나고 2달가량 쉬다가 이틀 훈련하고 바로 경기를 통해 뭘 보여줘야 했는데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게 아쉽죠.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고, 다음에 도전할 때는 잘 준비해서 오겠다고 다짐했죠."
"입단에는 실패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선 피지컬적으로 더 강해져야 하겠다는 것. 유럽 축구를 오랜만에 맛보니까 그걸 더 느꼈어요. 유럽 선수들은 타고난 게 있고, 그걸 따라잡으려면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하죠. 유럽에 대한 도전 의지와 별개로 제 스스로가 지금 경기장에서 더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훈련장에서, 준비 과정에서 그 부분을 많이 신경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하고 잘 되면 다시 유럽에서 뛰고 싶어요. 물론 제가 가고 싶다고 당장 갈 수 있는 무대는 아닙니다. 이번에 느낀 점을 잘 채워가고 대전에서 차근차근 하나씩 결과를 내면 다시 기회는 올 거라 믿습니다."
A대표팀 복귀도 이진현의 목표 중 하나다. 2018년 처음 A대표팀에 승선해서 호주, 우즈베키스탄, 볼리비아를 상대로 출전했다. 그의 마지막 A매치 출전은 2021년 3월 일본과의 친선 경기다. 5번째 A매치 출전을 기대하며 오늘도 땀 흘리는 이진현이다.
"냉정하게 이전까지는 경험만 하고 왔다고 생각해요. 21살, 22살, 23살에 A대표팀에 갔던 저는 분명 부족함이 있었어요. 지금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달라졌어요. 다시 A대표팀에 가면 다른 느낌일 것 같습니다. 과거에 비해 더 발전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선수 선발권은 감독님에게 있는 거고, K리그에서 계속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경기 전에 클린스만 감독님이 경기장에 오신다는 건 들었는데, 그때는 대기 명단에 출발해서 더 의식하지 않았어요. 경기에 들어가면 팀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걸 의식하면 제 자신이 흐트러져서 플레이가 잘 나오질 않을 거 같았어요.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대로 도움이 되자는 생각만 했습니다."
현재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이진현은 자신에게 본격적인 성장의 장이 된 대전과 함께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성장이 자신처럼 한 순간 정체돼 있고, 방향을 찾지 못하는 다른 젊은 선수들이 힘든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는 희망을 주길 바라고 있었다.
"전북전에 로테이션 폭을 크게 가져갔고, 10명 정도 바꿨는데도 팀이 충분히 잘해줬어요. 누구 한 명이 아니라 팀으로서 강한 게 대전이에요. 앞으로도 팀 내에서 건강한 경쟁이 되고 같이 강해질 겁니다. 이 승리가 올 시즌 대전이 높은 곳으로 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저도 자신감이 같이 상승했고요."
"저도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축구 인생에서 작년 후반기와 올 시즌을 빼고는 대부분 힘든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때도 포기하지 않고 연구하고 노력했어요. 축구 외적으로 인간적인 고민과 공부도 하면서 성장했어요. 그 과정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들어줬어요.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겸손하게 노력하면 바라는 것에 한발 더 다가설 거라고 봅니다."
사진=대전하나시티즌, 한국프로축구연맹
Copyright © 풋볼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모르 파티' 춤을 추는 듯 김건희의 포즈 [순간포착]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대표팀 출신 공격수, 전처 조카와 '임신 골인'...혼돈의 족보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국방부도 놀랄 비밀병기' 박은선의 즐라탄 시저스킥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포토] '아시아 최고 여배우 판빙빙도 놀랄 미모' 현대건설 이다현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음주운전 적발' 조나탄, SNS 사과문 게시 "나쁜 선택을 했다, 정말 죄송하다" - 풋볼리스트(FOOTBALLI
- 손흥민, 리버풀전서 7시즌 연속 두 자리 득점+호날두 기록 도전한다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실패 사례 때문에…밀란, 리버풀산 FA 영입에 의구심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사우디서 '무관 위기' 호날두, 포르투갈 대표팀 자리는 굳건... "중요한 선수" - 풋볼리스트(FOOTBALL
- ‘6경기 무승’ 에버턴, 다가오는 ‘72년 만의 강등’ 공포 - 풋볼리스트(FOOTBALLIST)
- 충남아산 '베테랑FW' 송승민, 유스 선수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한 사연 - 풋볼리스트(FOOTBAL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