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대접을 하고 싶어도 시간이 많지 않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혁진 기자]
▲ 설렁탕 |
ⓒ 이혁진 |
동네 설렁탕 집, 우리 옆 테이블은 아까부터 부산하다. 여자들이 쉴 새 없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가만 보니 딸들이 연로한 아버지를 모시고 식사하러 온 모양이다. 아버지 목소리는 딸들의 대화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다소 시끄러운 듯한 딸들 가운데 아버지가 자리하고 있다. 딸들에게 가끔씩 추임새 넣는 아버지 모습은 사뭇 남다르고 부럽기조차 하다.
어제 오전 아버지와 운동겸 산보하다 조금 이르지만 아버지께 오랜만에 점심 외식을 권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가서 먹자는 반응이다. 나는 재차 근처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설렁탕 집에 모처럼 가자 청하니 내키지 않아도 고개를 끄떡였다.
식당에 들어가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우연히도 딸들과 아버지가 식사하는 자리 옆이었다. 무언가 우리들은 서로 '가족'이라는 동질감에 이끌린 것 같았다.
아버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외식을 권하고 있다. 단조로움을 벗어나 밖에서 가족의 유대감을 확인하는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옆 테이블처럼 대화를 할 수 없다. 보청기를 껴도 웅성거려 아버지는 들을 수 없고 대화도 거의 불가능하다. 또 아버지가 말을 하면 입안 음식이 밖으로 튀어 곤란한 것도 있다.
나로선 아버지가 말씀은 없어도 맛있게 드시는 걸 지켜볼 뿐이다. 남들은 우리 부자가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오해할 성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는 매일 부모님들과 함께 둘러앉아 식사했다. 그러고도 어쩌다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보면 부모부터 생각했다. 이는 밥상에서 절로 배운 것이다. 부모 또한 어딜 가나 자식들 입부터 챙겼다.
아내와 나는 외출할 때면 아버지가 드실 음식을 사거나 포장해 오곤 한다. 그러나 직접 모시고 함께 외식하러 가는 것만 하겠는가.
그런데 아버지가 외식이 귀찮다고 할 때가 있다. 뒤늦게 눈치챘지만 외식도 일정한 간격으로 외출을 겸해 자연스레 반복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바라는 외식은 음식이 전부 아니다. 식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느끼는 존재감과 자부심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받는 밥상과 다름없을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외식 권유를 마다한다면 어딘가 불편하고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생일이나 어버이날을 되도록 피하는 편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접하고 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식사 한번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친구 중에 시골에 계신 어머님과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두 시간 걸리는 길을 가는 친구가 있다.
은퇴 이후 하는 일과인데 구순의 어머니가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이제는 서로 기다리는 시간이 됐다고 한다. 오가는 시간은 길어도 기다려주는 부모가 있어 자식으로서 새삼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아버지가 지금보다 정정할 땐 우리들에게 외식을 권하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들 일손을 잠시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이제는 아버지와 외식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외식할 시간이 많지 않다. 마음 편히 외식을 모실 수 있도록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과한 욕심일지 모른다.
▲ 설렁탕 |
ⓒ 이혁진 |
한편, 아버지는 예전처럼 맛있게 드시지 않았지만 설렁탕을 거의 비우셨다. 만약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자식으로서 속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부모님들은 우리 뜻대로 청하는 외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살아계실 때 외식을 자주 권하고 모시는 것이 효도라 생각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전국에 농약 묻은 송홧가루 날린다... 국민 건강에 치명적
- 미국은 아니라는데... "핵공유" 주장했다 망신 당한 국힘
- 쇠구슬 새총에 물 절도까지... 캠핑족에 무법상태된 바닷가 마을
- 2340미터 절벽에서 보낸 공포의 하룻밤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날리맨
- 윤 대통령 긍정 30%·부정 63%... 방미 전 인터뷰 역효과
- 자전거에 캠핑까지? 김포공항 뒤에 즐길 게 이리 많았다니
- [오마이포토2023] 무릎 꿇은 전세사기 피해자 "피해자들 폭넓게 인정해 달라"
- 뒷담화하는 사람이 싫어요
- "이순신은 명나라 장수인가요?"... 한국학생도 외국인도 갸우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