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 걱정'에 못 쓰는 항생제…AI 개발로 극복될까
세계적 권위자 제임스 콜린스 교수
"AI 개발로 내성 없고 효과 빠른
항생제 만들 수 있어"
"세균 감염 문제가 대두되고 있음에도 항생제 신약 개발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항생제 개발이 이뤄진다면 빠른 효과를 보이면서도 내성이 없고, 다른 균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 항생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항생제를 계속 쓰면 결국 나중에는 아무런 항생제도 들지 않는다.' 항생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이다.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는 복용하다 보면 세균들도 살아남기 위해 독성에 적응하는 '내성'이 생긴다. 강한 내성이 생길 경우 정작 필요할 때 항생제가 들지 않아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는 이유다. 정부에서도 항생제 처방을 줄인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세균 감염을 극복하는 데는 확실한 효과를 보임에도 항생제는 일단 쓰면 안 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장 규모가 작아지면서 제약사들도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주저하는 모습이다.
제임스 콜린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MIT) 의료공학 및 과학연구소(IMES)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AI를 활용한 항생제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콜린스 교수는 MIT와 하버드대가 공동으로 설립한 브로드 연구소의 핵심 연구진 중 한 명으로 합성생물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28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MIT 산학협력프로그램(ILP)이 공동 개최한 ‘MIT-코리아 콘퍼런스'에서 화상 기조 강연을 통해 이 같은 가능성을 제시했다.
1950~60년대를 항생제 개발의 황금기로 꼽은 콜린스 교수는 "이후로는 대부분의 항생제 신약이 기존 대비 한 발 정도 나아간 수준에 그쳤고, 이마저도 최근에는 거의 나오고 있지 않다"며 반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7명 중 1명이 세균 감염이 함께 일어나 입원했고, 세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 사례도 많았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지속해서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균주가 증가하면서 내성 문제도 심각히 대두되고 있다"며 "이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딥러닝과 머신러닝을 접목한 항생제 신약후보 물질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15억개 라이브러리 탐색…AI는 가능해
콜린스 교수는 2만5000여개의 화합물(compound) 라이브러리를 만들어 이를 대장균에 노출해서 어떠한 것이 항생 효과를 보이는지 추렸고, 이 중 51개의 후보물질을 다시 선별했다. 이 중 가장 두각을 드러낸 게 '할리신(Halicin)'이다. 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AI 컴퓨터 '할(HAL)'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콜린스 교수는 2020년 할리신 발견 당시 "AI를 이용해 발견한 최초의 항생제"라며 "지금껏 AI가 발견 과정의 일부를 도운 적은 있지만 인간의 가정에 일절 의존하지 않고 밑바닥부터 시작해 완전히 새로운 항생제를 발견한 건 처음"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콜린스 교수는 할리신이 기존 항생제 대비 내성을 훨씬 적게 일으킨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는 특정 단백질을 타깃하는 게 아니라 이를 형성하는 기전을 타깃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항생제 내성이 높은 대장균에 할리신을 써본 결과 빠르게 이를 죽였다"며 "반면 기존 항생제 중에서는 2%만이 이에 대해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광범위한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보이는 균에 대해 대부분 효과를 입증하는 한편 내성도 잘 생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할리신은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리균(CD)과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 등 감염 시 치료가 어려워 혁신적 치료법에 대한 요구가 높은 질환에 대해서도 효과를 보였다.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리 감염증(CDI)의 경우 심각한 설사를 일으키면서 재발률도 높아 미국에서 연간 1만5000~3만명이 이로 인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콜린스 교수는 "항생제 내성을 보이는 CDI 쥐에게 할리신을 투여한 결과 세포 독성이 없었고, CD균을 없앴다"며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 감염 역시 대부분 항생제가 효과가 없던 데 비해 할리신을 피부에 도포하니 감염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콜리신 교수는 이 같은 AI 발굴(discovery)이 항생제 개발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고작 몇십개의 화합물에 대한 연구는 연구자 몇 명이면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며 "하지만 AI의 진정한 가치는 더 큰 화합물 라이브러리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해주는 것"으로 15억개의 화합물이 포함된 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콜린스 교수는 기존의 신약 개발 방법에 대해 '블랙박스' 방식이라며 AI를 활용하면 '화이트 박스'식의 개발이 가능하다고도 짚었다. 투입과 산출은 알지만 "작용 기전을 모르는 약물에 대해 산출을 보고 투입 약물이 어떻게 활성화됐는지를 추론해야 하는" 기존의 방식과 달리 AI를 쓰면 새로 발견·설계된 항생제의 분자 메커니즘을 식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양한 물질대사를 확인하고, 이 측면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확인함으로써 인사이트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콜린스 교수는 이를 통해 "앞으로 7년간 7개의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 황색포도알균, 대장균, 폐렴막대균, 녹농균, 임질구균, 결핵균이 타깃이다. 특히 황색포도알균 대상 항생제는 화이트박스 방식을 적용해 스캐폴드(scaffold)와 관련 구조를 확인함으로써 실제로 어떠한 항생 효과를 가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메티실린에 내성이 있는 황색포도알균과 반코마이신에 내성이 있는 장알균 등 항생제 내성이 있는 균에 대해서도 항생 효과를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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