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준호 "영화관광도시 전주 만들고 싶다"[24회 JIFF]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임기 첫해
후원회 발족, 시민과 즐기는 축제 포부
"인생은 끝나지만 영화는 영원히"
배우 정준호(54)는 올해 전주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임기를 시작했다. 영화제 측은 지난해 12월26일 정준호와 민성욱 전주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을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다소 파격적인 인사였다. 일각에서는 정준호의 임명을 두고 독립·대안 영화제의 방향성과 맞지 않다고 우려를 표했다. 영화제도 변화의 흐름 속 생존과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 임명된 정준호의 고민도 깊었다.
27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호텔에서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과 만나 제24회 전주영화제 개막을 앞둔 각오와 비전을 들었다. 첫 공식일정으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 나선 그는 꽤 분주해 보였다. 손에는 개막작 기자회견, 개막식 등 여러 행사 관련 문서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처음 집행위원장직을 제안받고는 여러 차례 고사했다. 마음을 돌린 건 부채감에서다. 정 위원장은 "위원장이 영화제 모든 걸 총괄하고 축제의 색을 유지하면서 초청작도 섭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영화배우로 28년간 살면서 늘 빚진 마음이 있었다. 상업영화에만 몰두했지, 저예산 단편 등 실험성 짙은 영화에 눈을 못 돌린 게 사실이다. 배우로서 진 빚을 봉사하는 마음으로 갚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벽 낮추고 시민과 즐기는 축제로
정 위원장은 "배우로 전주영화제에 초대받아 몇 번 왔지만, 집행위원장으로는 처음이다. 배우로 왔을 땐 레드카펫 오르고 개막식, 개막작 보고 소주 한잔하고 올라왔다. 그동안 숟가락만 들고 차려진 밥상에서 밥만 먹고 나왔다. 집행위원장으로 밥상을 차리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말했다.
각오는 크게 두 가지다. 전주영화제가 24년간 명맥을 이어온 전통성·대중성 비전을 유지하는 것과 후원회를 발족해 영화제를 원활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시민과 함께 즐기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내세웠다.
"기존 독립·대안 영화제로서 전통성을 바탕으로,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자리를 늘리고 싶었어요. 전주를 돌아다니며 만난 시민들이 영화제에 호응이 적다는 걸 느꼈어요. '먹고 살기 힘든데 저쪽에서 열리는 축제'라고 느끼기보다 영화제를 향한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시민들과 함께하는 방안을 모색했죠. 골목 야외상영을 통해 대중에게 독립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관심을 독려하는 기능을 하고 싶어요. 우연히 들른 곳에서 '저런 영화가 있네?' 알 수 있도록이요. 영화제를 반짝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에서 시민과 하나가 되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뿌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주영화제가 어떻게 오늘까지 왔는지, 정신은 무엇이고 여기에서 태동해서 스타가 된 감독은 누구인지 뿌리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뿌리 없이 성공도 없다. 우리가 그 역할을 하면서 대중과 호흡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후원회 결성 투자 유치…백년대계 비전
집행위원장으로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운영에 대한 고민도 깊었다. 정준호는 대한항공 스폰서를 다시 연결했다. 해외 귀빈 초청 티켓을 지원받는 대신 영화제가 가진 작품의 저작권을 기내에서 상영하도록 협조하는 방식이다. 기업인 40~50명이 참여하는 전주영화제 후원회도 발족했다.
정 위원장은 "영화제 재원은 한정적인데 내부 인력도 충원해야 했다. 베를린영화제에 갔을 때 초대하고 싶은 보석 같은 영화인도 많았다. 예산이 많지 않아 고민했다. 거기서 얻은 해답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후원회를 결성하는 일이었다"고 말을 꺼냈다.
"기업 회장, 대표 100명을 선정해놓고 40여명한테 일일이 찾아가서 식사하면서 부탁했어요. 문화 발전을 위한 장기적 관점의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보고 발로 뛴 거죠. 지금 '오징어게임'(2021) '기생충'(2019) 등 K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지 않냐. 우리가 투자한 돈으로 그런 영화가 태어났고, 배우 감독이 나왔으니 투자해달라고 설득했죠. 투자사도 직원들과 전주에서 투자한 영화를 함께 즐기면서 문화로 소통하고, 이를 통해 영화제와 돈독한 관계가 이어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죠."
집행위원장을 떠나 영화인 선배로서 정준호는 책임감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독립영화예술을 지원하고 싶었다. 실험성 강한 영화에 단독 500만원, 1000만원이라도 제작비를 더 지원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기분만 앞서서 막연히 '독립영화를 응원합니다' 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었다. 결국 영화도 돈이 없으면 제작되기 힘들다. 그런 차원에서 독립영화, 실험영화를 어떻게 알릴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향한 애정이 남달라서다. 그에게 '영화'의 의미를 물었다.
"내 삶을 담은 그릇이죠. '두사부일체'(2001) '가문의 영광'(2002)을 본 팬들이 지금도 그 영화를 기억하고, '공공의 적'(2002) '거룩한 계보'(2006)에 담긴 정준호의 모습은 관객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죠. 세월이 지나서 저는 변해가지만, 작품 속 인물은 영원하다는 점에서 영화는 특별해요. 인간은 태어나서 죽지만 영화 속 캐릭터는 죽지 않잖아요. 인생은 끝나지만, 영화는 아니죠."
세계적인 영화도시 도약 포부
정준호는 영화제를 장터에 비유하며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영화제는 영화인, 관객, 비즈니스 관계자, 제작자, 창작자 등 모든 영화인의 축제다. 다 같은 영화제가 아니라 전주에 와야만 하는 독특한 매력도 있다. 장날이면 물건을 가져와 팔고 사지 않나.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영화인의 장터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소통하고 관객과의 대화(GV)를 통해 영화 토론도 하는 자리다. 이 장터 역할을 영화제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임기를 시작해 집행위원장으로서 첫발을 뗐다. 영화제를 준비하며 중장기적 비전도 수립했다. 그는 "영화 '하얀방'(2002)을 전주에서 찍었다. 당시 1만원짜리 백반을 주문했는데 차려진 음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장님께 '이거 남아요?' 물었던 기억이 난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서 절을 열 번 정도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손님맞이의 첫째는 음식 대접인데 전주는 풍부한 관광 콘텐츠를 갖춘 도시다. 예전에는 전주에서 촬영도 많이 했고, 영화제의 위상도 공고했다. 전주가 영화, 영상 도시로 기능을 다시 회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주시민과 같이 호흡하는 영화제를 만들어 전주시에 이를 다시 재환원할 수 있도록 함께 가겠다"고 강조했다.
"K콘텐츠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영화의 뿌리는 결국 영화제죠. 우리 영화 축제가 단단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관광 대국으로 가는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국가, 지자체, 시민이 하나가 되는 도시를 만드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24회 전주영화제는 다음달 6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열린다.
전주=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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