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시티'로 유명한 자이푸르 한번 보세요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다람살라에서 밤 버스를 타고 델리로 내려왔습니다. 다시 돌아온 델리에서 기차를 타고 향하는 곳은 자이푸르입니다. 자이푸르에서 며칠을 보낸 뒤에는 조드푸르와 우다이푸르를 여행했습니다. 모두 라자스탄(Rajasthan) 주에 위치한 도시죠.
▲ 조드푸르의 메헤랑게르 성 |
ⓒ Widerstand |
사막 지형의 특성상 라자스탄에서는 통일 왕조가 등장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나의 도시를 중심으로 지방 정권들이 성장했죠. 사막의 왕조들은 때로 서로 연합하며 이민족의 침입에 맞섰고, 때로는 서로 갈등하며 전쟁을 벌였습니다.
무굴 제국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굴 제국은 남아시아 대부분을 차지한 거대한 왕조였지만, 모든 땅을 직할지로 통치하진 않았습니다. 무굴 제국의 우위를 인정하기만 하면, 지방 정권의 자치권을 존중받을 수 있었죠. 라자스탄의 여러 왕은 왕조를 이어가며 나름의 자치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영국령 인도 제국도 그랬죠. 라자스탄을 포함해 여러 지역에는 지역의 왕조가 이어졌습니다. 영국은 이들과 조약을 맺고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했지만, 명목상으로 왕조는 살아남았습니다. 영국 지배에 협력하는 대가로 왕조의 존속을 얻어낸 것입니다.
▲ 자이푸르의 마하라자가 사는 시티 팰리스 |
ⓒ Widerstand |
파텔 부총리는 적극적으로 각 왕국의 인도 편입을 추진했습니다. 왕들에게는 재산을 보호하고 일부 특권을 유지시켜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죠. 그래도 독립을 원하는 지역은 무력으로 병합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각 왕국은 모두 인도나 파키스탄에 병합됩니다. 이 과정에서 카슈미르 문제와 같은 갈등도 물론 발생합니다.
▲ 메헤랑게르 성의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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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안에 새겨진 역사는,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화려한 궁전과 성벽에 전쟁과 상처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곳에서는 독립의 상실이 아픔이나 치욕으로 기억되고 있지도 않습니다. 왕족과 귀족들은 폴로 경기를 하며 즐겼을 뿐입니다.
조드푸르에 있는 메헤랑게르 성은 강력한 요새였습니다. 성문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도 높고, 구불거리며 급하게 꺾여 있습니다. 대규모의 군사가 올라오기는 어려운 곳이겠죠. 단단한 성벽도 높게 올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영국의 지배는 별다른 전투 없이 손쉽게 이어졌습니다.
▲ 자이푸르의 하와 마할 |
ⓒ Widerstand |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지금의 인도 공화국은, 이들에게 또 어떤 의미일까요? 무굴 제국이나 영국의 지배와, 인도 공화국의 지배는 이들에게 다른 의미일까요? 오히려 자치권을 크게 축소하고 정치적 권리를 박탈한 인도 공화국이 이들에게는 더 폭력적인 지배로 느껴지지는 않을까요?
▲ 우다이푸르의 호숫가. 언덕 위의 건물이 마하라자가 사는 시티 팰리스다. |
ⓒ Widerstand |
하지만 그런 위험하고, 때로 모욕적이기도 한 질문마저 감내하고 답해주는 것이 민주주의가 가진 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라자스탄의 사람들에게도 당당히 답할 수 있어야겠죠. 식민 제국의 체제보다 민주주의 공화국의 체제가 우월하다고요. 우리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요. 지금의 인도 공화국은, 그렇게 당당히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 자이푸르의 마하라자가 만든 천문대, 잔타르 만타르 |
ⓒ Widerstand |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집단이 자신의 자리에서 역사를 기억하고 판단합니다. 그 모든 기억과 판단을 수렴하고, 질문에 합리적인 답변을 내리는 것이 민주주의를 통해 수립된 정부의 역할이겠지요.
마침 라자스탄에 머무는 동안, 인도에서는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교과서에서 이슬람 제국이었던 무굴 제국의 역사를 축소하고, 힌두와 이슬람의 화해를 추구한 간디의 암살 배경 등이 삭제된 것입니다. 모디 총리가 책임자로 지목되고 있는 구자라트 학살 사건도 교과서에서 빠졌습니다.
14억의 목소리를 마주한 인도 정부는, 정말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식민 제국보다 우월한 민주주의 공화국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라자스탄의 시민들에게 인도 제국과 인도 공화국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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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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