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이 왜 노동 무능력자입니까?

조미연 2023. 4. 2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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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나온 판결] 폭행으로 사망한 장애인에 대해 일실수입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

[조미연]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었습니다.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과 투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 장애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 또한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최근 지하철에서 진행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과태료를 통지하는 등 강경한 대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장애인 인권에 주요한 의미를 가지는 판결들을 대상으로 특집 판결비평을 준비했습니다.

두 번째 판결비평에서는 폭행으로 사망한 장애인에 대해 노동 능력이나 소득이 없었다고 보아 '일실수입(불법행위로 생명·신체의 침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잃어버린 장래의 소득)'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을 살펴봅니다. 통상적으로 무소득자라 하더라도 '일반 일용노동자가 벌 수 있는 소득액'을 기준으로 일실수입을 산정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1심과 2심 재판부는 망인이 중증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일실수입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조미연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 기자 말
 
1심 :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6민사부 임기환(재판장), 이용희, 배다헌 판사 2022. 1. 27 선고. 2021가합512414
2심 : 서울고등법원 제5민사부 설범식(재판장), 이준영, 최성보 판사 2023. 1. 19 선고. 2022나2007547

미신고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중증장애인이 폭행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유가족은 시설장과, 지방자치단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시설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인정하였고, 지방자치단체가 상고하지 않으면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일부승소 판결은 확정되었다.

이는 수많은 시설 거주인의 권리에 대한 긍정적 영향이 기대되는, 미신고시설 및 개인운영신고시설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례이다. 그러나 원고는 대법원에서 더 다투려고 한다. 시설장의 손해배상책임 범위에 망인의 일실수입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소득자에게도 인정되는 '일실수입', 장애인에게는 "0"

불법행위로 인한 생명, 신체의 침해가 발생하면, 손해액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소극적 손해, 즉 '일실수입'이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이 중증장애인이 타인의 불법행위로 인해 사망에 이른 경우에도 망인이 수입이 없고 향후 노동에 종사할 개연성이 낮다는 이유로 일실수입에 따른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재판부는 망인이 지적장애 1급의 장애인이라는 사실, 어린 아이 수준의 말 정도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못하는 점, 신체장애도 있어 이 사건이 벌어진 시설에서 항상 엎드려 생활했던 사실, 이 사건 사고 이전에 근로활동을 하였거나 근로소득을 얻은 적이 있었다고 볼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망인에게 노동 능력 또는 소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런데 법원은 통상 무직자, 미성년자, 학생 등과 같이 일정한 소득이 없는 무소득자의 경우에도 일반일용노임을 기준으로 일실수입을 산정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사고 당시 수입보다 일반일용노임이 많은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일반일용노임을 기준으로 일실수입을 산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원 태도에 의하면, 일실수입이란 피해자 개인의 노동능력에 대한 엄밀한 측정과 판단에 의하여 산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득이 없거나 적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생명, 신체에 피해를 입은 경우 마땅히 배상하여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규범적 손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장애인을 힘들게 하는 건 장애가 아니라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이 사건 판결은 중증장애인 망인의 노동능력을 신체적·지적능력을 기준으로 쉽게 부인하고, 이에 따른 일실수입을 부정함으로써 장애를 이유로 한 차등적 판단을 한 것이며, 이는 장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장애인권리협약, 장애인복지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 규정의 취지에도 반한다.

특히 앞서 언급했듯 적지 않은 수의 판례에서 비장애인의 경우 무소득자라 하더라도 개인의 노동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 없이 일반일용노임을 기준으로 일실수입을 산정한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 망인에 대한 일실수입 평가는 '중증장애인은 일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막연한 편견이 전제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장애인의 일실수입 산정에 있어서는 '장애 때문에 소득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히 증명되지 않는 한 장애를 이유로 평생 소득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의 직무수행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하여 비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근로조건에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중증장애인이라고 해서 노동능력이나 노동에 종사할 개연성을 낮게 평가하면 장애인 차별행위가 될 수 있다.

이 사건 망인은 우리 곁에 돌아올 수 없다. 남은 자들은 그저 망인의 죽음에 대해 최소한의 법적 책임을 묻고, 이를 통해 이러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자조할 뿐이다. 그러니 배상책임이 인정되었다면, 그 책임범위에 장애를 이유로 쉽게 지워져 버린 중증장애인의 노동능력은 지나갈 수 있는 사안인가? '장애인의 날'을 기회로 장애인을 힘들게 하는 건 장애가 아니라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라는 걸 다시 한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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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인터넷언론 슬로우뉴스에도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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