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잔치였던 황금들판이 '고요한 죽음'으로

김우창 2023. 4. 2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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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잇_다] 동료시민의 힘을 믿는 장마리 캠페이너 인터뷰3

[김우창 기자]

 제염토를 바라보는 그린피스 캠페이너
ⓒ 그린피스
 
그린피스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현재까지 현지 방사선 준위를 측정하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아베, 스가 정부가 "제염은 효과적으로 완료되었고, 방사선 준위가 안전한 수준"이라고 주장한 것에 비해, 그린피스 보고서는 이러한 주장을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제염을 실시한 곳 대부분이 "여전히 방사성 세슘으로 오염되어 있으며, 그 이유로 후쿠시마 현의 상당부분이 제염이 불가능한 산림지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마리는 2019년 가을에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미나미소마시에 갔다.

"저는 그때 후쿠시마에 조사하러 처음 갔어요. 음... 무섭지는 않았어요. 무섭다는 감정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알고 싶다, 보고 싶다, 경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우선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앞으로 내가 이 캠페인을 하면서 오염수 방류를 막아야 하는데, 만약 후쿠시마를 가보지 않은 내가, 후쿠시마 사람들을 만나보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이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냐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할 수 없진 않겠죠. 근데 문제의 실체를 경험하고 직접 내 눈으로 본 것과는 다를 테니까. 지금까지도 그 경험들이 영향을 주고 있고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나 그린피스는 현지에 앵커를 두고 오염상황을 면밀히 보고 현장에서 조사하는 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무조건 가지 않을까요."

일주일을 머물렀던 장마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했던 것은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였다.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 위험 앞에서 장마리는 무엇을 느꼈을까.

"동료들은 1~2주를 (그곳에서) 더 보내고 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이 일을 알리기 위해 조사하는 동료들과 그곳에서 살았던 주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어요. 그리고 곡식이 익은 너무 아름다운 황금들판이 계속 생각났죠. 개인적으로 추수기에 농촌에 가는 것을 좋아해요. 다 익은 곡식이 논을 꽉 채우는 논밭을 보면 생명이 살아있는 거잖아요. 누군가를 그 쌀을 먹고 또 누군가는 그 벼를 키움으로써, 생명이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거잖아요. 마치 '생명의 잔치'처럼.

후쿠시마에 가을에 갔는데, 아무도 보살피지 못하는데도 벼가 중간에 자라있어요. 근데 그 근처에는 검은색 제염토 봉투들이 있는 거예요, 핵폐기물이 황금들판에 함께 있는 거죠. 제가 항상 마음과 눈에 담아두었던 가장 풍요로운 장면이 지금 이곳에서는 생명을 살아가게 하고, 연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거잖아요... 농촌이라는 아름다운 일상이자 노동의 공간이자 살아가는 생명을 이어주는 공간이, 여기서는 '죽음의 공간'이고 너무 이질적이니까."

장마리는 조사를 마치고 "황금빛 논을 지나가는데 저와 동료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방호복을 입고, 방사능 측정기를 손에 들고 그곳을 지나갔어요. 노을이 지는데, 사진으로라도 남기고 싶은 아름다운 자연의 풍요로운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가 '고요한 지옥'이다, 물론 후쿠시마 주민들에겐 아픈 상처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지역이 빨리 제염이 되어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길 바라면서도, 황폐하고 건물이 다 무너져있는 곳만이 지옥이 아니라, 여기는 정말 고요한 지옥"이었다고 말했다.

"정말 천국과 지옥이 같은 모습일 수 있구나. 사실 지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재난이나 황폐한 상황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이렇게 일상의 아름다운 모습이 지옥처럼 비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거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고, 지금도 생생해요."

핵발전소 '안전'과 '관리'에 대해
 
 들판에서 조사 중인 그린피스 캠페이너
ⓒ 그린피스
 
후쿠시마 외에도 국내 원전 캠페인을 함께 하는 장마리 캠페이너에게 문재인 전 정권에서 시도했었던 탈원전 정책에 대해 물었다.

"당시에는, 원전의 안전 문제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고, 원전을 마치 쓰냐 안쓰냐, 한국의 기술이냐 아니냐, 사고가 날 것이냐 안 날 것이냐 등 모두가 탈원전과 친원전으로 나뉘어서 싸우고만 있었잖아요. 근데, 문재인 정권이 탈원전 정책을 성공했어도 우리는 2080년까지 원전과 함께 살아야 하고, 미래세대는 수만 년동안 핵폐기물을 안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던 거죠.

한편으로는, 그 필요한 논의를 할 수 없게 만드는 방해 요인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원전이 기술적으로 훌륭하고 기후 위기의 대안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원전을 운영함으로써 생겨나는 '핵폐기물과 사고가능성, 기후리스크'도 있는데, 이걸 어떻게 관리하고 감독할 것인지, 즉 모든 이슈를 다뤄야 하는데 한 쪽만 다뤄지고 있잖아요. '안전하고, 사고가 절대 날 수 없다'는 말만 하면서. 전 그들의 과학도 과학처럼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원전은 안전하다" 그게 끝이에요. 저는 그게 '비과학적이고 의도적이고 고의적'으로 어떤 구조를 만드는 집단이 있다고 생각해요.

장 중요한 것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안전한 에너지를 사용하자고 말할 때, 그 요구를 막아버리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그 주체는 누구인지예요. 누가, 왜 내가 원전의 안전문제를 알려야하는 시민들을 얼마나 잘못되고 편향된 정보만 주입하고 있는가... 제 입장에서는 그게 더 중요해요."

장마리는 "원전의 안전문제를 더 가깝게, 나의 문제인 것처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우리가 사용후 핵폐기물의 위험이나 사고가능성을 고민할 필요 없이 재생에너지가 가진 장점을 더 알릴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이 모든 것을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겐 과제로 남은 거죠. 그 사이에 재생에너지에 대한 잘못된 사실들이 고착화되고, 지역에서 이격거리나, 재생가능에너지가 정착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버렸고, 한편에선 원전이 들어설 지역의 주민들은 '돈을 받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구조적인 문제를 어떻게 우리가 타파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장마리는 의도적이고 고의적으로 만들어진 구조와 그 구조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로막는 필요한 논의들을 하나하나 강조했다. 그중에서 '돈을 받는 대상'으로 지역주민들을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에도 동의할 수 있었다. 우리가 보통 '지역주민들은 돈 때문에, 지원금 때문에 원전을 유치하고 지지한다'라고 쉽게 생각하고 판단하지만, 장마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에게 '안전이 아닌 이권'을 알려준 누군가가 있는 거죠. 그리고 주민들의 모든 자발적인 선택을, 보상이든 반대든 존중받아야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결정밖에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 저는 그게 본질적인 문제라고 봐요. 원전을 지으려는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원전이 들어서면 누군가는 걱정하고 그 걱정이 결사반대로 이어질 수 있고. 원전을 짓기 위해선 찬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렇다면 원전은 안전하다고 믿게 만들고, 또 원전이 들어오면 이권이 생긴다고 믿게 만들고, 이것이 가장 쉽고 논리적인 방식이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원전을 유치하는 주민들이라고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기보다는, 어떤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독점된 정보를 통해 사실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정해진 결정을 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장마리가 캠페이너가 된 이유

끝으로 장마리는 가끔, 이 일이 힘들 때, 성과나 가야 할 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 "왜 내가 시민단체 캠페이너가 됐을까? 왜 내가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 됐을까"를 묻는다고 말했다. 왜 장마리는 캠페이너가 되고 싶었을까?

"아무 객관적인 평가나 이유 없이 저는 시민사회에서 일하고 싶었거든요, 시민사회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죠. 지금도 그래요. 저는 시민들의 힘을 믿어요. 전 세계의 지역과 주민과 마을이 있는데, 거기서 만들어내는 좋은 변화, 그 좋은 변화로 이끈 동력 중에는 항상 시민들의 연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러한 시민들의 힘이 변화를 추동했다는 근거와 실제 사례들이 너무 많은 거죠. 저는 그래서 이것을 진리이자 과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입증된 사회과학인 거죠. 저는 가끔 어떤 분이, 국회를 가라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분들도 소임이 있지만, 시민들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지금이 제가 가장 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의 힘을 조직하는 것, 동료시민과 함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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