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만들어놓은 단재고 교육과정, 개교 연기하고 다시 짠다는 충북교육청

충북인뉴스 최현주 2023. 4. 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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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까지 통과됐는데 단재고 교육과정 재검토... 개교 1년 더 연기해 2025년 3월로

[충북인뉴스 최현주]

ⓒ 충북인뉴스
충북교육청, 학생 대학선택권 확대 위해 교육과정 재설정"

충북교육청이 김병우 전 교육감 주력 사업이었던 단재고등학교의 개교를 1년 연기하고 교육과정을 전면 재설정한다고 밝혔다.

충북교육청 및 교육계에 따르면, 단재고는 기존 2024년 3월 개교에서 1년 연기해 2025년 3월에 개교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철학과 아들러 심리학을 기반으로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배움을 실천하는 사람을 양성한다'는 목표와 방향, 교육과정 또한 수정된다. 도교육청은 단재고 TF팀을 다시 조직해 '충북형공립대안고등학교 설립준비 TF팀(이하 TF팀)'이 지난 5년간 설계한 교육과정을 전면 바꾼다는 계획이다.

도교육청은 이미 이러한 내용을 충북도의회 교육위원회 의원들에게 설명했고, 도의원들도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교육청은 다음달 10일경 단재고가 세워질 청주시 가덕면에서 주민설명회를 열고 이후에 이를 공식화한다는 입장이다.

도교육청 중등교육과 진로진학팀 모지영 팀장(장학관)은 "학생모집을 하려면 7월 말까지 교육과정이 완성되어야 하고 교원과 공무직 인력규모도 결정해야 하는데 시기적으로 불가능하다. 내년 3월 개교한다면 졸속개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단재고 개교를 2025년 3월로 연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0년 12월 교육부는 중앙투자심사에서 단재고에 대해 △6학급 사업규모 변경 불가 △교육과정과 공간계획 연계 △기존 대안학교 학생 의견수렴 등의 조건을 달아 설립을 통과시켰다. 당초 개교는 2024년 3월이었고 학생 수는 6학급, 96명이었다.

교육과정 변경과 관련 교육부에서는 개교와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완성된 교육과정, 이제 와서 왜 바꾸나?

단재고 교육과정은 기존 TF팀이 2018년부터 5년여에 걸쳐 설계했다. 김병우 전 교육감 시절 교육청 내부결재를 통해 만들어진 TF팀은 충북대안교육연구회 회원들로 구성, 매달 워크숍을 통해 교육과정을 준비했다. 일부는 해외연수를 다녀오기도 했고 완성된 교육과정은 미래교육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런 교육과정이 윤건영 교육감 취임 이후 전면 수정되는 이유는 뭘까?

도교육청 담당자들에 따르면 교육과정을 변경해야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교육과정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모지영 팀장은 "교원수급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없고 교육과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단재고의 거대 담론은 이해하지만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국어교과 중 웹소설 창작에 흥미가 있는 학생이 있다면 이를 지도할 교사가 있어야 하고, 음악교과 중 뮤지컬이나 실용음악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있다면 이를 지도할 교사가 있어야 하는데 기존 TF팀이 제출한 보고서에는 교사충원 및 지도계획 등이 없다는 것이다.

모 팀장은 또 "(학생들에게)과학, 음악 등 큰 갈래 또는 계열은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안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인력까지도 명확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이유는, 학생들의 대학진학 선택폭이 좁다는 점이다. 일례로 같은 대안학교인 은여울고등학교 학생들이 최근 진학상담을 했는데, 은여울고 보통교과(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한국사) 단위(시수)가 부족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응시할 수 있는 대학의 선택폭이 좁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도교육청은 단재고 보통교과 시수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TF팀이 설계한 단재고 교육과정에서 보통교과는 13단위(국어 5, 사회 5, 한국사 3)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아무리 못해도 보통교과가 50단위 이상은 되도록 변경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일반계 고등학교의 보통교과 단위는 174단위다.

모 팀장은 "(학생 스스로)대학을 선택하지 않는 것과 하고 싶어도 조건이 안 돼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다르다. 대학에 입학하고 싶어도 단위 수가 부족해 못가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초중등교육법 60조의 3(대안학교)을 면밀히 검토한 이후에 윤건영 교육감 철학을 최대한 담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만의 진로를 탐색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한 미래형 대안학교라는 단재고의 큰 틀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학생들은 진로에 따라서 진학을 하고 싶으면 해야 한다. (대입)그쪽 루트도 열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TF팀 구성원이 누구일지, 또 몇 명일지, 교육과정을 어떻게 바꿀지 등 현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전했다.

단재고 교육과정이 변경돼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이미 지난해 12월 있었던 국·과장 회의에서 '단재고 전면 재검토'가 이미 결정됐다는 것이다. 현재 단재고 업무 담당자인 모지영 팀장(장학관)과 이상명 장학사는 "재검토가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올 3월 단재고 업무를 새로 맡았다"고 말했다.
 
 단재고가 들어설 가덕중학교에서는 현재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중에 있다. 리모델링 공사는 올 12월 완료될 계획이었다./최현주
ⓒ 충북인뉴스
TF팀, "진영논리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기존 단재고 교육과정을 설계한 TF팀에서는 황당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도교육청 담당자들이 미래교육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특히 교육과정을 일부 수정할 용의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음에도 아무런 대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개교 연기를 결정했다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충북형공립대안고등학교 설립준비 TF팀' 구성원이자 은여울고 교장인 신현규 교장은 "단재고 개교를 연기하는 이유나 교육과정에 무엇이 문제인지 전달받은 것이 전혀 없다. 얼마 전 천범산 부교육감에게 단재고 기조만 유지된다면 얼마든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 이후에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개교를 연기한다고 들었다"며 "전 교육감 지우기 또는 진영논리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TF팀은 현재 단재고 개교 연기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도교육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해 놓은 상태로 조만간 입장표명을 한다는 계획이다.

은여울고 학생들과 같이 단재고 학생들의 대학 선택권이 협소해질 것이라는 도교육청 우려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은여울고 박명진 교사는 "은여울고 학생들이 보통교과 시수가 부족해 대학에 입학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물론 과학, 수학이 필요한 공대에 입학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은여울고 학생들도 250여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안학교는 대학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20살이 되는 해에 모든 학생들이 똑같이 대학을 가야하는 것도, 그 대학의 서열에 따라 인생의 성패여부가 판단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충분한 경험과 자기탐색을 통해 자신의 삶의 진로를 결정하고 그것을 끌고 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했다.

박 교사는 또 "각종 협력 프로젝트와 자기 설계 교육과정으로 구성된 단재고의 교육과정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요구하는 주요 역량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단재고 교육과정 전면 재검토' 결정이 이미 지난해 12월 국·과장 회의에서 결정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도교육청 관계자 A씨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부교육감 주재로 열린 국·과장 회의에서 단재고는 2안, 즉 부분수정으로 결정됐었다. 2안이라는 것은 기존 TF팀이 설계한 교육과정과 인력풀을 조금 보완하고 수정한다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 와서 단재고 교육과정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도교육청 이상명 장학사는 "12월에 결정된 것은 단재고의 교육비전·목표·교육과정 전면재설정이었다. 당시 세 가지 안이 있었는데, '부분수정'은 3안이다. 당시 결정된 것은 2안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단재고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인 가덕중학교/최현주
ⓒ 충북인뉴스
"TF팀과 교육청은 협력 방법 찾아야"

관계자들은 윤건영 교육감이 미래교육이라는 단어를 수시로 언급하면서 정작 미래교육을 하겠다는 학교를 기존 입시위주 학교로 다시 바꾸려 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특히 도교육청이 학생들의 대학진학 선택권을 위해 보통교과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변경한다고 하지만 이는 대안학교 및 미래교육의 본질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래교육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래교육의 본질은 자기주도성이다. 자기주도적 학습은 학습자 스스로 학습을 설계하고 진행하며 여기에서 교사는 '지도'보다는 '협력자'의 역할을 한다. TF팀이 단재고에서 '1인 1교육과정'을 하겠다는 이유다.

그러나 도교육청에서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 '협력자'보다는 '음악, 미술 등 계열을 나눠주는 등 보다 구체적인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직 선발되지도 않은 학생들의 다양한 진로와 관심분야를 어떻게 예측하고 안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도교육청 모지영 장학사는 "그래도 교육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누고 모으면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편 이와 관련 교육계의 한 전문가는 "단재고가 잘 설립되어서 의미 있는 교육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점은 도교육청이나 대안교육연구회 선생님들이나 같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단재고 교육과정에 대하여 연구하고 고민한 결과들과 충북교육청이 추구하는 비전을 잘 녹여서 학교 설립을 위해 협력해나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는 교사-학생이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교사들도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학습을 경험할 수 있는 협력적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것이 단재고에서 충실하게 구현될 수 있도록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단계에서는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대안교육 교사들과 교육청이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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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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