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도대체 얻은 게 뭔가
<이충재의 인사이트>(https://chungjae.com)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마이뉴스>를 통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충재 기자는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이충재 기자]
▲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는 예상대로 북핵 대응이었다. 정작 국민들이 원한 경제 문제는 뒷전이었다. 미국으로선 뭘 내줘야 할 지 걱정할 필요 없는 수월한 협상이었던 셈이다. 70년을 맞은 한미동맹이 '안보동맹'에서 '경제안보 동맹'으로 격상됐다는 말은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워싱턴 선언'이라는 거창한 용어로 포장된 확장 억제 방안도 들여다 보면 '빛 좋은 개살구'다. 보수세력이나 진보 진영이나 만족스럽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당초 전해졌던 '북한 핵공격 시 핵으로 보복한다'는 문구는 온데간데없다. 대통령실은 핵우산 제공 계획을 논의할 '핵 협의 그룹'을 만든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지만 실행이 담보되지 않은 '어음'일 뿐이다. 오히려 이게 빌미가 돼 한국의 핵무장과 전술핵 재배치 포기를 내줬으니 보수층이 반길 리 없다.
진보진영에서도 온통 핵무기로 뒤덮인 회담에 불안감과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핵 대응이니 핵 보복이니 하는 개념은 북한의 핵공격을 전제로 한다. 남한이 핵으로 잿더미가 된 마당에 보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번 회담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무조건 대화 복귀'를 촉구했고, 윤 대통령도 남북 정상회담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한반도 핵전쟁을 막기 위한 논의나 노력이 빠진 회담에 진보층이 호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실익 못 거둬
안보 항목에서 얻은 게 없다면 경제 분야라도 실익을 챙겨야 하지만 '빈손'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우리 주력 업종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로 무너지는데 윤 대통령은 너무나 한가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술 더 떠 "반도체지원법은 한국에도 윈윈"이라고 엉뚱한 말을 할 정도니 우리 사정을 제대로 알리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 가만히 놔둬도 한국에 베팅 할 넷플릭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고 호들갑을 떨 때부터 짐작하긴 했다. 많은 국민이 손꼽아 기다리던 미국의 호혜 조처는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윤 대통령은 되레 숙제만 잔뜩 떠안은 모양새다. 출국 전 외신 인터뷰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논란은 매듭이 지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정상회담에서 논의가 없었다"며 축소하려 하지만 이미 미국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고 밝힌 터라 곧이 믿기지 않는다. "무기를 지원할 상황이 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미 NBC 인터뷰는 사실상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발표할 시기만 남겨뒀다는 얘기도 들린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 문제는 윤 대통령을 더욱 옥죌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의 '제3자 변제안'을 담대한 외교적 결단으로 추켜세우면서 일본과 더 긴밀한 협력을 당부했다. 가뜩이나 국내에서 퍼주기 비판을 받고 있는 윤 대통령을 더 곤경한 처지로 내몬 것이다. 이 정도면 윤 대통령은 바이든에게 "우리는 할만큼 했으니 일본의 등을 떠밀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판이다. 미국과 일본이 한편 먹고 공세를 취하는데 이렇다 할 대꾸도 못하는 꼴이다.
미국이 윤 대통령에게 베푼 환대는 극진했다. 의장대 사열, 백악관 관저 방문, 만찬과 상하원 연설 등 최대의 예우를 갖췄다. 대통령실에선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보여준 각별한 예우를 느낄 수가 있었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방문을 지켜본 국민들의 마음도 그럴지는 의문이다. 미국으로부터 배려받았다고 생각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윤 대통령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을지 모르나 국민들은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못했다.
미국의 도청 의혹만 해도 그렇다. 윤 대통령은 "이 문제가 철통 같은 신뢰를 흔들 이유가 없다고 본다"며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였으나 국민들의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했다. 정상회담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고,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선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두둔하는 답변을 했다. "정상회담에서 지렛대로 활용하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깡그리 무시한 셈이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국익 우선 외교'였다. "공허한 이념이 아닌 실질적 국익"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과 '가치동맹'을 앞세우며 국익을 외면하고 있다. 국민의 자존심과 경제적 실익을 내팽개치고, 주변국과 충돌을 불사하며 지키는 가치는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윤 대통령은 실질적 국익을 국빈 방문과 바꿨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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