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 뺨치는 긴박감…수단 철수작전 주역 '3인방'

장희준 2023. 4. 2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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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부터 철수작전 완수 뒷이야기
빠른 의사결정에 책임감과 '원팀 정신'
외교적 노력과 우방국 친분

지구 반대편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정부군과 반군 신속지원군(RSF) 간 교전이 시작된 이달 15일, 하루 중 15시간은 총성이 들릴 정도로 상황은 긴박했다. 그럼에도 주수단 한국대사관과 현지로 급파된 특수부대, 서울 본부에서 정보를 수집한 외교부까지 모두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우리 교민 28명을 모두 구출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냈다. 작전명 '프라미스(promise)',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이들이 있었다.

빗발치는 총탄 속 교민구출…남궁환 주수단대사

공관원과 수단 교민들이 철수 때 비상식량으로 쓸 김밥을 만들고 있다. [사진제공=외교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긴박했던 현지에서 교민 탈출을 지휘한 건 남궁환 주수단대사였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건 교전이 발생한 15일 당일. 지난해 8월 발령을 받아 홀로 수단에 나와 있던 그는 얼마 뒤 가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주말을 맞아 슈퍼마켓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남궁 대사는 "시내에서 총격전을 목격하고 그 길로 대사관으로 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곧장 직원들을 소집해 비상점검을 실시했고 며칠간 옷도 갈아입지 못했다.

이후 대사관으로 교민들을 집결시키라는 본부의 지시가 떨어졌고, 목숨을 건 이송작전이 시작됐다. 대사관은 격전지로 꼽히는 수도 하르툼의 중심부에 있었지만 태극기가 내걸린 만큼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포성이 오가는 교전 현장을 뚫고 9개 지역에 흩어져 있던 교민들을 모으는 것도 난관이었지만,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이송작전 첫날 현지인 행정원이 극도의 긴장을 호소하다 쓰러진 것이다.

외교관이 탑승해야 반군초소를 통과할 수 있었던 만큼 남궁 대사는 망설이지 않고 하나 남은 방탄차량에 올라탔다. 그는 "10㎞ 정도 거리에 통행을 확인하는 체크포인트가 5~6곳 있었다"며 "평소 30분이면 다녀올 거리에 2~3배의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이틀 만에 모든 교민들이 대사관으로 집결했고, 23일 포트수단으로 출발했다. 12시간 반이면 주파할 수 있는 경로가 있었지만 군벌간 충돌을 피하기 위해 1174㎞ 거리의 우회로를 택했다.

공군 수송기가 대기 중인 포트수단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33시간의 긴 여정에서 비상식량은 '김밥'이었다. 공관원과 교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은 식량을 모아 김밥을 쌌고, 불안 속에서도 서로를 다독였다고 한다. 남궁 대사는 "교민들의 대피와 본국으로의 이송을 철저히 책임지자는 자세로 임했고, 교민들도 모두 적극 협조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며 "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정부의 신속하고 과감한 지원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반드시 구하겠다는 약속"…조주영 공군 조종사

교민들을 한국까지 이송하기 위해 사우디 제다 공항으로 급파된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 '시그너스'에 탑승하는 교민들을 조주영 조종사(공군 중령)가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방부]

포트수단에서 교민들을 태운 공군 C-130J 수송기는 곧바로 바다를 건너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로 향했다. 제다 공항에선 교민들을 한국까지 이송하기 위해 급파된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 '시그너스'가 대기 중이었다. 시그너스의 조종사 겸 통제관 조주영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261비행대대장(중령)은 교민들을 처음 마주한 순간을 떠올리며 "한 분씩 괜찮으신지 안부를 물어보면서 '이분들을 반드시 안전히 모시고 가야겠다'고 다짐했었다"고 전했다.

조 중령이 조종대를 잡은 시그너스는 교민들이 제다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22일 김해공항을 이륙했다. 민항기가 아닌 군용기는 다른 나라의 영공을 지날 때 사전허가가 필요한데, 이 절차를 완료하지 못하고 출발했을 정도로 급박했다. 조 중령은 "일본과 대만, 필리핀 등 동남아 쪽 경로로 돌아서 가는데 10개국 중 8개국의 승인만 완료된 상태였다"며 "비행을 중간에 멈출 수 없으니 보통은 미리 허가를 완료한 뒤 출발하는데 이번에는 '확신'만 갖고 나섰다"고 설명했다.

평소 2주 가까이 걸렸을 10개국의 영공 통과 승인은 외교·정보 당국의 협조로 단 하루 만에 해결됐고, 조 중령은 교민들이 도착하기 전 미리 제다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 작전의 성공 비결을 '팀워크'로 꼽았다. 군과 여러 관계부처, 동맹·우방국까지 긴밀히 협조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육해공 특수전력이 모두 투입된 해외구출작전도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평소 합동훈련 등을 통해 교류한 덕분에 부대 간 협업도 매끄럽게 이뤄졌다고 한다.

조 중령은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수송기에 올라탄 교민 가운데 가장 어렸던 여섯 살 여자아이를 떠올렸다. 아이는 김은혜 참사관의 딸이었고, 동시에 최고령자는 김 참사관의 어머니였다고 한다. 조 중령은 "아이가 엄마를 만나러 수단에 왔다가 일주일 만에 무력 충돌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라고 들었다"며 "총성과 화약 냄새가 번지는 상황에서 아이가 얼마나 불안했을까 생각하니 더 더욱 우리 교민들을 잘 모시고 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회상했다.

밤낮없이 뛴 외교전…김은정 외교부 아중동국장

프라미스 작전을통해 철수한 수단 교민들이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현지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갈 동안 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탈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현지에서 우리 교민들을 도울 우방국의 협조를 이끌어낸 외교부의 노력은 작전 성공의 '핵심 키(Key)'였다. 서울 외교부 본부에서 탈출 작전을 지휘한 김은정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은 "어려울 때 누가 나를 진정으로 도와주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숨 막히는 외교전 속 빛을 발한 우방국 간 협조를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격언에 빗댄 것이다.

핵심은 '정보'였다. 김 국장은 "현지에선 정보 수집이 제한되는 만큼 본부에서 탈출 시점, 경로 등에 대한 여러 판단을 내려야 했다"며 "몸에 비유하자면 뇌에 해당하는 의사 판단을 맡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교 당국은 교민들의 이동 경로를 개척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우방국에 접촉했는데, 특히 현지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아랍에미리트(UAE)의 도움이 주효했다. UAE 측은 교민들을 태울 대형버스 제공부터 경호 임무까지 먼저 자처했다고 한다.

대사관에 모인 교민들은 수단을 떠나기 전 UAE 대사관저로 향했고, UAE 차량의 엄호 속에 무사히 수단을 빠져나왔다. 버스로 이동할 땐 미국이 각종 정찰자산을 통해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경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국장은 "UAE는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굉장히 각별한 사이"라며 "원전 공동건설과 의료 협력, 올해 1월 대통령 국빈 방문 당시 300억 달러 투자 유치까지, 그동안 쌓아온 끈끈한 우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국장은 "본부에서도 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긴장감이 가득했는데, 무사히 돌아온 직원들을 보니 마음이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며 "특히 우리 군이 대기 중인 포트수단으로 교민들이 잘 도착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다같이 얼싸안고 환호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여러 외교적 노력을 토대로, 관계부처와 대통령실이 '원팀'으로 움직인 덕분"이라며 "평소 우방국과 쌓은 친분이 위기에 어떻게 빛을 발하는지 다시금 느꼈다"고 말했다.

과감한 결단과 고위급 소통…빠른 판단 이끌었다

"당신의 국민은 곧 우리 국민이다.(Your people are our people)"

칼둔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보낸 짧은 메시지는 프라미스 작전에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잘 보여주는 대목으로 꼽힌다.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박 장관은 평소에도 UAE 측 인사들과 개인적으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친분이 두텁다고 한다. 실무진의 유기적 움직임에 고위급 소통이 더해져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박 장관은 늦은 밤까지 직접 회의를 주재하는 등 수시로 상황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교전 발생 직후 24시간 비상체제를 가동했고, 현지에서 미국 외교관 차량 피격 등 상황이 악화되자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외교부는 물론 국방부와 각 군, 국가정보원까지 한몸처럼 대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방미길에 오른 공군 1호기 내에서도 화상회의를 주재하며 교민 탈출 직전까지 상황을 챙겼다. 정부 관계자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1991년 '모가디슈 탈출작전'을 상기하며 "더 어려웠지만, 더 잘해냈다"고 평가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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