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發 후폭풍]“감옥 가도 남는 장사”…주가 조작 솜방망이 처벌

황윤주 2023. 4. 28. 06: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불공정거래 사건당 평균 부당이득 금액 46억원
불기소율 55.8%…40.6%는 집행유예로 풀려나
부당이득 환수 등 법제화…법사위 문턱 못 넘어

지난 24일 8개 종목(대성홀딩스·서울도시가스·선광·삼천리·세방·다이데이타·하림지주·다올투자증권)이 일제히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불거진 SG증권발 폭락 사태 관련, 검찰의 수사와 금융당국의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검찰은 작전 세력으로 지목된 10명을 출국 금지 조치한 후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주가 조작 정황을 확인하고, 한국거래소로부터 증권 계좌 데이터 등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금감원·서울남부지검 등은 27일 이번 주가 조작에 연루된 강남의 투자컨설팅 업체를 압수수색했다.

다만, 전례를 보면 이들이 재판에 넘겨져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역대 불공정거래 사건당 평균 부당이득 금액은 46억원에 이르렀지만, 불기소율이 55.8%나 됐고, 기소돼도 40.6%는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으로 나타나서다.

장기간 서서히 주가 끌어올린 특이한 사례

SG증권발 폭락 사태로 증시가 어수선한 가운데 하한가 8인방 중 대성홀딩스·서울도시가스·선광은 27일에도 하한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4거래일 연속 하한가였다. 시장에선 주가 조작 세력이 다단계 식으로 모집한 투자금을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활용해 3년여에 걸쳐 주가를 끌어올렸다가 대량 매도하면서 이번 사태가 벌어졌고, 반대매매로 급락세가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오늘(28일) 9시15분 현재 서울도시가시는 보합권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대성홀딩스는 23.15%, 선광은 20.67%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통정매매를 통한 시세 조종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라며 "다만 기존의 불공정거래와 달리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주가를 올리고, 거래량도 늘렸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라고 말했다. 통정매매란 주식 매도·매수자가 사전에 거래 시기·수량·단가를 협의해 매매가 성사되도록 하는 거래를 말한다. 자본시장법 176조(1·2호)은 '자기가 매도(매수)하는 것과 같은 시기에 그와 같은 가격 또는 약정 수치로 타인이 그 증권 또는 장내 파생상품을 매수할 것을 사전에 그 자와 서로 짠 후 매수 혹은 매도하는 행위'(통정매매)를 금지하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에 불공정거래 범죄 되풀이

주식시장에서 벌어지는 불공정거래는 크게 ▲미공개정보 이용 ▲부정거래 ▲시세조종 ▲시장질서 교란 등으로 구분한다. 한국거래소가 금융위에 통보한 전체 불공정거래(105건) 중 91.4%(96건)가 3대 불공정거래(미공개정보 이용, 부정거래, 시세조종)에 해당한다.

불공정거래는 2020년 112건, 2021년 109건, 2022년 105건으로 조금씩 줄었다. 그러나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이번 사건처럼 새로운 수법으로 주가를 조작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SG증권발 하한가 사태도 기존에는 볼 수 없는 불공정거래 유형으로 파악된다.

불공정거래는 범죄에 따른 부당이익 규모가 큰 편이다.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심리 결과 각 사건당 평균 부당이득 금액은 약 46억원에 이르렀다. 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다시 저지르는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증선위가 조치한 3대 불공정거래 사건 중 과거 전력자 비중은 2019년 15.4%, 2020년 28.5%, 2021년 21.2%로 증가 추세다.

불공정거래가 반복해서 벌어지는 이유가 있다. 현행법은 3대 불공정거래에 대해 형사처벌(징역·벌금 등) 위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불공정거래 관련 처벌이 약한 편이다.

최근 5년(2017~2021년)간 증선위는 불공정거래 혐의자의 93.6%(1006명)에게 고발·통보 조치를 내렸다. 과징금(행정조치)을 받은 혐의자는 2.0%(22명)에 불과했다.

형사 처벌이 과징금보다 무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가깝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원 판결 확정까지 평균 2~3년이 걸리는데 위법 행위자는 그 사이 자본시장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형사처벌은 엄격한 입증 책임이 요구돼 기소율과 처벌 수준이 낮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6~2020년 5년간 불공정거래 관련 고발·통보된 사건 중 불기소율은 55.8%에 이른다. 불공정거래 관련 대법원 선고(2020년 기준)를 보면 실형 비율은 59.4%(38명), 집행유예는 40.6%(26명)이었다.

주가 조작을 해도 2명 중 1명은 법원조차 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법원에 가서 재판을 받아도 10명 중 4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더구나 경제적 제재도 쉽지 않다. 법원이 범죄자의 부당이익을 몰수하거나 과징금 부과를 선고하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에서 '주가 조작으로 1~2년 감옥에 가도 50억은 챙긴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나오는 이유다.

부당이익 산정 방법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법원이 불공정거래 사건에 불기소 판결을 곧잘 내리는 이유는 책임주의 원칙 때문이다. 개인은 자신에게 귀책 사유가 있는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민법의 원칙이다.

법원은 책임주의 원칙에 근거해 불공정거래로 얻은 이익을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 2011년 헌법재판소 판례가 대표적이다. 불공정거래로 취한 부당이익과 다른 요인에 따른 이익(더불어 회피한 손실액)을 분리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자본시장법(제443조 제1항 단서)에서는 불공정거래나 시장질서 교란 행위에 따른 부당이익 산정 방법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부당이익을 산정할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라며 "법원이 '불상'의 부당이익만 취했다고 판단해 이를 몰수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질서 교란보다 위법성이 큰 3대 불공정거래 판결이 '솜방망이'에 그치는 배경이다.

영국·캐나다, 과징금 부과에 금융상품 거래 제한도

미국과 영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과징금 관련 부당이득 산정 방식을 법규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사법부와 협조해 유연하게 행정제재를 하고 있다. 미국·영국·캐나다·호주·일본은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민사 제재금(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캐나다·홍콩·독일·영국의 경우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해 금융상품 거래까지 제한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금융당국(BCSC)은 지난해 6월14일 캐롤라인 댄포드 사건에 대해 증권·파생상품 거래와 금융당국 등록법인 임원 선임을 영구적으로 제한했다. 미등록 거래, 투자설명서를 제출하지 않은 증권의 유통,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증권의 거래 행위, 유가증권의 인위적인 가격 형성 등의 혐의였다.

홍콩 금융당국은 2018년 8월3일, 차이나AU그룹 전 최고경영자(CEO)가 14개 증권거래 계좌를 이용해 상당량의 차이나AU 주식을 사고 팔아 해당 주식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듯한 모습을 보인게 한 데 대해 4년간 상장법인의 임원 선임과 경영 참여 제한, 4년간 증권·선물 거래 제한 등의 조치를 했다.

부당이익 산정 법안 2018년 첫 발의…5년 만에 법사위 문턱 넘어

국내에서도 부당이익을 산정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안이 대기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2018년 '부당이익 산정 방식 법제화'와 관련된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을 처음 발의했다. 그러나 해당 상임위(정무위원회)를 넘지 못하고, 국회의원 임기 만료로 2020년 5월29일 폐기됐다.

박용진 의원은 재선에 성공한 후 2020년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박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불공정거래에 따른 부당이득 산정 방식은 위법 거래로 발생한 총수입에서 그 거래를 위한 총비용을 공제한 차액으로 명시하고 있다. 대신 유형별로 대통령령에서 산정 방식을 정해 법적 분쟁 여지를 줄이는 방식이다.

이 법안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로 넘어갔다. 불공정거래와 관련한 부당이득 산정 방식에 대한 개정이 정무위 문턱을 넘는데 5년이나 걸린 셈이다.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이견이 없으면 5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 관계자는 "보통 법안 통과 후 공포까지 한 달이 걸리는데, 해당 법안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며 "법 시행 당시 수사 중이거나 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불공정거래로 부당이득을 취한 사람들의 처벌 근거가 명확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