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내면에 집중하니 타인과 연결돼” [쿠키인터뷰]

이은호 2023. 4. 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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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   사진=박효상 기자

재해가 들어오는 문. 지난달 8일 개봉한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 속 뒷문은 흡사 판도라의 상자 같다. 언제 어디서 열릴지 모르는 그 문을 여고생 스즈메(하라 나노카)는 죽을 힘을 다해 막는다. 문을 닫는 힘은 기억으로부터 나온다. 지금은 폐허가 된 곳에 한때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데서. 한국에서만 500만 가까운 관객을 불러들인 힘도 기억으로부터 나왔다. 재해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고, 남은 자들을 위로하는 데서.

27일 서울 한강로3가 한 호텔에서 만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누구나 살면서 인생을 크게 변화시킬 사건을 만난다. 내게는 그것이 2011년 벌어진 동일본 대지진이었다”고 털어놨다. 2만명 이상을 희생시킨 재난은 베테랑 애니메이션 감독의 창작 세계를 뒤흔들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제가 직접 피해를 겪지는 않았지만, 제 안에선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어요. 지난 12년간 저는 늘 그 재해를 생각했습니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 쇼박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재난 3부작’으로 불리는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그리고 ‘스즈메의 문단속’이다. 신카이 감독은 “내 발밑을 바라보며 만든 영화들”이라며 “그런 작품이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사랑받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2017년 개봉한 ‘너의 이름은.’은 세월호 참사가 할퀴고 간 상흔을 위무하며 한국에서 382만여 관객을 동원했다. ‘날씨의 아이’는 아시아와 북미에서 2019년 개봉해 1억달러 넘는 이익을 거뒀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붓과 언어로 현대를 그리는 화가이자 시인.” 영화 ‘러브레터’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와이 슌지 감독은 신카이 감독을 이렇게 평가했다.

“일본에서 벌어진 재해를 그린 영화라 외국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을까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들어보니 ‘너의 이름은.’ 이상으로 젊은 관객들이 많이 봐주셨다더군요.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한국의 젊은 관객들이 왜 이렇게 이 영화를 좋아하시는지요. 어쩌면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이 남을 바라보는 것과 연결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 내면을 계속 지켜보다 보면 타인으로 이어지는 길이 생기는 것 같아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   사진=박효상 기자

‘스즈메의 문단속’ 이전엔 455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잇따른 흥행에 한일 언론은 ‘한국 젊은이들이 예스 재팬으로 돌아섰다’는 진단을 내놨다. 신카이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재미가 있어서 본 것일 뿐, 일본 작품이라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라는 분석이다. 그는 “일본 사람들이 K팝, K드라마를 즐기는 것도 마찬가지”라면서 “양국간 문화 장벽이 사라졌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신카이 감독 역시 K팝 팬이다. 그는 그룹 아이브가 지난 10일 발표한 노래 ‘아이 엠’(I AM)을 일주일 내내 들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젊은 거장은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과 ‘엑시트’(감독 이상근)을 특히 인상 깊게 봤다고 한다. 신카이 감독은 “두 작품은 영상미나 연출도 물론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각본이 강력하다. 이렇게 강한 각본을 가진 한국에서 왜 세계적으로 히트한 애니메이션이 나오지 않는지 의문일 정도”라며 “아직 한국 쪽과 협업 제안을 받은 적은 없지만, 함께 작업하는 카와무라 겐키 프로듀서가 봉준호 감독님과 함께 일한다고 자랑하기에 내심 부러웠다”고 농담했다.

기억하기를 통한 신카이 감독의 추모와 위로는 어쩌면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이날 “다음 작품에서도 재난을 다루면 관객들이 질리지 않을까 싶다. 다른 주제에 도전하는 게 좋겠다고 최근 생각했다”고 밝혔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을 소설로 옮긴 동명 책 작가 후기에선 “비슷한 이야기를, 이번에야말로 더 잘해보려고”라며 “계속 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일본에서 나고 자랐기에 앞으로도 영화 배경을 일본으로 쓰겠으나, 등장인물은 다양한 국적으로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다”며 “그게 요즘 현실에도 더 부합하는 설정”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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