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면제의 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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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3만5000달러 내외인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다른 국가에 비해 낮지 않고, 평균 국민소득은 세계적으로 상당한 반열에 올라 있다.
지니계수를 포함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상대 비율로 본 일반적인 불평등 지표도 비교적 양호하다고 평가받는 편이다.
무조건적인 부채 탕감은 아니고, 면제의 규례에 따라 사회 전체적인 혜택이 되도록 합리적 원칙에 입각한 세심한 정책설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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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3만5000달러 내외인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다른 국가에 비해 낮지 않고, 평균 국민소득은 세계적으로 상당한 반열에 올라 있다. 지니계수를 포함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상대 비율로 본 일반적인 불평등 지표도 비교적 양호하다고 평가받는 편이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매우 낮은 계층을 초점에 둔 빈곤 문제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중위 가계소득의 절반을 빈곤선으로 정의하는 방식으로 이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로 2020년 15.3%다.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9번째 높은 비율이다. 물론 해당 지표는 국가마다 소득 수준이 달라 절대빈곤 개념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저소득 인구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특히 66세 이상 노인 인구 중심으로 보면 그 비율이 40.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물론 우리나라 노인은 주택을 보유한 경우가 많아 자산가치를 고려하면 빈곤 비율이 과대 추산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주택 소유자도 결국 현금 흐름으로 나타나는 소득 수준이 낮으면 실제 경제적 여유가 없을 가능성은 크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처럼 물가 상승이 충분히 진정되지 않은 가운데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시기는 특히 빈곤층의 생활고가 악화할 수 있어 우려된다. 생활고로 삶 자체를 위협받는 이들의 비극적 현실과 관련해 요즘 들려오는 소식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이자율 상승과 함께 대출금리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계층이 증가하면서 현금 흐름이 부족한 이들의 빈곤 문제가 더욱 대두되고 있는데, 일종의 ‘금융빈곤’ 이슈다.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에 아예 상환능력을 상실한 기존 채무자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자산이나 소득이 있어도 현금 흐름 약화나 기존 채무의 부담 증가로 언제든지 누구나 빈곤계층으로 전락하기 쉬운 경제·금융 환경이다. 최근 전세금을 제대로 반환받지 못해 어려움에 빠지며 생존 자체가 위험에 노출된 경우도 이런 금융빈곤 맥락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신명기 15장 4∼5절은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명령으로 ‘면제의 규례’가 언급된다. 이웃에게 빌려준 채무에 대해 매 칠 년 되는 면제년에 채무를 면제하라는 말씀이다.
과도한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채무자들이 무너지는 상황을 막는 것은 채무자가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단지 구제한다는 차원뿐만 아니라 결국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아 자산가치 손상으로 채권자들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무조건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채를 함부로 일으켜 성과는 자신이 갖고 손실 책임은 소홀히 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면제의 규례가 지닌 깊은 의미를 생각하면 어떤 일정 원칙을 정하고 부담을 감소시키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면제의 규례’가 지녀야 할 합리적 원칙은 분명하다. 적절한 위험관리 없이 자본이득 추구 목적으로 대규모 부채를 일으킨 경우라면 ‘면제의 규례’를 적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부동산가격 급등 상황에서 삶에 필수적인 주거서비스 불안으로 부채를 어쩔 수 없이 일으키도록 내몰렸고 그 결과 지금의 ‘금융빈곤’ 위험에 처한 경우라면 정책적으로 도와야 한다. 무조건적인 부채 탕감은 아니고, 면제의 규례에 따라 사회 전체적인 혜택이 되도록 합리적 원칙에 입각한 세심한 정책설계가 중요하다.
성태윤(연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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