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집값 떨어지니 입 다물라?

강창욱,산업2부 2023. 4. 2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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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는 최근 서울시내 한 대규모 신축 주상복합단지 내에서 논란이 된 일들을 보도했다.

설계상 하자, 입주 강행, 그 후에도 계속되는 공사, 천장이 낮아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용역원 휴게실 실태 같은 문제였다.

안내문이 붙은 날 입주민 사이에선 "저런 글을 여러 사람이 보는 곳에 붙였다면 명예훼손 아니냐"는 항의가 나왔다.

"보도랑 다른 내용이 뭐냐" "입주민과 용역직원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저런 공지문을 내느냐"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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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산업2부 차장


국민일보는 최근 서울시내 한 대규모 신축 주상복합단지 내에서 논란이 된 일들을 보도했다. 설계상 하자, 입주 강행, 그 후에도 계속되는 공사, 천장이 낮아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용역원 휴게실 실태 같은 문제였다. 기사가 나가고 아파트에는 시행사 측 명의로 ‘언론보도 관련 안내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붙었다. 이 안내문은 원색적 어조로 입주민을 꾸짖고 언론사를 비방하고 있었다. ‘최근 일부 계약자가 자신의 민원 해결을 목적으로 입주민들과 계약자를 선동하고, 사실과 다른 사항을 언론사에 제보하고, 언론사에서는 사실확인 없이 왜곡된 기사를 싣고….’

시행사는 일부 계약자와 본보가 ‘(아파트)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은 물론 자산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도 사례의 당사자가 제보자라고 넘겨짚는 모양인데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취재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다른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큰 문제가 없다”며 안도하는 경우였다. 문제 세대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안내문이 붙은 날 입주민 사이에선 “저런 글을 여러 사람이 보는 곳에 붙였다면 명예훼손 아니냐”는 항의가 나왔다.

입주민이 사실과 다른 사항을 제보하고, 언론사는 사실확인 없이 왜곡된 기사를 쓰고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거니와 몰염치하기까지 한 소리다. “공용부 사생활 침해 문제를 사전에 발견하지 못한 건 인정한다”던 시행사 임원은 실언을 한 것인가. 공공연하게 게시된 안내문을 보고 입주민들은 어이없어하거나 분개했다. “보도랑 다른 내용이 뭐냐” “입주민과 용역직원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저런 공지문을 내느냐”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는 기업 앞에서 입주민이 느끼는 무기력함은 “갑질이다” “깡패나 다름없다” 같은 하소연으로 터져 나왔다.

시행사는 안내문에서 보도 내용을 일일이 반박했다. 실외 정원에서 바로 앞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생활 침해 우려에 대해 “설계상 문제가 아니다”라며 “집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개방감을 즐길 수도 있다”고 강변했다. 뻥 뚫린 우산을 받은 사람이 “비가 샌다”고 하니 “시원하게 비도 맞고 하늘도 볼 수 있어 좋지 않으냐”고 하는 격이다. 말장난 같은 주장을 ‘역발상’이라며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유는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끝내 자신을 변호하려 드는 기업의 태도가 어떤 식으로든 고객 피해로 이어지게 마련인 탓이다.

용역원 휴게실이 기준 위반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관련법이 아파트 사업승인 후 시행됐기 때문에 안 지켜도 위법이 아니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틀린 주장이다. 아파트(사업장)가 언제 지어졌든 휴게시설은 새로운 규정에 맞게 설치해야 한다. 본보 보도 하루 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이 현장을 다녀갔다. 그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말하고 돌아갔다는 게 시행사와 시공사의 설명이다. 과연 그랬는지 해당 감독관에게 물었다. “문제가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았고요. 과태료 부과 등의 행정 조치는 아직 시행 전이라 실시를 안 한 겁니다. (그 휴게실은) 기준에 전혀 맞지 않아 빨리 수정하시도록 했습니다.” 감독관은 “계속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흡한 경비원 휴게실이나 단지 내 하자 때문에 아파트값이 떨어진 사례는 본 적이 없다.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집값을 결정하는 요소는 학군·교통·생활인프라 같은 입지와 단지 규모, 시장 분위기 같은 것들이다. 굳이 따지면 아파트 브랜드 가치가 반영된다. 그렇다면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건 누군가. 상품(집)의 단점이나 하자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고객(입주민)인가. 아니다.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고서 개선 요구마저 묵살하려 드는 쪽이다.

강창욱 산업2부 차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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