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민주당이 부끄럽습니다"
대통령 부인 겨냥 법 처리도 과도
민주당, 상호 이해와 절제 잃었다
“내가 외국에 있을 땐 절대로 우리 정부를 비판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1947년 야당 지도자였던 윈스턴 처칠이 한 말이다. 그러곤 이런 말도 했다. “물론 귀국해선 잃어버린 시간을 벌충하지만.” 처칠만 그랬던 건 아니다. 이 원칙은 국가 지도자의 해외 순방 때에도 적용되곤 한다. 그래서 2021년까지 인류가 생산한 방대한 문서로 학습한 챗GPT는 이렇게 말한다.
“외국을 공식 방문 중인 정상을 정치인들이 비판해선 안 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부적절하고 프로답지 않은 일로 간주한다. 특히 국가 평판이나 외교 관계에 악영향이 있을 땐 말이다. 정상의 신뢰도나 실행력을 훼손할 수 있다면 외교 관례 위반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순방 중인 정상에 관해 얘기할 때는 주의하도록 권고받는다.”
비판할 일은 비판해야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맥락에서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은 놀라웠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화동(花童)에게 볼 키스한 걸 두고 “미국에선 아이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 아이의 입술이나 신체 다른 부분에 키스하는 건 성적 학대행위로 간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 '인사이더'가 "1833년 앤드루 잭슨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시작으로 정치인이 아이에게 볼 키스하는 게 미국 선거운동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는 기사를 쓴 게 불과 3년 전이었다. 그사이 달라졌을까? 아닐 것이다. 장 최고위원의 특이한 발상과 그걸 입 밖에 내는 '패기'가 신기할 뿐이다. 더욱이 장 최고위원은 지난해 캄보디아 순방 중 김건희 여사가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을 두고 '조명을 켜고 연출한 사진'이라며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한 전력이 있다. 그가 민주당의 ‘팜 시스템’에서 배출된, 정치혁신위를 이끄는 40세 차세대 정치인이란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보인다.
민주당의 주축인 시민단체(환경연합) 출신 양이원영 의원도 주목할 만했다. 윤 대통령이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로부터 한국 투자를 약속받았는데, “지금 해외에 투자할 땐가”라고 득달같이 글을 올렸다. 새삼 그의 이력(라이프치히 경영대학원과 KDI 공공정책학 석사)을 들여다보게 했다. 자신이 틀린 걸 알고는 삭제하더니 곧 “이미 결정된 걸 사진 찍으러 간 것 아니냐”고 외려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투자 유치는 “당일 결정된 것”이라고 두둔할지 자못 궁금하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은 어제(27일) 정의당 등과 손잡고 ‘김건희 특검법’ 신속처리 안건을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 부부가 사흘 뒤 귀국하고 나서 처리해도 될 걸 미국에서 한창 외교 활동 중에 굳이? 그 신속함이 경이롭다.
세 가지 사례는 민주당의 기이성을 보여주는 일부일 뿐이다. 시야를 돌리면 돌리는 대로 사례가 널렸다. 자신들이 여당일 땐 통과시킬 생각조차 않다가 일방의 이익만을 반영한 법안을 표를 바라며 줄줄이 처리했다. 양곡관리법이 그렇고, 간호법·의료법·방송법이 그렇다. 통과되면 해당 부문은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게 뻔하다. 명백히 원인 제공자는 민주당인데, 수습 책임과 비난은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집권당에 떨어지는 구조다. 신묘한 수다. 그러나 책임성엔 반한다. ‘1+1’ 복당도 대단했다. 자당 의원을 탈당시켜 다른 당 의원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곤 복당시킨다는 발상도, 그걸 집행하는 것도 놀라운데, 한 명(김홍걸)을 끼워넣었다.
원래 민주주의는 "상대 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이해,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속에서 유지된다. 민주당은 안 그런 지 오래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이 민형배 의원 복당 건을 두고 “민주당이 부끄럽습니다”라고 했던데, 그것 말고 부끄러워 할 일이 많다. 이재명 대표의 부패 혐의와 ‘돈봉투 전당대회’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고정애 Chief에디터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내와 일본여행 온 중국인 소방관…도쿄 한복판서 20대 성폭행 | 중앙일보
- '도를 아십니까' 따라가봤다…진용진 머릿속을 알려드림 | 중앙일보
- 김건희 여사, 만찬서 졸리와 건배...똑닮은 화이트 드레스코드 | 중앙일보
- "이 괴물이면 신붓감 탈락"…짝짓기 몰려간 중국 남성들 내건 조건 | 중앙일보
- 같은 그 브랜드인데...그날 이재용 딸 '하객룩' 느낌 달랐던 이유 [더 하이엔드] | 중앙일보
- 수단 혼란 틈타 사라졌다…'40만명 대학살' 독재자 또다른 범죄 [후후월드] | 중앙일보
- "여친 귀싸대기 날렸다"…JMS 정명석과 싸움 결심한 28년전 그날 | 중앙일보
- "발음·매너·유머 빠질 게 없다"...네티즌 깜놀한 尹영어 실력 | 중앙일보
- 검찰에 되레 "명단 까라"…총선 앞 '돈봉투' 확산 벌벌 떠는 野 | 중앙일보
- "가정생활 파탄"…간호조무사 수술에, 남성 환자 40명 당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