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줄무늬 파자마 입은 환자
정신질환자는 스스로 병이 있음을 자각하는 병식(病識)이 없어, 치료에 저항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과거엔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만 있으면 정신과 의사의 판단에 따라 정신질환자를 자유로이 입원시킬 수 있었다. 소위 ‘강제 입원’ 제도다.
당연하게도 이런 제도는 악용이 잦았다. 재산상 갈등을 겪는 부모나 친인척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는 사례가 계속 불거졌다. 2016년 헌법재판소에서 관련 법률을 개정하라는 결정이 나오며, 결과적으로 과거와 같은 강제 입원은 진단 목적의 2주만 허용되는 형태로 법률이 개정됐다. 그런데 좋은 취지와 달리 실제 결과는 나빴다.
심평원 보건의료 빅데이터 시스템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 수는 최근 10년간 2만3000명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7년 개정 정신보건법 시행을 기점으로 4년간 입원 환자 수는 꾸준히 줄어, 2021년엔 약 5000명이 줄어든 1만8000명까지 떨어졌다. 입원이 필요한 정신질환자 숫자가 준 게 아니다. 정신질환자를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적절한 탈원화(脫院化) 조치도 없이 조현병 환자 5000명이 지역사회로 내몰린 것이다.
이들의 근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비슷한 처지인 미국 정신질환자들의 처지는 확실히 나빴다. 어설피 추진된 탈원화 운동 탓에 병원 밖으로 내몰린 정신질환자들이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됐기 때문이다. 단순한 추정이 아니다. 미국에선 노숙자 4분의 1이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아예 교도소에 수감된 중증 정신질환자 숫자가 주립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보다 10배나 많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병식 없는 정신질환자들이 환자복을 죄수복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법무부에 따르면, 강제 입원 조항이 개정되기 전엔 전체 수용자 중 정신질환자 비율은 평균 5.3% 정도였다. 그런데 2017년 법률 개정 이후 이 비율이 꾸준히 높아져, 2021년에는 전체 수용자의 9.3%에 달하는 4800명의 정신질환자가 교정 시설에 수감 중인 상태다. 10년 사이에 정신질환을 앓는 수감자 수가 2.2배나 늘어난 건데, 분명 적절한 치료만 받았으면 구속에 이를 수준의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을 사람들이 포함된 숫자다.
해법은 인권 침해적 강제 입원 규정을 복구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해외에선 대신 사법입원제도가 자리 잡았다. 입원 결정을 법원 같은 공식 국가기관의 판단에 따르자는 논리다.
그렇지만 국내에선 한때 언급만 됐을 뿐, 관련 논의가 소멸했다. 정신질환자가 강제로 환자복을 입는 게 인권 침해면, 지금 상황은 대체 뭐라 불러야 할까.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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