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고생깨나’ 한 사랑도 마침내, 사랑일까?
영화 ‘헤어질 결심’은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박해일)과 변사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의 아슬아슬한 러브라인을 그리고 있다. 영화엔 주요 장면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추격 신 하나가 나온다. 해준이 살인범 산오(박정민)를 뒤쫓는 장면이다.
숨 가쁘게 쫓고 쫓기던 두 사람이 연립주택 옥상에서 대치한다. 산오는 죽음을 결심한 듯 흐느끼며 말한다. “가인이한테 ‘나 너 때매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요렇게 좀 전해주세요.” (※산오는 가인이 때문에 “죽음보다 더 무서워하던” 감옥에 갔다 왔고, 살인까지 했다.)
‘너 때문에 고생깨나 했지만/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고? 이 말은 앞뒤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감정, 즉 원망과 사랑이라는 양가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고생깨나 시킨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있다. 그가 ‘고생깨나’ 한 것은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보라. 고생깨나 시킨 것은 가인이가 아니라 가인이를 사랑했던 산오 자신이다. 이 사실은 ‘사랑’이란 두 글자에 만남의 설렘이나 기쁨만이 아니라 고통도 내장돼 있음을 말해준다.
보고 싶어 잠 못 들던 날들도, 애태우고 속 끓였던 과정도, 그 사람 때문에 갈림길에 서야 했던 기억도 서래의 대사를 빌리자면 “마침내”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생깨나 했지만’은 순정을 다 바쳐서 사랑했다는 강조의 표현이 되고, “너무 쉬운 사랑은 다 거짓말”(버스커버스커)이 아닌지 묻게 만든다.
○○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당신이라면 ○○에 누구를, 무엇을 넣을 것인가. 자녀? 배우자? 연인? 종교? 돈? 직장? 아이돌? 중요한 건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내 인생 공허하지 않았다”고 외칠 만한 그 무언가가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있느냐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내와 일본여행 온 중국인 소방관…도쿄 한복판서 20대 성폭행 | 중앙일보
- '도를 아십니까' 따라가봤다…진용진 머릿속을 알려드림 | 중앙일보
- 김건희 여사, 만찬서 졸리와 건배...똑닮은 화이트 드레스코드 | 중앙일보
- "이 괴물이면 신붓감 탈락"…짝짓기 몰려간 중국 남성들 내건 조건 | 중앙일보
- 같은 그 브랜드인데...그날 이재용 딸 '하객룩' 느낌 달랐던 이유 [더 하이엔드] | 중앙일보
- 수단 혼란 틈타 사라졌다…'40만명 대학살' 독재자 또다른 범죄 [후후월드] | 중앙일보
- "여친 귀싸대기 날렸다"…JMS 정명석과 싸움 결심한 28년전 그날 | 중앙일보
- "발음·매너·유머 빠질 게 없다"...네티즌 깜놀한 尹영어 실력 | 중앙일보
- 검찰에 되레 "명단 까라"…총선 앞 '돈봉투' 확산 벌벌 떠는 野 | 중앙일보
- "가정생활 파탄"…간호조무사 수술에, 남성 환자 40명 당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