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열등생, LIV 우등생으로…“내 우승 소식 실린 기사에 감격”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33·한국이름 이진명)는 10대 시절 ‘골프 신동’으로 불렸다. 지난 2009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 줄곧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약했다. PGA투어에선 1승에 그쳤던 그는 올해 2월부터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LIV 골프 투어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지난달 20일, 그는 두 번째 출전한 LIV 2차 대회(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덜컥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54억원. 그가 14년간 PGA투어에서 벌어들인 상금 200억원의 4분의 1을 넘는 거액을 단숨에 벌어들였다.
한국계 선수로는 처음으로 LIV 골프 우승자가 된 대니 리를 27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장에서 만났다. LIV 5차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뙤약볕 아래서 연습이 한창이던 대니 리는 “마지막 퍼트는 정말 짜릿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의 우승이라 감격이 더 컸다. 모처럼 내 이름이 나온 한국 기사를 열심히 찾아봤다”며 활짝 웃었다.
대니 리는 지난해까지 PGA투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자금을 댄 LIV 골프 출범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대니 리는 “지난해 2월 케빈 나(40·미국) 형이 LIV 골프로 이적을 권유했다. 무심코 ‘오케이’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모두가 꿈꾸는 곳이 PGA 투어 아닌가. 우승은 많이 못 했어도 시드를 잃지 않으면서 10년 넘게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LIV로 옮기려니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고심하던 그는 결국 “지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다”는 케빈 나의 충고를 받아들여 LIV로 적을 옮겼다.
10대 시절 대니 리는 잘 나가던 유망주였다. 뉴질랜드 주니어 국가대표를 거쳐 2008년 US아마추어챔피언십 정상을 밟았다. 타이거 우즈(48·미국)가 갖고 있던 18세 7개월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18세 1개월로 갈아치웠다. 이듬해 2월에는 유러피언 투어 조니워커 클래식을 제패하며 한 단계 더 올라섰다. 그러나 정작 2009년 프로 데뷔 이후에는 기대했던 것만큼 많은 우승을 하지 못했다. 2015년 그린 브라이어 클래식이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 원인은 자신감 결여였다.
대니 리는 “프로가 되고 나서 두 번째 대회로 기억한다. 내 앞에는 우즈, 뒤에는 애덤 스콧(43·호주)과 어니 엘스(54·남아공)가 있었다. 이들의 스윙을 바로 옆에서 보니까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더라. 대회가 거듭될수록 그런 생각이 많아졌고, 나는 계속 위축됐다. 그러다가 정상에서 멀어졌다”고 말했다.
PGA투어 2022~2023시즌에서도 11개 대회 중 5차례나 컷 탈락했던 대니 리는 결국 2월부터 LIV 투어로 적을 옮겼다. 그리고 다음 달 열린 두 번째 대회에서 정상을 밟으면서 말 그대로 ‘잭팟’을 터뜨렸다. 대니 리는 “골프는 외로운 스포츠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전역을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다. LIV는 그렇지 않다. 팀 경기도 중요하다. 우리 팀(아이언헤드)의 경우 케빈 형과 김시환(35) 형, 그리고 스캇 빈센트(31·짐바브웨)가 가족처럼 지낸다. 그러다보니 자신감을 되찾게 됐다”고 말했다.
대니 리는 199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티칭 프로인 어머니 서수진씨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골프와 친해졌다. 8세 때 뉴질랜드로 건너간 그는 체계적으로 골프를 배우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됐지만, 대니 리는 우리말을 잘하는 편이다. 대니 리는 “빨리 한국에서도 LIV 대회가 열렸으면 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LIV를 국내 팬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경기를 직접 보셔야 LIV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대니 리를 비롯해 필 미켈슨(53)과 더스틴 존슨(39), 브룩스 켑카(33·이상 미국), 이안 폴터(47·잉글랜드) 등 LIV 소속 선수 48명이 총 출전하는 LIV 5차 대회는 28일 센토사 골프장의 세라퐁 코스(파71)에서 개막한다. 총상금은 개인전과 단체전을 합쳐 335억원이다.
☞LIV 골프=오일머니로 대표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남자프로골프 투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맞서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전 세계 선수들을 끌어 모았다. 72홀의 PGA 투어와 달리 대회 일정을 54홀로 줄이고, 컷 탈락을 없애 선수들이 적게 뛰고도 많은 상금을 받도록 했다. 또, 개인전과 동시에 단체전을 진행해 팀워크를 강조했다. 출범 첫 해인 지난 시즌엔 8개 대회를 개최했고, 올 시즌에는 14개 대회를 연다.
센토사(싱가포르)=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내와 일본여행 온 중국인 소방관…도쿄 한복판서 20대 성폭행 | 중앙일보
- '도를 아십니까' 따라가봤다…진용진 머릿속을 알려드림 | 중앙일보
- 김건희 여사, 만찬서 졸리와 건배...똑닮은 화이트 드레스코드 | 중앙일보
- "이 괴물이면 신붓감 탈락"…짝짓기 몰려간 중국 남성들 내건 조건 | 중앙일보
- 같은 그 브랜드인데...그날 이재용 딸 '하객룩' 느낌 달랐던 이유 [더 하이엔드] | 중앙일보
- 수단 혼란 틈타 사라졌다…'40만명 대학살' 독재자 또다른 범죄 [후후월드] | 중앙일보
- "여친 귀싸대기 날렸다"…JMS 정명석과 싸움 결심한 28년전 그날 | 중앙일보
- "발음·매너·유머 빠질 게 없다"...네티즌 깜놀한 尹영어 실력 | 중앙일보
- 검찰에 되레 "명단 까라"…총선 앞 '돈봉투' 확산 벌벌 떠는 野 | 중앙일보
- "가정생활 파탄"…간호조무사 수술에, 남성 환자 40명 당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