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의 ‘나이트호크’는 ‘모나리자’만큼 유명하다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이 사실은 현재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 한 점, 그의 1942년 작 ‘나이트호크’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현대 도시 생활의 단면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으로 여겨지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1503년경),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1508년경), 그리고 얀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만큼 유명하다.”
2020년 스위스 바이엘러 재단의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를 기획한 얼프 퀴스터의 설명이다.
호퍼의 국내 첫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지난 20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시작됐다. 국내에서 잘 볼 수 없었던 호퍼의 그림을 대거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이미 6월까지 티켓이 매진됐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전시회 개막과 함께 호퍼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는 책 두 권이 새로 출간됐다. 호퍼 팬들에게는 전시회를 좀더 풍요롭게 경험하는 방법이, 호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호퍼를 처음 만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A부터 Z까지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키워드를 통해 호퍼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예컨대, B로 시작되는 키워드는 ‘Buick(뷰익)’이다. 호퍼와 그의 아내 조(조세핀 호퍼)는 평생 뷰익을 탔고, 1957년 작 ‘웨스턴 모텔’에 이 자동차가 등장하기도 한다. 저자는 뷰익이란 키워드를 통해 호퍼 부부가 여행을 좋아했으며 특히 자동차 여행을 자주 했다고 알려준다. 호퍼 부부는 1941년에 2개월 간의 미대륙 횡단 여행을 하기도 했다. 호퍼는 여행을 하면서 그림의 소재를 찾고자 했고, 차 안에서도 드로잉과 수채화를 그렸다. “이것이 길 위에서 제작되거나 시작된, 매력적인 작품들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번 호퍼 전시회의 제목도 ‘길 위에서’이다.
H 키워드는 ‘House’(집)이다. 저자는 “집은 호퍼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로, 그의 그림 대부분에 등장한다”면서 “집들은 종종 따로 떨어져 있고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데, 대개 흰색인 이 목조 주택들이 호퍼의 자화상은 아닐까? 모든 면에서 자족적이고 외롭고 멜랑콜리한 호퍼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라고 설명한다.
키워드 중에는 ‘Gas Station’(주유소), ‘Jo’(부인 조), ‘Realism’(사실주의)처럼 호퍼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도 있지만 ‘Dos Passos’(친구인 더스 패서스), ‘Literature’(문학), ‘Shadow’(그림자), ‘Unconscious’(무의식) 등 호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열어주는 단어들이 많다.
각 키워드에는 서너 페이지를 넘지 않는 짧은 해설을 붙였고 해당 키워드를 잘 보여주는 호퍼 작품을 실었다. 이 책은 바이엘러 재단의 2020년 호퍼전 보충자료로 저술됐다. 저자 얼프 퀴스터는 단편적 설명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긴장감, 멜랑콜리, 무의식 등 호퍼 작품의 본질을 파고 든다.
2007년 국내 출간된 ‘빈방의 빛: 시인이 말하는 호퍼’를 번역한 박상미가 이번 책도 번역했다. 박상미는 이 책에 제시된 26가지 키워드를 호퍼를 들여다보는 창문들이라고 소개했다.
호퍼를 평전 형식으로 다룬 그래픽 노블이다. 호퍼는 ‘침묵의 화가’로 알려질 만큼 자신의 작품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고, 일상생활에서도 거의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개인 생활은 주로 아내가 남긴 일기를 통해 사후에 알려졌다.
이 책은 호퍼와 아내 조가 대화를 이어가며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그동안 남편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가려져 있던 조가 이 책에서는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 부각된다. 이번 한국 전시회도 조를 하나의 섹션으로 구성해 호퍼를 보는 중요한 창문으로 제시한다.
책은 뉴욕의 미술학교 시절(1900-1906), 파리를 오가며 유럽 미술을 경험하던 시기(1906-1910), 혹평과 호평이 교차하던 초기(1914), 아내와 결혼 후 성공을 일구던 시절(1924-1965), 노후(1965-1967)를 묘사한다.
“근데 당신은 왜 그래픽 아트를 선택했어요?”라는 조의 질문에 호퍼는 “모르겠어. 어렸을 때부터 늘 그림을 그렸으니까. 메리언(누나)이 내게 말해준 건데, 한 번은 학교에서 내게 뭘 물었더니 대답 대신 그림을 그려줬다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추상 또는 비구상적 회화에 대한 호퍼의 비판적 인식도 엿볼 수 있다. “자연을 묘사함에 있어 더 이상의 진전은 이룰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지.” “하지만 그건 메마르고 가망 없는 방향 설정으로, 할 말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해독 불가능하고 무기력한 회화의 방식이 아닐까.” 그러면서 “사실, 내가 그림에서 추구하는 건 자연이 내게 주는 내밀한 인상을 가능하면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었지”라고 덧붙인다.
호퍼의 생애를 그려낸 이 그래픽 노블은 화면 구성이나 색채 사용에서 호퍼의 스타일을 적극 반영했다. 첫 페이지는 호퍼의 마지막 작품 ‘두 희극배우’로 시작되고, 마지막 페이지는 ‘빈방의 빛’으로 닫는다. 표지 앞면과 뒷면은 ‘나이트호크’를 패러디해 그렸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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