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대결 속 ‘항미원조’ 띄우기… 中의 한국전쟁 서사 변천사
백지운 지음
창비, 388쪽, 2만2000원
“바야흐로 중국에서 항미원조 서사는 건국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고 부른다. 최근 조성된 미·중 대결 국면을 계기로 중국에서는 항미원조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영화가 대거 쏟아지고 있다. 한국전쟁 동부전선에서 중국군과 미군이 치열하게 맞붙은 장진호 전투를 극화한 2021년 영화 ‘장진호’는 중국 박스오피스 최대 흥행작이 됐다.
항미원조전쟁은 오랫동안 중국의 대중문화는 물론 공적 서사에서도 거의 사라진 이야기였다. 정권을 세운 지 1년 만에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총력전을 벌인 이 전쟁에서 중국은 2년 9개월간 총병력 240만명을 동원하고 30만명을 희생시켰다. 이 중대한 정치적 사건은 그러나 1953년 정전과 함께 빠르게 중국의 공적 담론장에서 사라졌다. 1950년대 말부터 중·소 갈등이 시작됐고, 펑더화이 등 전쟁 지휘자들은 정치적 숙청을 당했다. 미·중 데탕트 국면이 시작된 1970년대 이후 항미원조전쟁이 돌아올 정치적 공간을 찾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2000년대 들어서도 첫 10년은 미·중 밀월기였다.
백지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는 “지난 70년간 중국에서 항미원조전쟁의 기억과 기념은 미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관리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항미원조라는 명칭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지면에 다시 등장한 것은 전쟁 50주년을 맞은 2000년이었다. 항미원조전쟁 70주년을 맞은 2020년은 퇴색했던 항미원조전쟁의 정치적 상징성이 전면으로 귀환하는 해였다.
2016년 중국 관영 CCTV에서 방영된 36부작 드라마 ‘펑더화이원수’는 중국의 대중들이 안방에서 항미원조전쟁을 제대로 접한 첫 작품이었다. 2020년 방영된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는 중국의 항미원조 서사에서 단연 기념비적 작품이다. 무려 40회에 달하는 분량을 오롯이 한국전쟁에 쏟아부었다.
중국문화를 연구해온 백 교수의 책 ‘항미원조’는 중국에서 한국전쟁 서사가 어떻게 변화돼 왔는지 살핀다. 이를 위해 인민일보의 항미원조전쟁 기념 사설, 국가 지도자급 기념 담화, 중국에서 주류 가치를 재조직하는 주요 수단인 TV드라마와 영화 등을 분석한다.
중국이 미·중 대결 시대를 맞아 자국민을 결집하기 위한 수단으로 항미원조 서사를 대거 소환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유효할지에 대해서는 의문도 있다.
“70년 전 ‘항미’라는 구호가 중국인들에게 그토록 큰 소구력을 얻은 것은 세계 인민과 연대하여 제국주의에 저항한다는 사고 체계가 가동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미·중 적대구조에도 그러한 체계가 작동하는가… 세계 인민과의 연대라는 이념이 더는 존립하지 않게 된 지금,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애국주의와 중화주의라는 협소한 내셔널리즘의 구호들이다.”
중국 내 한국전쟁 서사가 폭발하면서 중국인들이 한국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처음으로 우리 시야에 드러나게 되었다. 중국이 제작한 영상물이나 기록에서 나타나는 한국전쟁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다.
세균전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압록강을 건너’에서는 중국군이 미군의 세균전에 대항해 대대적인 방역사업을 전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항미원조전쟁 60주년 기념 담화에 이어 70주년 기념 담화에서도 ‘세균전’을 언급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전쟁 중 일본의 731부대와 거래해 세균전을 벌였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해외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중국이 한국전쟁 참전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대만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중국은 미국이 38선을 넘어 둥베이 변경지역에 폭격을 가했다는 것과 함께 미국이 대만해협에 제7함대를 배치했다는 것을 참전 이유로 내세운다. 미국은 전쟁 발발 이틀 후 대만해협에 함대를 파견했는데 중국이 이를 내정간섭으로 규정한 것이다. 대만 문제가 중국에게 얼마나 민감한지 새삼 알려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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