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리·박찬호도 만족시킨 만찬…그 셰프 키운 건 '할머니 밑반찬'

박현영, 이세영, 김하나 2023. 4. 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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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여사가 선택한 국빈만찬
'게스트 셰프' 에드워드 리 인터뷰
"가난한 요리사"될까봐 부모 반대
학비 비싸 요리학원 안 가고 독학


"2월 말, 3월 초쯤 백악관에서 연락받았을 때는 얼떨떨해 실감 나지 않았어요. 대통령이 한 명도 아닌 두 명에다 손님 200명 한분 한분이 VIP인 행사는 처음이니까요. 어머니께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죠. 내가 해냈다는 걸 보란 듯 자랑하고 싶었거든요."

26일 열린 국빈만찬에 '게스트 셰프'로 참여한 에드워드 리 셰프와 질 바이든 여사. 사진은 행사 이틀 전인 24일 메뉴 설명회를 열었을 때 모습. [AP=연합뉴스]

2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위해 마련한 국빈만찬에 게스트 셰프로 활약한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51) 셰프의 말이다. 그는 이날 질 바이든 여사, 크리스 커머포드 백악관 수석 셰프 등과 함께 '고추장 비네그렛'을 곁들인 크랩 케이크 전채, 깻잎 오일을 얹은 뭉근하게 끓인 갈비 요리, '된장 캐러멜' 소스를 뿌린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냈다. 그가 질 여사와 함께 짠 메뉴다.

지난 25일 워싱턴DC에서 운영하는 남부 음식점 수코태시에서 만난 리 셰프는 "바이든 여사와 12개 이상 요리를 만들어 시식했고, 그중 셋을 최종 선택했다"고 밝혔다. "백악관 국빈만찬은 미국의 진수를 외국 손님에게 선보이는 자리이기 때문에 전통 미국 요리에 한국적 터치를 가미한 컨셉을 잡았어요."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바쁜 부모님 대신 할머니가 해주시는 한국 음식을 먹고 자랐다고 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밑반찬부터 김장까지 모든 걸 집에서 했어요. 나중에 수퍼마켓에서 김치를 파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할머니가 요리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익힌 게 미국 요리에 한국적 감각을 얹은 시그니처 스타일 탄생의 바탕이 됐다.

한국에서 이민 온 부모는 사탕 가게부터 세탁소까지 닥치는 대로 일하며 남매를 키웠다. 어려서부터 요리가 좋았지만, 부모 반대로 뉴욕대 영문과에 진학했다. 어머니는 그가 '가난한 요리사'가 될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커져 버린 꿈, 요리에 대한 열정을 접을 수 없었다. 요리학교 대신 뉴욕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독학으로 요리를 배웠다. "요리학교에 일주일 다녔는데, 내가 이미 아는 걸 가르치길래 그만뒀어요. 학비도 비쌌고요. 14살 때부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서빙부터 설거지, 요리까지 다 경험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웬만한 음식은 레시피 없이도 그대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미국 백악관이 26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을 초대한 국빈만찬에 '게스트 셰프' 로 참여한 에드워드 리 셰프. 그가 워싱턴 시내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전날 인터뷰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1998년 25세 때 맨해튼에 한식 퓨전 식당을 열었다. 뉴욕타임스와 보그 잡지에 소개될 정도로 인정받았고, 장사도 잘됐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가 터지자 문 닫을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가난해서 여행을 못 다녔어요. 미국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여행을 시작했어요. 경마대회 '켄터키 더비'를 보러 갔다가 매료돼 켄터키에 정착했고 남부 요리를 배웠어요."

TV 요리 경연대회 '탑 셰프' 등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요리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 최우수 셰프 후보에 6차례 올랐다. 요리책과 에세이『스모크 앤 피클』,『버터밀크 그라피티』를 펴내 작가로도 인정받았다.

어려서 접한 한식 재료가 제한적이었기에 요리사가 된 후 한국 제철 식재료와 음식, 문화를 공부하러 한국을 자주 찾았다. 창의적인 국빈만찬 메뉴는 한국적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바이든 여사 역시 그를 만찬 게스트 셰프로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의 요리 스타일은 한인 가족, 나고 자란 뉴욕, 집이 있는 켄터키주에서 받은 영향을 반영합니다. 리 셰프는 친숙하면서도 놀라운 음식, 완벽한 균형을 찾는 서로 다른 세계의 융합을 창출해냅니다. 그의 엄청난 재능을 누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리 셰프는 바이든 여사가 음식 맛뿐만 아니라 색감 조화부터 식기, 테이블 세팅, 꽃장식까지 세심하게 챙겼다고 전했다. 정치인 배우자로 쌓은 오랜 경험 때문인지 진지하게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모습에서 많이 배우기도 했단다. 리 셰프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과 일할 때 힘든데, 퍼스트레이디는 추구하는 방향성과 의제가 매우 직접적이고 명확한 편이어서 함께 일하기 즐거웠다"고 말했다.

켄터키주 루이빌과 워싱턴, 메릴랜드주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흐름에 맡기는 편이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은 계획이 없지만, 한국에 레스토랑을 열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웃음)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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