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건 다 했다"…'워싱턴 선언' 확장억제 재약속 의미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개된 ‘워싱턴 선언’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 동맹의 모든 전력을 사용한 신속하고,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취하기로 약속했다”며 “확장억제 강화와 그 실행 방안이 과거와 다르다”고 평가했다. 기존 확장억제의 핵 개념을 양국 정상이 보다 명확하게 만들기 위해 가능한 방안을 최대한 강구했다는 의미다.
워싱턴 선언에서 눈에 띄는 건 ‘정례적 가시성(the Regular Visibility)’이라는 표현과 함께 등장한 전략핵잠수함(SSBN) 관련 대목이다. SSBN의 한반도 기항을 빈번하게 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SSBN의 전개 사실을 공개하겠다는 취지다. '상시배치'나 ‘정기전개’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표현으로도 읽힌다.
한·미가 SSBN을 콕 집은 건 이 전략자산이 1만2000㎞ 사거리의 핵미사일 발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핵공유, 전술핵 재배치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SSBN의 한반도 등장 자체만으로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반도에 국한해 전략자산을 상시배치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최상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국은 B-52H, B-1B 등 전략폭격기 위주로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투입해왔다. 이들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빈도를 늘리면서 상시 배치에 준하는 효과를 낸다는 입장이었다.
이와 비교하면 SSBN의 정례 기항은 획기적 진전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보유한 SSBN인 오하이오급 잠수함은 14척으로 이중 8척가량이 태평양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1981년 1번함이 취역한 이래 한 번도 한반도를 찾은 적이 없다.
앞으로 미국은 핵탄두를 실은 잠수함의 전략 방위 임무에 한반도 기항을 포함시켜 공개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날(26일) 오하이오급 SSBN 메인함이 괌 기지에 입항한 사실이 공개된 건 SSBN의 한반도 정례 기항의 ‘예고편’으로 해석된다. 국방부 당국자는 "SSBN 위치는 미국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알 수 있다"며 "은밀성이 최고의 무기인 SSBN을 한반도 인근에서 노출하는 것의 의미는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이 새로운 협의체인 ‘핵 협의그룹(NCG)’을 합의하고 핵억제 적용을 위한 연합훈련을 강화해나가기로 한 점 역시 눈여겨 볼 만하다.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핵 공격에 대비한 양국의 연합훈련’이 보다 구체화된 것이다.
NCG는 한마디로 핵전력에 한국의 발언권과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는 통로다. 군 당국은 1년 4차례 실시되는 NCG를 통해 기존 차관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보다 정보 공유, 공동기획·실행과 같은 핵 관련 논의를 더 심도 있게 추진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핵 억제를 위한 양국 연합 토론식 도상연습(Table-Top Exercise·TTX)을 NCG를 통해 구체화하기로 한 점도 성과로 꼽힌다. 기존 진행된 TTX보다 더 촘촘한 시나리오로 핵전력을 사용하는 상황에 한국의 ‘지분’을 늘릴 수 있다는 뜻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의 핵 전략 기획의 시작은 이 TTX”라며 “더 절실한 쪽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또 주도해 가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논의 과정에서 그것이 합의되면 플래닝(planning·기획)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TTX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SSBN, 전략폭격기 등 3대 핵전력을 운용하는 미 전략사령부가 포함된 것도 TTX의 기획력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창설될 한국 전략사령부가 카운터파트로서 한국의 F-35A, 탄도미사일 현무-5 등을 미 핵전력과 조합해 운용하는 방안도 예상된다. 나토의 스노캣(SNOWCAT) 훈련처럼 미국의 핵 작전을 한국 전력으로 지원하는 연합훈련도 가시화될 수 있다. 이밖에 군 당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전제로 현재 작성 중인 새 연합 작전계획에 한국의 역할을 증대하는 데도 NCG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워싱턴 선언에 대한 한계도 지적된다. 미국은 핵공유나 전술핵 재배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 채 기존의 확장억제 방안을 발전시키는 데 치중했다. EDSCG, 실장급 통합국방협의체(KIDD) 등 이미 존재하는 군사 협의체에 더해 NCG를 만든 건 한국 달래기의 성격이 크다는 시각도 있다. 또 SSBN의 한반도 기항도 상징적 조치일 뿐 군사적 효용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사거리 1만㎞가 넘는 미사일을 괌이 아닌 한반도에서 쏜다고 해서 대북 억제력이 급격히 증가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군 당국자는 “미국 역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가운데 시도할 수 있는 건 거의 다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현실적 상황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이 요청했던 사안을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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