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건 다 했다"…'워싱턴 선언' 확장억제 재약속 의미는?

이근평, 김한솔 2023. 4. 2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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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에서 공개된 ‘워싱턴 선언’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 동맹의 모든 전력을 사용한 신속하고,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취하기로 약속했다”며 “확장억제 강화와 그 실행 방안이 과거와 다르다”고 평가했다. 기존 확장억제의 핵 개념을 양국 정상이 보다 명확하게 만들기 위해 가능한 방안을 최대한 강구했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소인수회담을 마치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워싱턴 선언에서 눈에 띄는 건 ‘정례적 가시성(the Regular Visibility)’이라는 표현과 함께 등장한 전략핵잠수함(SSBN) 관련 대목이다. SSBN의 한반도 기항을 빈번하게 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SSBN의 전개 사실을 공개하겠다는 취지다. '상시배치'나 ‘정기전개’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표현으로도 읽힌다.

한·미가 SSBN을 콕 집은 건 이 전략자산이 1만2000㎞ 사거리의 핵미사일 발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핵공유, 전술핵 재배치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SSBN의 한반도 등장 자체만으로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반도에 국한해 전략자산을 상시배치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최상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국은 B-52H, B-1B 등 전략폭격기 위주로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투입해왔다. 이들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빈도를 늘리면서 상시 배치에 준하는 효과를 낸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1월 오하이오급 핵전략잠수함 USS네바다(SSBN-733)가 태평양 괌 아르파항구에 정박했다. [사진 미 해군]


이와 비교하면 SSBN의 정례 기항은 획기적 진전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보유한 SSBN인 오하이오급 잠수함은 14척으로 이중 8척가량이 태평양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1981년 1번함이 취역한 이래 한 번도 한반도를 찾은 적이 없다.

앞으로 미국은 핵탄두를 실은 잠수함의 전략 방위 임무에 한반도 기항을 포함시켜 공개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날(26일) 오하이오급 SSBN 메인함이 괌 기지에 입항한 사실이 공개된 건 SSBN의 한반도 정례 기항의 ‘예고편’으로 해석된다. 국방부 당국자는 "SSBN 위치는 미국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알 수 있다"며 "은밀성이 최고의 무기인 SSBN을 한반도 인근에서 노출하는 것의 의미는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이 새로운 협의체인 ‘핵 협의그룹(NCG)’을 합의하고 핵억제 적용을 위한 연합훈련을 강화해나가기로 한 점 역시 눈여겨 볼 만하다.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핵 공격에 대비한 양국의 연합훈련’이 보다 구체화된 것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NCG는 한마디로 핵전력에 한국의 발언권과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는 통로다. 군 당국은 1년 4차례 실시되는 NCG를 통해 기존 차관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보다 정보 공유, 공동기획·실행과 같은 핵 관련 논의를 더 심도 있게 추진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핵 억제를 위한 양국 연합 토론식 도상연습(Table-Top Exercise·TTX)을 NCG를 통해 구체화하기로 한 점도 성과로 꼽힌다. 기존 진행된 TTX보다 더 촘촘한 시나리오로 핵전력을 사용하는 상황에 한국의 ‘지분’을 늘릴 수 있다는 뜻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의 핵 전략 기획의 시작은 이 TTX”라며 “더 절실한 쪽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또 주도해 가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논의 과정에서 그것이 합의되면 플래닝(planning·기획)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TTX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SSBN, 전략폭격기 등 3대 핵전력을 운용하는 미 전략사령부가 포함된 것도 TTX의 기획력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창설될 한국 전략사령부가 카운터파트로서 한국의 F-35A, 탄도미사일 현무-5 등을 미 핵전력과 조합해 운용하는 방안도 예상된다. 나토의 스노캣(SNOWCAT) 훈련처럼 미국의 핵 작전을 한국 전력으로 지원하는 연합훈련도 가시화될 수 있다. 이밖에 군 당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전제로 현재 작성 중인 새 연합 작전계획에 한국의 역할을 증대하는 데도 NCG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워싱턴 선언에 대한 한계도 지적된다. 미국은 핵공유나 전술핵 재배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 채 기존의 확장억제 방안을 발전시키는 데 치중했다. EDSCG, 실장급 통합국방협의체(KIDD) 등 이미 존재하는 군사 협의체에 더해 NCG를 만든 건 한국 달래기의 성격이 크다는 시각도 있다. 또 SSBN의 한반도 기항도 상징적 조치일 뿐 군사적 효용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사거리 1만㎞가 넘는 미사일을 괌이 아닌 한반도에서 쏜다고 해서 대북 억제력이 급격히 증가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군 당국자는 “미국 역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가운데 시도할 수 있는 건 거의 다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현실적 상황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이 요청했던 사안을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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