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핵방패' 전개한 한·미…'인권·사이버 돈줄'로 北 때린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 압도적 군사적 우위를 통한 대응 기조를 밝혔다. 이를 현실화할 수단으로는 '워싱턴 선언'으로 구체화하고 강화한 대북 억제력을 전제로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북한의 '돈줄'로 떠오른 사이버 범죄를 원천 차단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한·미 정상은 이번 회담의 공동성명에 "북한의 핵실험이 국제사회의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에 직면할 것임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의 메시지다. 양 정상이 지난해 5월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중대한 위협"이라고만 언급했던 것에 비하면 한층 더 무게가 실린 표현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북한의 핵공격 등에 대해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전력을 사용한 신속하고,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취하기로 약속했다"며 사실상 '핵 보복'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기존의 '핵우산' 개념을 뛰어넘어 '핵방패'로 비유할 정도로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확보한 한·미는 북한을 본격적으로 압박할 수단으로 인권과 사이버 범죄를 제시했다.
특히 북한의 핵심 돈줄로 떠오른 사이버 범죄에 대해서는 한·미 동맹을 사이버 공간까지 확장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전략적 사이버안보 협력 프레임워크'를 별도로 채택했다. 사실상 사이버 범죄를 핵·미사일에 버금가는 안보 사안으로 다루겠다는 의미다.
실제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양 정상은 북한의 불법적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자금을 조달하는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며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고 사이버 외화수익을 차단하기 위해 정보공유를 확대하고 국제사회의 인식을 제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한·미가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을 포함한 포괄적 사이버 위협에 대해 핵우산에 비견될 '사이버 우산'을 확보하는 상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도 "한·미가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확장 억제 공약과 달리 북한에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꺼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북한 인권에 접근하는 방식도 더 선명해졌다. 한·미 정상은 지난해 서울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데 그쳤지만, 이번엔 "북한이 북한 주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노골적으로 침해하고, 희소한 자원을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투입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한·미동맹에 심각한 안보적 도전을 야기하는 것을 규탄한다"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적시했다.
나아가 "양국은 가장 취약한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으며, 북한 내 인권을 증진하고 납북자, 억류자, 미송환 국군 포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납북자와 억류자, 국군 포로 문제가 직접 명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인권 전문 비영리기구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국군 포로, 납북자, 억류자 문제가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된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환영한다"며 "북한 당국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것이자 가족들의 아픔을 언급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은 윤석열 정부가 일관되게 유지해온 기조와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번 회담 직전인 26일 오후 김정은 정권의 인권유린 사례가 담긴 '2023 북한인권보고서'의 영문판을 공개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최초로 북한인권 보고서를 공개 발간하면서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 유린의 실상이 국제사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가 이번 순방 기간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 상태로 석방된 직후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모친 등을 만난 것은 강경해진 대북 인권 기조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웜비어의 부모는 2019년 11월 방한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당시 청와대는 일정 상 이유를 들어 면담을 거부했다.
한·미 정상이 실질적인 대북 압박 수단으로 제시한 인권과 사이버 범죄는 북한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만한 사안들이다. 특히 북한은 자신들의 불법 사이버 범죄에는 침묵하면서도, 인권 유린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해왔던 만큼 이번에도 강력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북한은 정상회담 결과가 공개된 27일까지 별도의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일단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일단 이번 회담 결과를 분석하는 동시에 주변국들의 반응을 살핀 뒤에 입장을 정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김정은이 최근 '강대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 '대적투쟁' 등의 처강경 기조를 밝히며 장기전 예고해왔기 때문에 당분간 기존 노선에 따른 '마이웨이'를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가 인권 문제를 구체적 카드로 제시한 배경은 북한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자유민주주의 원칙이나 법치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며 "국제사회,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 연대 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보가 강하게 공론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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