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로는 기후 재난 현장, 우리는 항소한다"

김순애 2023. 4. 2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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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로 지키려는 시민들, 원고 자격 불인정과 각하에 맞서 '항소' 기자회견 진행

[김순애 기자]

▲ 기자회견을 하는 원고들과 시민들 .
ⓒ 김다운
4월 26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2018년 벌목된 비자림로 현장 사진을 들고 선 시민들이 기자회견을 했다. 시민들은 '기후위기 감염병 시대, 비자림로는 기후재난 현장이다, 우리는 항소한다'라는 글자가 새겨진 피켓을 들고 있었다.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의 회원 중 10명의 시민들이 2021년 12월 제주도를 상대로 비자림로 도로 구역 결정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소송을 냈다. 1년 4개월의 기나긴 공방 끝에 제주지방법원은 원고들의 요구를 각하와 기각했다. 원고 10명 중 9명에 대해서는 원고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며 각하했고 원고자격을 인정한 한 명이 낸 청구 내용은 기각했다.

비자림로 지역 밖에 거주하고 있어 환경 피해 없다?

재판부는 원고부적격 판결에 대한 이유로 9명의 원고들이 비자림로 지역 밖에 거주하고 있어 도로구역 결정으로 인해 수인한도를 넘는 환경피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원고들은 '이 사건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밖의 주민이라고 할지라도 헌법상 환경권, 자연환경보전법, 환경정책기본법,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하여 보호받는 환경상 이익이 있으므로 원고적격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위 각 법률의 개별 규정 중에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밖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개별적 직접적 구체적 환경상 이익을 보호하려는 취지의 규정이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이 근거로 삼는 것은 1998년 판결이다. 국내 최대의 연어회귀 하천인 강원 양양군 남대천 상류에 한국전력이 양수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하자 1996년 강원 양양군 점봉산 일대 주민과 환경단체회원 126명이 '정부의 양양 양수발전소 건설사업 승인으로 인근 원시림과 연어회귀천등 생태계가 파괴될 우려가 있다'며 통상산업부 장관을 상대로 '발전소건설사업승인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국내 첫 집단 환경소송인 이 소송에서 원고들은 '통상산업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충분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전소의 건설을 승인, 주민들의 환경권·재산권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면서 '발전소가 건설되면 국내 최대의 연어회귀천인 남대천과 천연림 보호구역인 점봉산의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환경영향평가대상지역 밖의 주민·일반국민·산악인·사진가·학자·환경보호단체 등의 환경상 이익이나 전원개발사업구역 밖의 주민 등의 재산상 이익에 대하여는 근거 법률에 그들의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으로 보호하려는 내용 및 취지를 가지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므로, 이들에게는 위와 같은 이익 침해를 이유로 이 사건 승인처분의 취소를 구할 원고 적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즉 원고 적격 기준에 환경영향평가대상지역을 중요한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2013년 11월 양양군이 개최한 '양양 남대천 은어 등 자원조사 및 증대방안 연구용역 최종보고회'에서 '어족자원 감소의 원인으로는 양수발전소의 건설 등으로 인한 하천의 발원지부터 하구까지 연결단절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되었다(<뉴스1>, 2013. 11. 27 기사 참고).

또한 2015년 3월 19일 양양남대천 생태환경파괴 진상규명위원회는 한국수력원자력에 양양 남대천 생태환경파괴 진상규명 및 원상복구·주민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공문을 접수했다. 공문 내용에는 '2010년 양양양수발전소가 발주해 관동대와 강원대가 공동으로 실시한 양양양수발전소 상·하부댐 및 주변 하천 수질환경조사 용역결과 토양오염이 심각해 피해가 우려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까지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강원도민일보>, 2015. 3. 20 기사 참고). 즉 발전소 건설이 어족자원을 감소시키고 주변 토양 오염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환경 피해는 예측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 피해는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에 환경 소송에 원고 적격은 확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환경소송에서 원고적격을 따질 때 여전히 98년 판례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백신옥변호사 .
ⓒ 김순애
 
비자림로 소송의 대리인인 백신옥 변호사(법무법인 현)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환경소송에서 원고적격이 항상 문제되어 왔다"며 "설악산 케이블카, 강정해군기지 사건 등에서 자연 자체는 영향을 받아도 주민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절대보전지역 해제는 오히려 재산권상 주민에게 이익이 된다는 논리로 환경권보다 재산권을 우선시하는 판결을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도로법상 주민은 도로를 이용하는 주민 전체로 봐야 한다"고 발언하며 원고적격이 너무 협소하게 인정되는 점을 비판했다.

외국에서도 환경소송에서 원고적격 문제는 개인의 개별적 구체적 손해 등으로 판단됐었지만 점차 원고적격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독일의 경우 2002년 연방자연보호법을 개정하여 환경단체소송을 도입하였고 2006년에는 환경권리구제법을 제정하여 자연보호분야에서만 인정되던 공익적 단체소송권을 더 넓은 환경분야로 확대하였다(<환경정책> 제28권 제4호 참고).

유럽연합도 국제협약인 오루스협약의 영향으로 인하여 환경단체에 대하여 광범위한 원고적격을 인정하는 유럽지침을 제정하였다. 즉 개별적 직접적 구체적 환경상 이익이 훼손되었을 때만 가능했던 환경소송의 범위가 확장되어 각종 환경단체들이 환경권을 옹호하는 소송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환경권보다 재산권 우선하는 판결은 시대착오적"

비자림로 1심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한 시민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생물다양성 훼손과 기후위기로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생존이 위협받는 현 상황에서 환경권을 재산권보다 열등하게 여기며 재판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행태는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헌법이 부여한 사법권의 직무유기'라며 비판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의 일부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기후 소송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환경과 기후 문제는 손에 잡히지 않지만 명백히 존재하고 있으며 지구 생명체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특정 당사자의 이익 문제로 협소하게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 감염병의 시대, 비자림로는 곧 기후 재난의 현장이다. 국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적극적인 탄소 감축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시점에서 비자림로 판결은 기후위기와의 싸움에서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비자림로 소송 역시 기후소송"
 
▲ 기자회견에 참석한 원고 김선씨 .
ⓒ 김순애
 
이 소송에서 원고로 참여하는 김선씨는 "비자림로는 단지 나무 몇그루가 베어진 현장이 아니다.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생물들이 깃들어 살고 있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와 같은 곳이다. 인간이 몇 초 빨리 가자고 도로를 확장했을 때 어떤 편익이 있고 어떤 손실이 있는지 판단이 달라져야 한다. 도로 확장과 멸종위기종 서식처 파괴는 기후위기를 앞당길 뿐이다"라며 소송을 끝까지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21년 프랑스 법원은 환경단체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소송을 제기한 환경단체들은 프랑스 정부가 '2016년 발효된 파리기후협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며 2019년 3월 소송을 제기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감소 노력을 게을리했기에 프랑스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고 프랑스법원은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면 피해에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경향신문>, 2021. 2. 4 기사 참고)

전 세계적으로 기후소송이 연달아 제기되고 의미있는 판결 결과가 나오는 사이 국내에서 역시 의미있는 기후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2020년, 청소년 19명이 기후변화를 방치하는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헌법 소원을 제기했으며 2022년에는 태아 1명을 포함한 5살 이하 아기들 40명 등 어린이 62명이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비자림로 소송에 참여한 원고들은 비자림로 소송 역시 기후소송이라고 주장한다. 제주도는 수송 분야에서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가장 크고 매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기에 멸종위기종들의 서식처를 파괴하면서 무리하게 도로를 확장하는 제주도의 행정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게을리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또한 헌법상 보장된 시민들의 환경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자연환경보전법, 환경정책기본법,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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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순애씨는 비자림로 시민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하며 법적 소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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