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케어러의 간병살인 후 2년, 한국은 어떻게 바뀌었나

정우성 2023. 4. 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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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발의도 있었고, 지자체도 사업을 하긴 하지만... 현실적 지원책은 '미비'

[정우성 기자]

▲ (조)부모님의 보호자가 된 청(소)년들 영 케어러는 공통적으로 끝을 알 수 없는 지난한 돌봄 노동이 두렵다고 말한다. (자료 출처 = 2022년 서울특별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영 케어러 케어링' 사업 효과성 분석 연구 결과 보고서)
ⓒ pexel
 
2017년 가을, 할머니의 돌봄노동과 함께한 수험 기간은 필자에겐 힘든 시간이었다. 학업에 지장을 받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겪는 동시에 아픈 할머니를 두고 걱정하는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뒤엉켰었다. 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건 주위에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이 없을 것이라는 '고립감'이었다. 내 상황이 '영 케어러(가족돌봄청년)'라는 걸 알게 된 건 이 일로부터 4년 뒤 벌어진 한 사건을 통해서였다.

2021년 5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독박 간병을 비관하며, 끝내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22세 청년의 사건을 계기로 '영 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

당시 정부는 "영 케어러 전수조사를 통해 지원체계를 마련하겠다"라고 했지만, 가시적인 제도 개선은 현재까지 미비한 상태다. 최근 정부의 '청년의 삶 실태조사'와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영 케어러 지원법' 발의를 통해 이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모양새다. 지자체도 영 케어러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발 맞추기'를 시도하는 모양새다.

돌봄 노동으로 가족 내 '휴식'을 찾을 수 없어

보호가 필요한 아동과 청소년이 돌봄노동 전선에 뛰어들어 '영 케어러'가 되는 이유는 뭘까. 간병은 성인에게도 사회적 활동의 지장, 자신을 위한 시간 부족으로 정신 건강의 악화를 초래하는 고강도 노동이다. 그럼에도 이혼, 사별, 수감 등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 후 함께 남겨진 가족 구성원의 건강 문제를 현실적으로 케어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영 케어러는 만성적인 질병과 장애를 가진 가족에 대한 돌봄노동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많다. 또한 계속되는 돌봄노동으로 영 케어러의 학업 수행능력과 신체, 정서 발달에 악영향이 미치기도 한다.

실제로 2022년 12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서울특별시가 실시한 영 케어러 실태 조사에 따르면, 영 케어러 900명 중 45% 이상이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돌봄과 정신 건강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 서울시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 자료 재구성 (자료 출처 = 2023년 4월 20일 서울시 보도자료. "서울시, 실태조사 통해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 900명 발굴") (그래픽 = 정우성 기자)
ⓒ 정우성
 
전국 일부 지자체, 지원책 내놓기도

영 케어러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에 발맞추어 일부 지자체에서도 영 케어러를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는 강남복지재단을 통해 2023년 3월 6일부터 24일까지 약 19일간 14~34세 이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가족돌봄청년지원사업 : 행복동행' 프로그램의 신청을 받았다. 당초 지원 인원은 중위소득 120% 이하 영 케어러 50명이었다. 강남구는 "대상자에게 생계지원, 건강지원, 주거지원, 자기 계발과 문화여가를 300만 원 한도에서 지원"을 약속했다. 특화 서비스로 "세탁, 청소 등 가사지원 서비스를 주 1회 2개월간 제공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 4일 공개한 지원 대상 인원은 17명으로, 당초 예정 인원인 50명의 절반을 밑돌았다. 이에 대해 강남복지재단은 "강남구의 특성 상 청(소)년의 수가 다른 구에 비해 적은 것이 낮은 참여도로 이어졌다"라며 "대상자를 직접 발굴하는 것이 아닌 신청을 받다보니 아직 자신이 영 케어러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충분히 홍보되지 못한 것 같다"라고 밝혔다. 직접 사각지대를 '발굴'한 것이 아닌 '자발적 신청'에 기반을 두어 지원 규모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반면 서울 서대문구는 영 케어러 지원을 '신청'이 아닌 '발굴'에 기반하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대문구청 희망복지팀 관계자에 따르면 "(서대문구는) '행복 이음'이란 별도의 시스템을 두어 영 케어러를 발굴하고 있으며 한부모가족 등 영 케어러 구성원이 존재할 확률이 큰 가구의 경우는 사회복지사가 직접 방문하여 상담을 진행하는 것으로 영 케어러를 발굴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카카오톡 '천사톡'과 구청 홈페이지에서 본인 또는 주변인이 신청할 수 있다"면서 신청의 간편함도 도모했다고 부연했다. 

한편, 충청북도 충주시의 충주종합사회복지관은 지난 2022년 8월부터 '영 케어러 사회적 돌봄사업 : 부모의 부모가 되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에 요양비 등 돌봄 노동을 지원하는 급여를 포함하고, 지원 대상 선정 단계에서 사회복지사가 가정에 방문해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요양보호사를 가정에 직접 파견했다. 직접 파견이므로, 현금 급여 지급 후 지원을 받는 대상자가 영수증을 제출해야 하는 강남구의 앞선 사례와 대조적인 부분이다.

'영케어러' 지원은 지자체 아닌 국가 차원에서 기틀이 마련되야

영 케어러 지원에 대해 이세원 강릉원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 케어러 지원의 시작은 "영 케어러가 가진 욕구(문제)를 파악하는 데 있다"라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범국가적인 영 케어러 실태 조사와 통계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한 관련 법령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영 케어러 문제는 지역적인 문제가 아닌, 전국 각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지역 단위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지원책이 구상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교수는 "영 케어러가 돌봄 노동과 (보통 동반되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 구직 활동에 전념하지 않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도 말한다. 특히 청소년기의 영 케어러는 학업을 이수해야 하는 연령인데, 가정 내 빈곤 해결을 위해 학업과 더불어 일자리 현장에 나서는 것은 "학력의 저하와 학업 포기 등이 우려되는 데, 이는 사회적 낙오로 이어질 수 있어" 조속히 해결돼야 할 문제라는 진단이다. 그는 "영 케어러 가족이라면 기초생활보장제에 의한 수급권을 갖지 못하더라도 일정 급여를 수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관련 제도 정비를 주문했다.

2년 전인 2021년 5월, '가정의 달'에 벌어진 영 케어러의 가족 간병 살인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고, 영 케어러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로 모아졌다. 하지만 취재 결과,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영 케어러는 여전히 자신이 언제까지 가족 구성원을 홀로 돌봐야 하는 가로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삶의 '버팀목'이라고 생각하는 가족이 누군가에게는 '쇠사슬'이라고 비관했던 2년 전 그날과 같이, 영 케어러의 아픔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하며, 영 케어러의 하루가 '돌봄'을 넘어 '행복'을 꿈꿀 수 있는 국가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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