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나는 구제 못 받나…지원 대상 요건 6건 따져보니
정부가 전세 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의 구체적 내용을 27일 확정했다. 피해 임차인에 경매 우선매수권을 주고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게 골자다. 하지만 지원 대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제시한 전세 사기 지원 대상 요건은 ①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②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집행권원 포함) 진행 ③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 ④수사 개시 등 전세 사기 의도가 있다는 판단 ⑤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⑥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6가지다. 국토교통부에 설치되는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지원 대상 여부를 결정한다.
이 중 ①, ②요건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세입자가 전셋집 입주 후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지 않거나, 계약 만료 후 임차권 등기 없이 다른 집으로 이사한 경우엔 지원 대상에서 빼는 등 명확한 경계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그러나 나머지 요건은 논란이 일 전망이다. 우선 피해 주택의 면적과 보증금에 따라 지원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이를 명시하지 않고 하위 법령에 위임했다. 정부는 전용면적 85㎡, 시세 3억원 이하에 피해 주택이 몰려 있다고 보지만, 면적이나 보증금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해 놓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보증금 기준에 따라 경계선에 있는 피해자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 사기 의도’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다. 집주인의 고의성이 관건인데, 전셋값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최근 ‘동탄 오피스텔 전세 사기 의혹’을 받는 임대인 부부의 행태도 전세 사기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세입자들에게 “세금이 체납돼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렵다, 소유권을 이전해 가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점을 볼 때 고의성이 없었다고 비칠 소지가 있어서다. 정부가 예로 제시한 ‘수사 개시’도 세입자들이 고소하면 반드시 따르는 절차라, 전세 사기 의도를 가리긴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 외 ‘다수의 피해자’, ‘보증금의 상당액’을 판단하는 작업도 혼란이 예상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자칫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해석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은 “정부가 지원 대상 기준을 빡빡하게 두는 것은 피해자 보고 ‘사기 인증’을 받아오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전세 사기라는 큰 원칙만 정하고 세부 사항은 피해지원위원회가 판단하도록 했다”며 “일일이 법에 규정하고 진행하면 혼란스럽고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데다 행정력이 낭비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계선 효과 때문에 억울하게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위원회가 탄력적으로 판단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편으론 2년 한시법의 특성상 피해자가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세입자의 임대차 계약 만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수가 보증금을 떼였다고 인식하는 것을 비롯해 소송을 거쳐 경매를 신청하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며 “특히 앞으로 터지는 전세 사기에 6가지 요건을 적용하기엔 2년이란 특별법 기한이 짧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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