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는 동물원에서 행복할까

최원형 2023. 4. 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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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의 오늘하루 지구생각] '위협적인' 야생동물 전시하는 아이러니

[최원형]

언젠가 짤막한 뉴스 클립이 눈에 들어왔다. 도살장에서 탈출한 소에 관한 내용이었다. 소는 두려움에 떨며 무척 흥분하다가 급기야 도살장에서 탈출했다. 도망치던 소가 들어간 곳은 안타깝게도 어떤 공장이었고, 소는 막다른 곳에서 구조대원과 소 주인 등 여러 사람과 대치하다 결국 포획되어 도살장으로 돌려보내졌다. 용감했던 소는 결국 고기가 되어야만 바깥세상으로 나올 운명이었다.

소가 포획되어 트럭 위로 실려지는 모습에서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이 포개졌다. 30년이 넘도록 소와 함께 살던 주인은 소도 늙고 자신도 늙어 더는 운신이 어렵게 되자 소를 팔겠다고 마음먹는다. 이 마음이 전해졌는지 소는 여물에 입을 대지 않은 채 눈물을 흘린다. 소 주인은 결국 소 파는 걸 포기하고 코뚜레를 풀어주며 소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준다.

2017년 겨울 어느 날,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도로에서 어린 멧돼지가 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줄어들다 보니 어리거나 영역 싸움에서 밀린 개체들은 도심까지 떠밀리고, 도시를 질주하는 차에 치이거나 사살되곤 한다. 2011년에 40여 건이던 멧돼지 출몰은 2016년에 540여 건으로 5년 사이 12배 넘게 증가했다. 생포돤 동물은 그나마 지극히 운이 좋은 것이다. 대부분은 사살로 끝난다. 야생동물은 출몰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에게 위협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3년 3월에 그랜트얼룩말 세로를 동물원 밖에서 만났다. 초원이 아닌 도로 위에 등장한 얼룩말 세로는 쉽게 의인화되었고, 그 사연은 발이 달린 듯 퍼져나갔다. 도로 위 횡단보도와 얼룩말의 줄무늬가 묘하게 어울린다며 희화화되기도 했다.

만약 세로가 막다른 주택가 골목길이 아닌 차도를 계속 돌아다녔다면 무사히 동물원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까? 세로가 주택가 골목길에서 흥분하다가 사육사가 이름을 부르자 차분해지던 모습, 곧 마취총을 맞고 비틀거리다 쓰러지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며칠 동안 떠나질 않았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세로가 사바나 초원으로 돌아가는 일은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단계적으로 생츄어리를 고려해 보는 건 어떨까.
ⓒ 최원형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대륙을 가로질러 적도가 지나는 위아래 지역은 초록이 가득하다. 열대우림도 있고 사바나 초원도 있는 바로 그 일대, 그러니까 짐바브웨에서 수단에 이르는 지역 어딘가에 세로의 친척인 그랜트얼룩말들이 크고 작은 무리를 이루며 살아간다. 얼룩말은 본래 이렇게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습성을 지녔다.

그러나 세로는 동물원에서 태어나 부모를 잃고 홀로 살아가고 있다. 동물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동물원 공간을 확장하려면 예산확보 등 현실적 문제가 뒤따른다. 아니 애당초 동물을 가둔다는 생각에서부터 문제는 배태돼 있었다.

탈출 사건 이후 세로를 보기 위해 동물원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말 보고 싶은 건 무엇일까? 탈출했던 얼룩말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만 연민의 마음을 담아 세로의 안부가 궁금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세로는 그곳에서 안녕할 수 있을까? 안녕의 의미는 또 뭘까? 이상하지 않은가? 야생동물이 도심에 나오는 건 무조건 위협적인데 또 한편에서는 일부러 야생동물을 가둬놓고 전시를 하는 이 아이러니가 말이다.

안전하게 가둬놓은 동물도 일단 탈출하면 야생에서 출몰한 동물과 똑같이 '위협적인 대상'으로 지위가 바뀐다. 동물이 탈출할 때마다 동물원 존립에 대한 논란도 반복된다. 종 보전과 연구 그리고 교육을 위해 동물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한결같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할 때 과연 동물의 감정은 고려하는 걸까?

디디에 데냉크스(Didier Daeninckx)의 소설 <파리의 식인종>에는 1931년 파리에서 열린 식민지 박람회에서 우리에 갇혀 짐승처럼 전시되었던 남태평양 누벨칼레도니 원주민 '카낙'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백여 명의 카낙들은 전통문화를 전시하러 참가했다가 동물원에 갇힌다. 이들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방문객을 끌어야 했고, 일부는 악어와 맞교환되어 독일 서커스단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주인공의 분노를 통해 우리에 갇혀 지내며 느꼈던 수치심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비단 인간만이 그런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윈은 1872년에 출간된 책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동물도 인간처럼 기쁨·슬픔·분노 같은 감정을 느끼며 표정도 인간과 비슷하다고 했다. 콜로라도 대학교 진화생물학 명예교수인 마크 베코프(Marc Bekoff) 역시 동물이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요지는 동물도 인간처럼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2005년 미국 디트로이트 동물원의 코끼리 전시관이 문을 닫은 사실이 흥미롭다. "도시에 있는 동물원에서 코끼리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동물원이 애당초 인간의 욕망 충족을 위해 시작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동물원에 갇힌 동물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디트로이트 동물원에 있던 코끼리들은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옮겨져 행복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영국 런던 동물원, 캐나다 토론토 동물원, 아르헨티나 멘도자 동물원 등 다른 나라의 여러 동물원 역시 코끼리를 보호구역으로 보냈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세로가 사바나 초원으로 돌아가는 일은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단계적으로 생츄어리(착취당한 동물이나 부상입은 동물, 어미를 잃은 새끼동물 등을 평생 보호하는 시설)를 고려해 보는 건 어떨까?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의 삶을 소비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지 이제는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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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5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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