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첫 여성 투표권 인정…"스테인드글라스 천장에 균열"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 세계 주교들의 회의 기구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에게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가톨릭 여성단체들은 "남성 중심의 2000년 로마가톨릭 역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며 환영했다.
26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교황이 바티칸 기구인 세계주교대의원회의(Synod·시노드)를 관장하는 규범의 변경을 승인했다"며 "여성도 시노드에서 투표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1965년 출범한 시노드는 교리와 규율 등 가톨릭 교회 내 주요 의제를 논의하는 심의기구로 세계 각지의 주교 등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회의체다. 회의 후 투표를 거쳐 만들어진 건의안은 교황에게 전달된다. 교황은 이를 고려해 안건에 대한 교회의 공식 입장을 정리해 발표한다.
오는 10월 4~29일 로마에서 열리는 시노드(정기총회)가 바뀐 규범의 첫 적용 대상이 될 전망이다. 원래 시노드는 투표권이 있는 남성 성직자 10명으로 꾸려졌지만, 앞으로는 남성 성직자 5명과 수녀 5명으로 구성원이 바뀐다. 또 전 세계 7개 지역(유럽, 중남미, 북미,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중동)에서 각각 10명씩 선발한 평신도 70명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했다.
지금까지 시노드에는 투표권이 없는 참관인 등을 포함해 총 300여명이 참석했는데, 앞으로 투표권을 기존 10명에서 80명 체제로 바꾸면서 보다 다양한 견해를 받아들이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이와 관련, 프란치스코 교황은 "(투표권이 있는) 평신도 위원에 청년을 포함하고, 절반은 여성으로 채우라"고 지시했다고 AP 통신 등은 전했다.
평신도 위원을 포함해 투표권을 가진 여성의 비율은 10%로 예상된다. 새 위원들은 10월 시노드에서 가톨릭의 주요 현안은 물론 교회 내 여성의 역할, 성소수자(LGBTQ)에 대한 처우 등에 대해서도 논의할 전망이다.
이번 발표는 교황이 주도하는 가톨릭 교회 민주화·현대화 작업의 일환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교황은 위계질서에서 오는 권력남용을 교회 문제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해 왔다"고 전했다.
특히 가톨릭 교회 내에서 여성의 발언권은 극히 제한됐다. 시노드에도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할 뿐, 정식 위원도 아닐 뿐더러 투표권도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수년간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교회내 성평등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2018년엔 "시노드에서 수녀도 투표할 수 있게 하라"는 내용의 청원서에 1만여 명이 서명했다.
교황 역시 가톨릭 교회 내 남성 편중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2013년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선 "여성들의 헌신이 자선 단체장에만 국한돼선 안 된다"며 핵심 고위직에 여성을 앉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2019년 바티칸시국 행정을 총괄하는 직책에 처음으로 수녀를 임명하는 등 교회 내 주요 직책에 지속해서 여성을 등용해왔다.
교회 내 반응은 엇갈린다. 여성 사제를 옹호하는 여성안수회의(WOC)의 케이트 맥엘위 전무이사는 "스테인드글라스 천장(여성의 승진을 막는 종교계 장벽)에 중대한 균열이 생겼다"며 "시노드 홀에서 성평등 추세가 커지는 걸 지켜보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환영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성직자와 신도들은 이런 변화가 "교회의 전통을 훼손하고 세속적인 이데올로기를 교회에 침투시키려는 '트로이 목마'"라는 등 비판적인 입장이다. 시노드 일원인 장클로드 올러리슈 추기경도 "중요한 변화이지만, 혁명까진 아니다"라고 이번 조치를 평가절하했다.
일각에선 "평신자의 참여로 시노드가 풍성해졌으나, 결국 시노드는 주교들의 시노드로 남게 될 것"(마리오 그레치 추기경)이란 한계론도 나온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28일부터 사흘간 헝가리를 찾아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난민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헝가리로 피신한 우크라이나 난민들도 직접 만날 계획이라고 교황청은 밝혔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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