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북핵 대응 또 다른 축…'인권' 내세워 압박 공조
핵 개발로 초래된 식량난·인권 유린 모두 지적
이신화 "北문제 핵심은 인권…한미 공조 기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에 북핵 개발과 '북한 인권' 문제를 직접 연결해 규탄하는 내용을 담았다. 북핵 문제에 대응할 한미 양국의 또 하나의 전략으로 북한이 민감하게 여기는 '인권 카드'가 부상하면서 국제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27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한미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은 북한 (당국)이 북한 주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노골적으로 침해하고, 희소한 자원을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투입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한미동맹에 심각한 안보적 도전을 야기하는 것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한 탓에 식량난을 가중시켰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5월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힌 것과 비교할 때, 규탄 수위가 한층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인권 문제를 북핵과 직접적으로 연결지어 규탄한 대목은 한미 간 북한인권 논의가 더욱 구체화된 지점으로 꼽힌다.
북한인권 문제를 북핵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관점은 국제적 흐름이기도 하다. 일례로 유엔(UN)은 지난해 12월 총회에서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을 비롯해 '북핵-인권'을 하나의 문제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최근 통일부가 전수조사에 착수한 '풍계리 핵실험장의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도 궤를 같이한다.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는 올해 2월 특별보고서를 통해 지하수를 통한 피폭 우려를 제기하면서 '북핵 문제는 곧 인권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바 있다.
아울러 양국 정상은 성명에서 "한국과 미국은 가장 취약한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으며, 북한 내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중략)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한미 공동성명에서 북한인권이 강조된 것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서 비공개 처리한 '북한인권보고서'를 지난달 말 처음으로 공개 발간하도록 했고, 통일부는 이번 회담 직전 보고서 영문판을 공개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했다.
이신화 "핵심은 '인권'…총체적 논의로 발전해야"
이신화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이번 공동성명에 대해 "한미가 행동하는 동맹으로 나아가겠다는 미래지향적 의지, 막연한 게 아니라 구체적 의지가 드러난다"며 "북한이 자원을 핵 개발에 투입해 식량난이 초래된 문제, 주민들의 실질적 인권 개선을 위해 필요한 인도적 지원 등 가장 핵심이 되는 두 가지 개념이 모두 언급됐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이 대사는 앞으로 북한인권에 대한 한미·한미일 공조가 '책임 규명'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민들은 물론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에 대한 납치·납북·강제송환, 탈북자, 해외 노동자 등 총체적 논의로 발전하기 위해서다. 그는 "다음달 한미일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지난해 11월 프놈펜 회담 때보다 보다 발전된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범수 "정치 프레임 벗고 '보편적 가치'로 발전"
통일부 장관 자문기구인 북한인권증진위원회 1기 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범수 세이브NK 대표는 "한미 정상의 이번 공동성명은 북한인권을 북핵 문제와 함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와 원칙이 반영된 결실"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를 시작으로 꾸준히 강조해온 자유와 인권, 연대라는 가치를 '북한인권' 문제를 통해 구체화해 나가는 과정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특히 이번 공동성명을 계기로 북한인권이 '정치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선 '북한인권'이라고 하면 유독 보수·반북 등 정치적 운동이라는 오해를 산다"며 "젊은 세대가 홍콩·우크라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이제 국민들이 세계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방증이니, 이처럼 북한인권도 보편적 가치로 인식돼야 할 때"라고 했다.
이영환 "북핵-인권은 하나…'행동'으로 이어져야"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인권의 중요성이 선명하게 언급된 만큼 국제사회에서 파급력이 남다를 것으로 기대된다"며 "그간 북핵-인권 문제를 따로 인식했다면, 이제 더 이상 논쟁의 여지 없이 '하나의 문제'로 바라보는 계기가 마련됐다. 북한으로선 가장 피하고 싶던 문제가 완전히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라고 환영했다.
이어 "이제 국제무대에서 북한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될 때 북한인권 문제가 상수(常數)로 등장하게 될 것인 만큼 한국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의지가 선언(말)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으로의 정보 유입을 막고 있는 통일부의 대북전단금지법 해석지침을 고치는 일부터 가시적 액션(행동)을 취하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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