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선언, 한미동맹이 한반도를 위험에 빠뜨렸다 [이게 이슈]
[정욱식 기자]
▲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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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는 무엇일까? 윤석열 정부는 물론이고 상당수 언론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선 한·미 확장억제 강화 방안이 담긴 '워싱턴 선언'을 꼽는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의 대중·대러 봉쇄정책에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고, 반도체·전기차·배터리에 대한 미국의 부당하고도 차별적인 조치를 시정키로 한 것이 거의 없는 상황을 상쇄할 정도의 성과라고 보긴 어렵다. 무엇보다도 워싱턴 선언 자체가 품고 있는 부작용이 너무나도 크다.
워싱턴 선언에 담긴 내용은 '이중 억제'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한·미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NCG)을 설립해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구체성과 한국의 발언권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북한의 핵위협을 억제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동시에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의무와 한·미원자력협정 준수를 재확인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것은 점증하는 한국의 독자 핵무장론을 억제하겠다는 취지를 품고 있다. 즉, 워싱턴 선언은 본질은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와 한국의 독자 핵무장 자제 사이의 교환에 있다.
일단 이 선언을 계기로 미국의 대북 확장억제가 강화될 가능성은 커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에 핵무기를 재배치할 계획도 없고 핵사용은 대통령의 독점적인 권한이라고 못 박았지만, 이전에 비해 강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싱턴 선언에는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 견실한 통신 인프라 유지 △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기 위한 핵협의그룹(NCG) 신설 △ 미국의 핵 작전과 한국의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 협력 △ 핵억제 적용에 관한 연합 교육 및 훈련 강화 △ 핵 유사시 기획에 대한 한·미 공동의 접근을 강화하기 위한 범정부 도상 시뮬레이션 도입 △ 기존에 있었던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포함한 정부 간 상설협의체 강화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러한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선언과 미국의 전략자산 투입의 강화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바이든은 워싱턴 선언에서는 "북한의 한국에 대한 모든 핵 공격은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 대응에 직면할 것임을 재확인"하면서, 기자회견에선 북한이 핵공격을 감행하면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한 것이다. 한마디로 김정은 정권에 종말의 두려움을 안겨줘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사용을 꿈도 꾸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에 고무된 탓인지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핵에 대한 국민의 우려는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3일 공화국전략무력의 전망적인 핵심주력수단으로, 중대한 전쟁억제력의 사명을 수행하게 될 새형의 대륙간탄도미싸일(미사일) '화성포-18' 형 시험발사가 단행되였다"고 1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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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대북 억제력은 크게 강화될 것이다. 이를 성과라고 자화자찬하기에 앞서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과연 기존의 대북 억제력은 약할까?'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군사력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에 따르면, 한국의 군사력은 2021년부터 3년 연속 세계 6위를 기록하고 있다. 첨단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주한미군도 약 3만 명이 주둔하고 있고, 유사시 전력공여를 약속한 16개국의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엔사령부도 있다. 확장억제 제공자인 미국은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에 있어서 압도적인 세계 1위이고, 재무장에 본격 나선 일본도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미국의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을 넘어 과유불급(過猶不及)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과도한 대비가 우환을 야기하는 '과비유환'의 위험마저 품고 있다. 왜 그럴까?
북한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핵 고도화를 향한 폭주를 거듭할 것이다. 한·미, 혹은 한·미·일이 북한에 두려움을 각인시키려고 할수록 북한도 두려움을 되돌려주겠다며 도발적 언행을 강화할 것이다. 이렇게 될수록 미국이 대북 확장억제 강화를 통해 무마하려고 하는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도 재부상할 가능성이 크고, 이를 달래려고 미국이 대북 핵위협 수준을 높이면 북한도 핵위협 강화로 맞불을 놓을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이 품고 있는 결과는 무엇일까?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에 더더욱 매달리면서 미국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는 '아메리칸 코리아'가 되지는 않을까?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험을 포함한 전쟁 위기가 '뉴노멀'이 되는 것은 아닐까?
▲ 육군이 지난 13일부터 강원도 인제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에서 미군 대대급 부대가 최초로 참가한 FS/TIGER 한미 연합 KCTC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사진은 한미 연합 KCTC훈련서 백석산여단전투단 장병들이 K808차륜형장갑차에서 하차하는 모습. 2023.3.20 |
ⓒ 육군 제공 |
핵전력을 대거 동원하는 연합훈련을 통해 북한의 위협도 억제하고 한국의 핵무장 움직임도 달래려고 한 것이다. 또 레이건 행정부는 박정희에 이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을 미국으로 초청해 비핵화 약속을 받아내고선 정권의 정당성 인정과 팀 스피릿 강화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그런데 이 훈련은 커다란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두려움을 느낀 북한이 핵 개발에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해 35년간 미군으로 근무하면서 대다수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했던 로버트 콜린스는 2014년에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비롯한 '비대칭' 무기개발을 본격화한 것도 세계 최대 규모로 강해진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대응의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다. 노태우-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1992년 1월에 팀 스피릿 중단을 발표하면서 손에 잡힐 듯 다가왔던 비핵화가 이 훈련의 재개로 멀어진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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