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합법화까지... 보수의 새로운 대안세력
[김홍구 기자]
개혁 야당과 군부 기반의 보수 여당이 모두 두 개로 쪼개져 경쟁하는 가운데, 아예 제3세력이 캐스팅보드를 쥘 가능성도 진지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군부 바깥의 전통적인 대기업과 지역 기반의 보수계 세력을 뜻하기 때문에 사실상 군부의 연립정권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상당히 많은 보수계 정당 가운데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품짜이당(Thai Pride Party)과 쁘라차티빳당(Democrat Party)을 들 수 있다.
정치적 확장력 기대
품짜이당은 2019년 총선 후 유일하게 원내 의석수가 많이 증가한 정당으로 연립정부 내 2인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품짜이당은 원래 탁신계 정당인 타이락타이당(Thais Love Thais Party)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정당으로 동북부 부리남(Buriram)을 정치적 근거지로 삼고 있어서 지지 세력이 상당 부분 겹친다.
품짜이당 대표인 아누틴 찬위라꾼(Anutin Charnvirakul, 1966년생)은 차기 총리 다크호스로 대두되는 인물이다. 품짜이당은 2019년 총선에서 '가정용 대마 재배 합법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고 연립정부 구성 후 아누틴 당대표가 보건부 장관에 취임하여 대마를 합법화시켰다.
이 정책은 대마초를 비즈니스 기회나 일부 질병을 치료하는 대체 약초로 보는 중소기업인, 한약 옹호 단체 및 일반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코로나로 침체된 경기를 대마 사업으로 되살려 보겠다는 일종의 포퓰리즘적인 정책이었던 것이다.
▲ 태국 방콕 외곽 보건부 건물의 '전통ㆍ대체 의학부'에 문을 연 대마초 처방 병원에서 28일 환자들이 의사 진료에 앞서 혈압을 재고 있다. 태국 최초의 이 대마초 처방 병원은 주로 수면 장애 환자들을 치료한다. 동남아에서 처음으로 치료 목적의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태국은 대마초 처방 병원이 의료 관광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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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말 다수(34명)의 다른 정당의원들이 품짜이당으로 대거 입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정치적 갈등이 만성화되고 있는 정치상황 속에서 중도정당으로의 적절한 자리매김이나 정치적 양극화를 지양하는 정책 등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평가돼 정치적 확장력이 기대되고 있다.
품짜이당은 연립정부 구성 시 가장 선택지가 넓은 정당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중립적 정치성향을 갖는 아누틴 대표의 총리 선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품짜이당과 팔랑쁘라차랏당 중심의 연정설이 대두되고 있지만 품짜이당은 현 야권의 어떤 정당들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근 지역구 기반의 예상 의석수 조사들에서는 품짜이당이 제1당인 프아타이당에 이어 2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사결과들은 부동층이 많은 가운데 실시돼 상당히 유동적일 수도 있다.
명예 회복 노리는 세력
1946년 이래 태국에서 가장 오랜 정당의 제도화 역사를 갖고 있는 쁘라차티빳당은 2019년 총선에서 전통적 강세 지역이었던 방콕에서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할 정도로 참패를 맛보았으며(직전의 2011년 총선에서는 33석 중 23석 획득) 텃밭으로 자랑하던 남부지역에서도 신생 팔랑쁘라차랏당과 아나콧마이당에 밀려 당세가 크게 기울었다(직전의 2011년 총선에서는 52석 중 50석을 얻었으나 2019년 선거에서는 22석 획득).
이후 쁘라차티빳당은 당 대표 리더십의 위기와 당내 갈등(쁘라윳 총리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의 갈등)으로 많은 당내 중진들이 당을 떠나기도 했다. 쁘라차티빳당을 탈당한 인사들 중에는 쁘라윳을 차기 총리로 내세운 루엄타이쌍찻당으로 옮겨 간 인사들이 많다.
최근에는 전 총리를 지낸 추안 릭파이(Chuan Leekpai, 1938년생), 아피시트 웨차치와(Abhisit Vejjajiva, 1964년생) 등 대중적 인기를 지닌 민주당 출신 인사들을 선거전 전면에 내세워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노력 중이다. 특히 방콕과 남부지방에서 과거의 영광을 찾기 위해서 전력투구하고 있다.
쁘라차티빳당은 제1야당 프아타이당과의 악연이 있다. 탁신 집권 후 항상 그 대척점에 서 있었다. 또 2019년 총선 후 아피씻 전 총리가 당대표직에서 물러나고 의원직마저 던져버린 이유는 총선 패배와 더불어 자신이 반대했던 친군부 팔랑쁘라차랏당과 쁘라차티빳당과의 연정에 반발해서였다.
현재 품짜이당과 함께 연립정부의 핵심축을 이루고 있는 쁘라차티빳당은 대마초법안 제정을 앞두고 이를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품짜이당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쁘라차티빳당은 연립정부 구성 파트너에 대한 언급은 아직까지 자제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현 여권세력(팔랑쁘라차랏당, 루엄타이쌍찻당, 품짜이당, 쁘라차티빳당)들은 사실상 분열되어 있거나 정치적 응집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이긴 하나 총선 후 정치 상황에 따라 다시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여론조사를 통해 아직까지 쁘라윳이 현 여권 내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총리 후보이긴 하나 그가 옮겨간 루엄타이쌍찻당이 여권 내 다른 정당보다 적은 의석수를 확보한다면 쁘라윳이 총리가 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상원 배제한 총리선출?
5월 14일 총선이 실시되면 7월 중순 새 의회가 개원하고 7월 말 새 총리를 선출하게 된다. 총선 직후 각 당은 합종연횡하여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총리를 결정할 것이다. 각 정당이 추천한 후보가 총리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과반 의석인 376석 이상이 필요하다. 상원 지지 없이는 하원에서만 376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총리로 선출될 인물이 하원뿐 아니라 최소한 상원의 일부 지지도 받을 수 있는 인물 가운데에서 선택되어야 하는 이유다.
총선 후 제1당만이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9년 총선에서도 팔랑쁘라차랏당은 프아타이당에 이은 제2당이었지만 쁘라차티빳당, 품짜이당 및 군소정당들과 함께 과반수 의석을 겨우 넘겨 연립정부를 구성한 후 군부가 지배하는 상원의 지지를 받아 총리를 선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 후 연립정부 구성과 총리 선출에 정당성을 얻기 위해 현 여야가 다시 헤쳐모여를 통해 상원의 지지 없이 하원만으로 376석을 확보하려고 할 가능성도 예상해 볼 수 있다. 2014년 쿠데타 후 10년이 돼가는 시점에서 이제는 민의를 따라야 한다는 명분을 무시할 수 없어서이다. 현 태국 상원의 총리 임명권은 2024년이면 종료된다.
* 필자: 김홍구는 동남아시아 연구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와 동남아창의융합학부 교수로 재직했으며 태국의 치앙마이대학교와 까쎗쌋대학교 객원교수로 근무했다. 저서로는 〈태국군과 정치〉, 〈태국 정치입문〉, 〈동남아 정치변동의 동학, 공저〉, 〈한국 속 동남아현상, 공저〉, 〈동아시아의 한류, 공저〉 등이 있다. hongkoo@b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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