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대립적 관계로 변하는 쿠데타 동지

김홍구 2023. 4. 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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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총선②] 친 군부 보수세력의 분열과 전망

[김홍구 기자]

1인 1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한 2019년 태국 총선에서는 그 어떤 정당도 의회 다수석을 차지할 수 없었다. 결국 친군부 팔랑쁘라차랏당(People's State Power Party)과 군소 정당들이 연대하여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총리 선출권을 가진 상원의 지지를 얻어 군부 출신 총리(쁘라윳)를 선출한 것이다.

총선에는 77개 정당이 출마하여 1석 이상을 획득한 정당의 수가 27개나 되었다. 비례표가 워낙 분산되었던 탓에 총선 후에는 선관위가 정당별 비례대표 의원 배분 기준을 변경하여 하향 조정했을 정도다. 물론 궁극적 목적은 군부 주도의 연정구성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었다. 비례대표 의석수의 조정을 통해 군소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고 이들을 팔랑쁘라차랏당 주도 연정에 참여시킨 것이다.

보수세력의 분열

2019년 총선(지역구 350명, 비례대표 150명) 결과, 제1당인 프아타이당(For Thais Party)은 지역구 의석 136석을 확보했지만, 비례대표 150석 중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팔랑쁘라차랏당은 지역구 97석, 비례대표 19석을 차지했다. 어느 쪽도 단독으로 과반수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이런 와중에 결국 군부가 어부지리를 얻고 말았다. 팔랑쁘라차랏당 및 군소정당을 포함한 19개 정당과의 연립을 통해 형성된 친군부 세력은 254석을 확보해 간신히 과반수를 확보했다. 반군부 세력은 프아타이당 및 아나콧마이당(Future Forward Party) 등 7개 정당과 연립을 형성하여 과반수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246석을 확보했다.

2023년 총선부터는 1인 2표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다. 이 제도는 군소정당보다 대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다. 지난 총선 때와 같이 프아타이당과 같은 제1당의 비례대표의석을 제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팔랑쁘라차랏당은 군소정당과 합종연횡할 프리미엄도 갖지 못하게 됐다. 이런 선거제도 아래서 치러지는 2023년 태국 총선의 또 다른 특징은 여권인 친군부 보수세력이 분열된 가운데 치러진다는 것이다.

중요 친군부 보수세력은 현재의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3개 정당들-팔랑쁘라차랏당(People's State Power Party), 쁘라차티빳당(Democrat Party), 품짜이당(Thai Pride Party)-이다. 이 중 핵심은 팔랑쁘라차랏당이다. 이 당은 2014년 쿠데타 후 주도 세력인 쁘라윳 짠오차(Prayut Chan-o-cha, 1954년생) 현 총리와 당 대표인 쁘라윗 웡쑤완(Prawit Wongsuwan, 1945년생)이 만든 정당이다. 팔랑쁘라차랏당은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익을 좇아 이질적인 정치파벌이 연합해 만든 친군부 정당이었다.

정당의 핵심 인물들은 2006년 쿠데타로 쫓겨난 전 총리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1949년생)계 정당에 소속되었던 정치인들이었다. 쌈밋(Sam Mitr) 파벌이라 불리는 탁신 정부의 대표 브랜드인 탁신 노믹스(Thakshinomics)의 주요한 입안자들과 당 사무총장 겸 농업협동조합부 차관직을 맡았던 탐마낫 프롬파오 (Thamanat Prompow) 등이 주요 인물이었다. 다른 정당 소속의 전 의원들 다수도 팔랑쁘라차랏당 창당에 참여했다.

쉽게 말하자면 팔랑쁘라차랏당은 정당의 뿌리 없이 정치적 이해를 따라 만들어진 정당이라는 얘기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후 당권 투쟁과 야권의 의회 내 정부 불신임 과정에서 자중지란이 발생해 초기 주요 창당 멤버들을 비롯해서 다수의 의원이 탈당함으로써 당세가 크게 약화했다.

정당 선호도 여론 조사에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팔랑쁘라차랏당은 최근 지역구 기반의 예상 의석수 조사들에서는 현 여권 내 2인자라고 볼 수 있는 품짜이당에도 밀리고 있다.

군부 유지 위한 '꼼수'?

당내 혼란의 와중에 급기야 당내 반발에 처해 인기를 잃어가던 쁘라윳 총리는 신생정당인 루엄타이쌍찻당(United Thai Nation Party)으로 옮겨 새 총리 후보로 출마하기로 했다. 이 당은 주로 현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친 쁘라윳 총리계 쁘라차티빳당 탈당 정치인들과 2014년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1967년생) 전 총리 퇴진 시위를 벌였던 정치 세력들이 당의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다.

루엄타이쌍찻당은 비록 신생 정당이긴 하지만 단독으로 최소한 25석의 하원 의석을 확보하기만 하면 총리 후보를 낼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정당과 연대해 126석의 하원의석수를 확보하게 되면 쁘라윳 현 총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원(250석)과 함께 그를 총리로 당선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가 오는 5월 14일 총선 출마를 위한 후보 등록을 위해 3일(현지시간) 등록소가 마련된 방콕 소재 태국·일본 청년 센터 스타디움에 도착하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육군 참모총장이던 2014년 5월 쿠데타를 일으켜 3개월 뒤 총리직에 오른 뒤 2019년 3월 민정이양을 위한 총선을 통해 집권 연장에 성공했다. 2023.04.03
ⓒ 연합뉴스
 
2014년 쿠데타 후 만들어진 2017년 헌법은 총리 자격과 선출 방식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총리 후보는 하원의원일 필요가 없으며, 선거 전에 각 정당 추천명단(최대 3명)에 이름을 올리면 된다. 명단에 오른 후 총리 후보는 지역구 의원이나 비례대표 의원이 되지 않더라도 총리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 총리 후보를 내는 정당은 최소한 25석의 하원 의석(하원의 5%)을 확보해야 한다. 총리는 하원 과반수 표결로 선출될 수 있다.

그러나 헌법 272조 유보조항에 따르면, 최초로 원이 구성된 후 5년 동안은 500명의 하원의원뿐만 아니라, 250명의 상원의원도 총리 선출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최소 상하 양원 과반수인 376표를 얻어야 총리에 선출될 수 있다.

군부 편인 상원과 사법부

2017년 헌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상원 관련 조항이다. 집권 군부의 군사평의회 격인 국가평화유지위원회(NCPO, National Council for Peace and Order, 2014년5 22일∼2019년 7월 10일까지 존속)가 선발위원회를 통해서 임명했다. 상원은 군부의 권력 유지를 위한 가장 강력한 법적, 제도적 장치였다.

2022년 8월 24일 헌법재판소는 쁘라윳 총리에 대해 헌재의 최종 판단까지 직무 정지 결정을 내렸다. 그가 직무 정지를 당한 이유는 2017년 개헌으로 확정된 최대 8년 기한의 총리 임기를 언제부터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 때문이었다. 야권에서는 쁘라윳 총리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2014년 8월부터 8년이 되는 시점인 2022년 8월 24일로 그의 임기가 끝난다고 주장했다.

9월 30일 태국 헌법재판소는 쁘라윳 총리의 임기 시작은 개헌 시점인 2017년으로 봐야 할 것이기 때문에 헌법상 최장 8년인 총리 임기를 넘기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이 결정으로 쁘라윳 총리는 야권이 제기한 임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총리직에 복귀했으며 연임에 성공할 경우 2025년 4월 6일까지 재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는 총리 전체 임기 4년 중 절반만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으로 쿠데타 후 유지되었던 정치적 영향력의 큰 쇠퇴를 의미하게 된다.

전국 단위의 선호 정당과 총리 후보 여론 조사에 따르면 쁘라윳 총리와 루엄타이쌍찻당은 전체 3위(1, 2위는 야당인 프아타이당과 아나콧마이당), 보수권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지역구 기반의 예상 의석수 조사들에서는 같은 여당인 품짜이당에 뒤지고 팔랑쁘라차랏당과 엇비슷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팔랑쁘라차랏당은 현재 당 대표인 쁘라윗을 차기 총리 단독 후보로 추대했다. 쁘라윳 총리와 쁘라윗 당 대표는 2014년 쿠데타를 일으킨 동지이며 군대 내에서는 밀접한 선후배지간으로 보병 제21연대를 기반으로 한 태국판 하나회(부라파 파약, 동부호랑이그룹) 구성원이기도 하다.

루엄타이쌍찻당으로 옮겨간 쁘라윳 총리는 총선 후에는 (쁘라윗의) 팔랑쁘라차랏당과 다시 연합하여 연립정부 구성의 핵심세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양당 관계는 점차 대립적 관계로 변하고 있다.  

앞으로 연립정부가 구성된다면 친군부 상원은 (쁘라윗의) 팔랑쁘라차랏당과 (쁘라윳의) 루엄타이쌍찻당 중 (연립정부 구성시) 의미있는 의석수를 차지한 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상원의원은 2014년 쿠데타 후 만들어진 NCPO가 임명했다. 쁘라윳은 군사평의회 의장이었지만 이 기구를 실제로 운영한 것은 자문회의 의장 쁘라윗이었다.

쁘라윳의 선배이기도 한 쁘라윗은 지금도 당뿐 아니라 군부와 상원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이다. 쁘라윳 총리는 그동안 팔랑쁘라차랏당의 당적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하원의원도 아니었다. 쁘라윳은 정당 소속이 아니어서 당과의 관계가 그리 끈끈하지 않았고 당은 쁘라윗 대표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친군부 쁘라윗의 반전?

최근 SNS를 통해서 쁘라윗은 태국 정치에서의 (군부가 중심이 되는) 권위주의 세력과 (민간정치세력이 중심이 되는) 자유주의 세력 간의 정치적 양극화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쁘라윗이 자신을 쁘라윳과 탁신 전 총리를 수장으로 하는 세력 사이에서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는 적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총선 후 연립정부 구성 시 정치적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정치적 메시지일 것이다.

쁘라윗은 총선 후 쁘라윳과의 연대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프아타이당과 연정을 구성한 후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설이 무성하다. 연정설에 대해서 겉으로는 부인하면서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상대당인 프아타이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층과 진보세력의 표를 더 얻기 위해서 팔랑쁘라차랏당과의 연정설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총선에서 승리하여 제1당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프아타이당에 대해서 군부 주도의 상원은 적대적이기 때문에 연립정부 구성과 총리 선출 시 상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 팔랑쁘라차랏당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는 정치적 해석이 있다.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상원은 총리 선출권을 갖고 있다. 태국 총리는 상하 양원 합동회의(상원 250석, 하원 500석)에서 과반 찬성을 얻은 후보가 선출된다.

* 필자: 김홍구는 동남아시아 연구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와 동남아창의융합학부 교수로 재직했으며 태국의 치앙마이대학교와 까쎗쌋대학교 객원교수로 근무했다. 저서로는 〈태국군과 정치〉, 〈태국 정치입문〉, 〈동남아 정치변동의 동학, 공저〉, 〈한국 속 동남아현상, 공저〉, 〈동아시아의 한류, 공저〉 등이 있다. hongkoo@b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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