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총선, 동지냐 적이냐

김홍구 2023. 4. 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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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총선①] 프아타이당과 까우끌라이당

태국의 정치는 등장 인물과 소속 정당의 이름이 상당히 많고 발음이 어렵고 난해하다. 그러나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한국과 엇비슷한 점도 많아 이해하기 불가능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태국 총선은 지난 9년간의 군부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정권이 야당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상당하지만, 현재 제1야당과 제2야당 사이의 관계가 급속히 경쟁관계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군부가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핵심. 제1야당인 프아타이와 제2야당인 까우끌라이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편집자말>

[김홍구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태국 정치권이 드디어 본격적인 총선체제로 돌입했다. 2019년 3월 선거 후 4년 만이다. 당시 선거 결과에 대한 엄청난 논란이 뒤따랐고 진통도 심했다. 2014년 쿠데타와 그 이후 군부 정치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짙었지만 왕권의 교체라는 태국의 역사적 변화 앞에 모든 논란이 뒤로 가려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현 국왕의 대관식이 총선 1달 뒤인 2019년 5월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2014년 쿠데타 이후 10년 가까이 미뤄뒀던 태국의 모든 이슈와 논란이 재분출할 것으로 보인다. 군부 연립 정권에 대한 평가와 지속성 여부, 그리고 쿠데타로 정권을 잃었던 야권의 부활 가능성이 외부 관전자 입장에서는 가장 뜨거운 이슈다. 현재 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가 크게 침체한 상황이기 때문에 태국의 총선 결과는 동남아 지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크다.
왕권 교체 이후 첫 선거

총선일은 5월 14일로 정해졌다. 이번 총선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반군부 개혁정당들'의 연대가능성이다. 야권의 연대 여부에 따라 다음 정권의 향방이 갈린다.
친군부 보수세력은 2014년 군부 쿠데타의 주역인 쁘라윳 짠오차(Prayut Chan-o-cha, 1954년생) 총리가 이끌고 있다. 군부 출신이 이끄는 기존의 여당은 팔랑쁘라차랏당(People's State Power Party)이었는데 자파 세력과 함께 루엄타이쌍찻당(United Thai Nation Party)으로 옮겨 총리 후보가 되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분열되어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라 정권교체를 위한 반군부 개혁정당간의 연대가 더욱 중요해졌다.

반군부 개혁정당의 핵심은 탁신(Thaksin Shinawatra 1949년생) 전 총리 계열의 프아타이당(For Thais Party)과 까우끌라이당(Move Forward Party)이다. 양 당은 현재 야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념적으로 개혁을 추구하기 때문에 유사점이 많지만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치적 동지 관계에서 적대 관계로 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변수가 된 새로운 선거제도

이번 2023년 총선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선거제도는 양 당에 확실한 정치적 유불리를 안겨주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유권자가 지지하는 지역구 의원 후보와 지지하는 정당에 각각 한 표씩 행사하는 1인 2표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다. 1인 1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러진 2019년 총선에서 프아타이당은 지역구 136석을 확보했지만, 비례대표 의석은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 되었다.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해 창당했던 자매정당 타이락싸찻당(Thai Save the Nation Party)이 선거 직전에 해산되면서 막대한 정치적 손실도 입었다.

반면에 까우끌라이당의 전신인 아나콧마이당(Future Forward Party)은 지역구에서 30석을 획득하고 비례대표 의석 150석 중 무려 3분의 1인 50석을 획득해 제3당으로 급부상했다. 아나콧마이당은 비례대표용 정당인 타이락싸찻당이 해산됨으로써 큰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의 경우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변경된 선거제도는 지역구 의석수를 350석에서 400석으로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150석에서 100석으로 줄였다. 아나콧마이당이 갖고 올 비례대표 의석수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1인 1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총  의석수는 정당득표율로 정해지고, 지역구에서 몇 명이 당선됐느냐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1인 2표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완전히 분리되어 정당별 비례대표 의석을 지역구 선거 결과와 아무 상관없이 배분하게 된다(현행 우리나라 제도와 같다). 더불어 1인 2표 선거제도에서는 유권자들이 비례 대표 의원에 대한 투표를 각 정당에서 제시한 총리 후보에 대한 투표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전국적인 유명 인사를 총리 후보로 많이 보유하고 추천한 유명 정당에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총선에서 1인 1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탁신계 정당인 프아타이당을 견제하는 데 톡톡히 역할을 했다. 2019년 총선 후 선거제도 개혁 당시 군소정당들과 2019년 적용된 선거법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았던 아나콧마이당의 후신인 까우끌라이당은 이 법안에 반대했다. 법안 통과 마지막 단계에서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는 방식을 놓고 치열한 공방도 벌어졌다.

제1당 예상되는 프아타이당

새로운 선거제도에 따라서 제1당이 예상되는 정당은 프아타이당이다. 이번 총선에서 프아타이당은 하원 의석(총 500석) 과반수를 확보하는 압도적인 제1당을 목표로 삼고 있다. 탁신계 정당들은 2006년 군사쿠데타로 탁신이 축출된 이후 모든 총선에서 제1당을 고수해 온 선거 강자다. 지역적으로 가장 많은 유권자를 확보한 동북부(전체 지역구 의석의 3분의 1 차지)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쿠데타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탁신계 정당은 모두 제1당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과반의석에 근접하거나 상회하는 위력을 보여 왔다(2001년 타이락타이당 248석→2005년 377석→2007년 팔랑쁘라차촌당 233석→2011년 프아타이당 265석).
프아타이당은 탁신의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Paetongtarn Shinawatra, 1986년생)을 차기 총리 후보로 내세워 탁신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패통탄은 대다수의 총리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다.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의 막내딸인 패통탄이 22일(현지시간) 중부 논타부리에서 총선 유세를 하고 있다. 패통탄은 제1야당 프아타이당 총리 후보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지난 20일 하원을 해산한 뒤 총선일을 5월 14일로 확정됐다. 2023.03.23
ⓒ 연합뉴스
최저임금 두 배 인상, 대졸자 최저임금 2만 5천바트 보장(한국 돈 96만 원), 농민 소득 세 배 증대, 의료 보장 범위 확대, 방콕 대중교통 요금 인하, 16세 이상 전 국민에게 1만 바트 지급 등 탁신 계열 정당들의 전가의 보도인 포퓰리즘 정책을 발 빠르게 제시했다. 극단적 포퓰리즘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지만 선거 이슈를 선점해 나가는데 탁월함을 과시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태국 총리 후보는 각 정당에서 3명을 추천할 수 있다. 프아타이당이 제시한 3명의 총리 후보 중 패통탄에 이어 눈여겨볼 후보는 산시리 부동산개발업체의 스레타 타비신 회장(Srettha Thavisin, 1963년생)이다. 그는 패통탄 총리 후보를 대신할 히든카드로도 불린다. 선거기간 중 득표 전략으로 탁신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패통탄을 첫 번째 총리 후보로 내세웠지만, 국가의 산적한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서 경륜이 많은 스레타로 후보 교체를 할 가능성도 크다. 경제전문가인 그는 CEO만을 국한한 총리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패통탄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잘 알려진 대로 패통탄의 부친인 탁신 전 총리 정권(2001~2006년)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다. '탁시노믹스(Thaksinomics)'라고 불린 탁신의 경제정책 노선은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난 받으면서도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쿠데타 후 부인의 토지매입과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로 2년 실형을 판결 받고 해외 망명중인 탁신은 지금도 정치적 복귀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프아타이당 내에서 그의 딸의 역할은 당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표시라고 볼 수 있다.

프아타이당의 연립정부 주요 가능 파트너는 2014년 쿠데타 주도 세력이며 현 총리인 쁘라윳 총리와 그를 총리로 추대한 루엄타이쌍찻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 집권여당인 친군부 팔랑쁘라차랏당과 연립정부 구성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추측도 무성하다.

제1, 2 야당 사이의 갈등

반군부 개혁 세력의 또 다른 중심은 까우끌라이당인데 그 뿌리는 아나콧마이당이다. 청년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선 아나콧마이당은 2019년 선거에서 무려 80석을 얻어 돌풍을 일으켰으나 군사정권에 대한 강경노선을 고수하면서 다양한 법적 문제에 직면하던 중 2020년 2월 21일 정당 기부금 불법 수령과 관련한 선거법 위반으로 해산되었다. 해산 후 다수 의원들은 까우끌라이당으로 간판을 바꿔 옮겨갔다.

까우끌라이당은 사회민주주의 진보정당으로 군부와 왕실에 가장 적대적이다. 피타 림짜른랏(Pita Limjaroenrat, 1980년생) 까우끌라이 당 대표는 2019년 총선에서 아나콧마이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됐다. 정치무대에서 참신한 이미지로 각종 차기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프아타이당의 패통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4년 군부 쿠데타 이후 정치의식이 크게 성장한 MZ세대, 진보적 지식인들과 학생운동 세력들의 지지는 총선에서 가장 큰 자산이 되고 있다. 최근 대부분의 주요 정당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까우끌라이당은 프아타이당에 이어 두 번째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까우끌라이당은 프아타이당과 지지세력이 겹쳐 총선에서 경쟁적인 관계에 있지만 총선 후에는 연정 구성을 원하고 있다. 다만, 친군부 정당인 팔랑쁘라차랏당이나 루엄타이쌍찻당과의 연정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팔랑쁘라차랏당과의 연정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프아타이당과는 확실히 다른 정치적 입장이다.

까우끌라이당은 '군부 정권 교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프아타이당과의 차별화 전략에 고심하고 있다. 1인 2표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특성을 고려해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분리해서 양당에 골고루 투표하도록 유권자를 유도하겠다는 것도 선거전략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는 그 목표가 쉬울 것 같지는 않다.

까우끌라이당은 MZ세대를 대상으로 차별화된 소셜 미디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형법 112조 개정 등 왕실 개혁에 대해서 가장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어서 정치적 파란도 예상된다. 쿠데타 방지와 군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국방정책-징병제 폐지, 군 규모 축소, 장군 수 감소-의 개선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면서 왕실과 군 정책에 대해서 아직 애매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프아타이당을 비난하고 있다.
 
 까우끌라이당 당수 겸 총리 후보 피타 림짜른랏
ⓒ 까우끌라이당
 
2022년 12월 태국 내무부 행정국 자료에 따르면 태국의 총 유권자 수 5306만 7207명 중 18-25세(Z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12.80%, 26-41세(Y 세대) 28.90%, 42-57세(X세대) 30.80%, 58-76세(베이비부머 세대) 22.60%, 77세 이상(사이런트 세대) 4.90%이다. 대략 이 가운데 프아타이당은 X세대 이상에서 지지세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까우끌라이당은 상대적으로 Y세대 이하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

프아타이당이 나이가 젊은 패통탄을 총리 후보로 내세운 것도 까우끌라이당에 치우쳐 있는 Y세대 이하의 지지를 더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양당은 특히 Z세대 중에서도 생애 첫 투표 세대(18-22세 전체 유권자의 7.67%인 400만 명) 공략에도 크게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 후 연립정부 구성

프아타이당이 총선 후 연립정부 구성에 이어 자당 총리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는 하원 의석 과반수인 251석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과반수인 376석을 확보해야만 한다. 하지만 군부가 지배하는 상원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하원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는 게 최선이다.

그러기 위해선 목표 의석수를 310석까지 끌어올린 상황.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19년 총선에서 아나콧마이당이 가져간 진보세력과 젊은 유권자의 표를 적극 공략해야만 한다.

전국 단위의 여론 조사에서 대체로 프아타이당이 1위, 까우끌라이당이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 방콕 시민만을 대상으로 한 선호 정당과 총리 후보 조사에서는 모두 까우끌라이당이 프아타이당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Z세대만을 대상으로 한 총리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까우끌라이당의 피타 림짜른랏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4월 중순까지 실시된 선호도 여론조사는 아직 부동층이 많은 가운데 실시됐기 때문에 그 결과는 변동의 여지가 꽤 있다. 또 지역구를 기반으로 한 여론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예상 의석수를 파악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양 당 관계는 연립정부 구성 이후에도 갈등이 예고돼 있다. 지금은 양 당이 반군부 개혁세력 측에 같이 서 있지만 실용주의 정치를 추구하는 프아타이당과 이상주의 정치 성향이 강한 까우끌라이당이 함께 정부를 구성할 경우에 사사건건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프아타이당에는 까우끌라이당보다 현 여권의 실용주의 정치세력과의 연대가 더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23년 총선을 통해서 진정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유사한 개혁이념을 갖는 양당 연대가 주축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 양 당은 정치적 이상과 실용의 수용 폭을 서로 넓혀나갈 필요가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서 양 당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 필자: 김홍구는 동남아시아 연구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와 동남아창의융합학부 교수로 재직했으며 태국의 치앙마이대학교와 까쎗쌋대학교 객원교수로 근무했다. 저서로는 〈태국군과 정치〉, 〈태국 정치입문〉, 〈동남아 정치변동의 동학, 공저〉, 〈한국 속 동남아현상, 공저〉, 〈동아시아의 한류, 공저〉 등이 있다. hongkoo@b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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