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 싱가포르]대니 리 인터뷰 “프로 되고 잃었던 자신감 되찾았다”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33·한국명 이진명)는 “끝내기 퍼트의 짜릿함은 잊은 지 오래다”며 멋쩍게 웃었다. 미소와 함께 떠올린 대회는 지난달 20일 미국에서 열린 LIV 골프 투손. 당시 최종라운드에서 카를로스 오티스(32·멕시코), 브렌던 스틸(40·미국), 루이 우스트이젠(41·남아공)과 9언더파 204타 동타를 이룬 대니 리는 연장 세 번째 홀에서 7.5m짜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고 정상을 밟았다.
교포 선수로는 처음으로 LIV 우승자가 된 대니 리를 27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장에서 만났다. 5차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뙤약볕 아래서 연습이 한창이던 대니 리는 “공이 놓인 러프가 손상이 된 상태였다. 그래서 어프로치 대신 퍼터를 잡았다. 붙이자는 생각이었는데 공이 컵으로 빨려 들어갔다”면서 “정말 짜릿했다. 개인적으로는 오래간만의 우승이라 감격이 컸다. 모처럼 내 이름이 나온 한국 기사도 열심히 찾아봤다”며 활짝 웃었다.
대니 리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뛰던 선수였다. 2009년 프로 전향 후 줄곧 제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자금을 댄 LIV 출범이 골프 인생을 바꿔놓았다.
대니 리는 “지난해 2월 즈음 케빈 나(40·미국) 형이 LIV 이적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OK’라고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모두가 꿈꾸는 곳이 PGA 투어 아닌가. 우승은 하지 못했어도 나름 시드를 잃지 않으면서 10년 넘게 버티고 있었는데 당장 LIV로 가려니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심하던 대니 리는 결국 “지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다”는 케빈 나의 충고를 받아들여 LIV로 적을 옮겼다.
한때 대니 리는 꽤 잘 나가던 유망주였다. 뉴질랜드 주니어 국가대표를 거쳐 2008년 US아마추어챔피언십 정상을 밟았다. 타이거 우즈(48·미국)가 갖고 있던 18세7개월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18세1개월로 갈아치웠다. 이듬해 2월에는 유러피언 투어 조니워커 클래식을 제패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9년 프로 전환 이후에는 우승이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2015년 그린브라이어 클래식이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 원인은 자신감 결여였다.
대니 리는 “프로가 되고 나서 두 번째 대회로 기억한다. 내 앞에는 우즈, 뒤에는 아담 스콧(43·호주)과 어니 엘스(54·남아공)가 있었다. 이들의 스윙을 바로 옆에서 보니까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더라. 대회가 거듭될수록 그런 생각이 많아졌고, 나는 계속 위축됐다. 그러면서 정상에서 멀어졌다”고 회상했다.
대니 리는 이번 2022~2023시즌에도 11개 대회 중 5차례나 컷 탈락했다. 결국 개막전인 2월 마야코바 대회를 기점으로 LIV에서 뛰기 시작했다. 이어 바로 다음 투손 대회에서 정상을 밟으면서 우승상금 54억 원을 챙겼다. 14년간 PGA 투어에서 벌어들인 약 200억 원 중 4분의 1이 넘는 돈을 사흘짜리 대회로 벌어들였다.
대니 리는 “골프는 외로운 스포츠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전역을 혼자 다니는 시간이 많은데 LIV는 그렇지 않다. 팀이 중요시된다. 우리(아이언헤드)의 경우 케빈 형과 김시환(35) 형 그리고 스캇 빈센트(31·짐바브웨)가 가족처럼 지낸다. 그런 점이 자신감을 되찾게 해줬다”고 말했다.
대니 리는 199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티칭 프로인 어머니 서수진 씨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골프와 친해졌다. 8살 때 부모님을 따라 건너간 뉴질랜드에선 더욱 체계적으로 골프를 배웠고, 금방 실력이 늘었다. 한국을 떠난 지는 오래됐지만, 대니 리는 이날 능숙한 한국어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종종 한국도 찾는다고 한다. 이달 호주 대회(21~23일)를 앞두고 잠시 들러 부모님과 친척들을 만났다.
대니 리는 “빨리 한국에서도 LIV 대회가 열렸으면 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LIV를 국내 골프팬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경기를 직접 보셔야 LIV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니 리를 비롯해 필 미켈슨(53)과 더스틴 존슨(39), 브룩스 켑카(33·이상 미국), 이안 폴터(47·잉글랜드) 등 LIV 소속 선수 48명이 모두 출전하는 이번 대회는 28일 센토사 골프장의 세라퐁 코스(파71·7406야드)에서 개막한다. 총상금은 개인전과 단체전을 합쳐 335억 원이다.
센토사(싱가포르)=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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