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캐릭터탐구㊱] 칸♡ 다르덴 형제가 보여 주는 인물들
칸이 무려 6번의 상을 안길 만큼 사랑한 감독 다르덴 형제(형 장 피에르, 동생 뤽)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가슴 설레는 일이다.
다르덴 형제는 먼저, 오늘 개막하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의 감독으로서, 일반상영 후 3번 관객과 만난다. 전주에서 곧장 형제가 나고 자라 주로 카메라에 담는 벨기에로 돌아가지 않고, 서울에서도 세 차례 관객과 만난다. 오는 30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5월 1일 아트나인과 씨네큐브에서다. 씨네큐브의 ‘씨네토크’에는 팬을 자청하는 배우 이주영도 참석한다.
모두 매진이다. 직접 그 육성을 들을 기회는 없다. 한국 시네필(영화애호가)이 다르덴 형제를 이토록 사랑하다니, 기쁘다. 소식을 접하지 못했든, 게으름을 피웠든, 다르덴 형제 감독을 직접 볼 수 없는 많은 이를 위해 방송사들이 촬영해 소개해 주기를 팬으로서 열망한다.
포기는 이르다. 작품만큼 연출자의 내면에 깊이 들어가는 길도 드물다. 씨네큐브는 다음달 9일까지 다르덴 특별전을 연다. ‘로제타’(1999)로부터 ‘아들’(2002), ‘더 차일드’(2006), ‘자전거 탄 소년’(2011), ‘언노운 걸’(2016), ‘소년 아메드’(2019)에 신작 ‘토리와 로키타’(2023)까지 대표작 7편을 상영한다. 아트나인도 28일부터 다르덴 형제 특별전을 개최하고, 에무시네마는 월례기획전 ‘겟나인’을 통해 5월에는 다르덴 형제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오는 5월 10일 ‘토리와 로키타’가 개봉하기 전에 전작 몇 편쯤 미리 봐두는 것도 다르덴 형제의 세계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으로 특별전을 볼 수 없는 관객도 있을 터라, 필자가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깨달은 다르덴 형제의 세계를 그들이 보여 준 인물들을 통해 톺아 본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개인적으로 깨달은…이라고 적은 이유가 있다. 다르덴 형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 손에 억지로 쥐어 넣지 않는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상에 카메라를 들여놓고 우리 각자가 바라보게 한다. 개입하지 않는 연출 시선에 더해 기성 배우들을 거의 쓰지 않기에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로 보인다. 하지만 분명 극영화다.
형제의 카메라 안에 들어온 인물들에는 공통점들이 있다. 우리가 흔히 관심 두지 않거나 종종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은 이들이다. 이주 노동자, 10대 살인범, 영아 매매범, 보육원 소년, 손님을 내친 의사, 무슬림 난민(위에 적은 대표작 순). 우리 사회가 씌운 편견의 프레임의 눈으로 보면 부정적 인식을 띄게 하는 인물들이다.
다르덴의 카메라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 보면, ‘내 생각이 맞았어!’라고 편견을 강화하기 십상이다. 이주 노동자 로제타는 뚜렷한 이유 없이 자신을 해고한 업주의 명령에도 출근을 강행해 하던 대로 열심히 일하며 주위를 불편하게 하고, 자신을 돕겠다며 제안한 ‘돈벌이’를 단칼에 제안한다. 10대 살인범은 교도소 목공반의 지도교사가 자신이 죽인 아이의 아버지임을 알고도 눈물 흘려 사과하지 않는다. 갓 태어난 아기를 돈 몇 푼에 팔아넘긴 범인은 아이의 아버지였다. 보육원 소년 실리는 잃어버린 아버지와 자전거를 찾고 싶어 한다면서 주말 위탁부모가 되어 준 미용실 아주머니의 만류에도 동네 불량소년과 가까워진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면서 진료 시간이 끝났고 나의 개인적 휴식도 중요하므로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녀의 눈망울을 외면한다. 난민으로 벨기에에 정착한 소년 아메드는 어린 시절 난독증 극복을 도와줬고 지금도 돌봄교실에서 수학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칼로 찌른다.
쉽게 이해하기엔 도무지 접점을 찾기 어려운 인물들을 관객의 마음 안에 들여놓는 흔한 방법은 ‘극적 스토리’를 통해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사연과 내면의 착한 심성을 통해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켜 ‘반전’을 꾀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르덴 형제는 그렇게 목소리 높여 우리에게 그 불가피성과 저간의 사정을 웅변하지 않는다. 그저 과묵하게, 담담히 보여 주기만 한다.
놀라운 건, 영화를 보는 동안일 수도 있고 영화를 보고 나서 한두 달이 지난 후일 수도 있고 ‘문득’ 깨달음이 온다. 내 안의 양심이든 상처든 인간미든 인격이든 무엇인가와 그 인물들이 ‘만난다’.
로제타를 예로 들면. 남들은 놀러 오는 캠핑촌 한 구석 낡은 캠핑카에서 살며 알코올 중독 어머니를 대신해 내일 입으로 들어가야 할 먹거리를 걱정하고 아픈 엄마를 보살피며 없는 돈에 약을 사야 하는 로제타. 주인 몰래 구운 빵을 네가 팔아 오면 돈을 나누자는 와플가게 종업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금은 쉽게 돈을 벌어도 우리가 돌을 던지진 못할 것 같은데, 로제타는 꿋꿋하게 ‘정당하게 일해서 번’ 돈만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수도세를 내고 약을 사려 한다. 로제타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다. 나에게 저토록 건강한 노동성이 있는가, 저 가난에도 나는 인간의 선을 지킬 수 있겠는가. 어린 소녀 앞에 부끄러워진다.
캠핑카 안이 아니라 멀쩡하게 시멘트벽이 있는 집에서, 영원한 내 집도 아니고 하루 얻어 자는 남의 집에서, 진수성찬도 아니고 설탕 아끼지 않고 듬뿍 바른 토스트를 내일 먹거리 생각하지 않고 배부르게 양껏 먹고 누운 잠자리에서, 로제타는 ‘적어도 나는 오늘 남들처럼 평범했음’에 감사한다. 평범함이 최상의 사치인 인생을 살고 있는 로제타, 명예나 권력이나 큰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 ‘평범’을 꿈꾸는 소녀가 부자나 높은 지위를 바라는 어른보다 더욱 숭고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목표를 핑계로 인간의 선을 쉽게 넘는 나는 아니었던가, 목적을 이유로 수단을 정당화하는 우리는 아니었던가.
다르덴 형제가 보여 주는 인물들을 보노라면, 분명 극영화의 캐릭터임에도 진정 인물로 보이는 그들을 만나노라면 반성에서 그치지 않게 된다. 작게는 멀리서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만 쉽게 하지 말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봐야겠구나, 이 세상이 우리 사고에 씌운 프레임을 걷어내고 진실을 봐야겠구나, 하는 다짐이 생긴다. 나아가서는 작은 일이라도 ‘사회적 카메라’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돌아갈 노력을 해야겠구나, 나와의 약속도 생긴다.
도저히 머리로 이해될 것 같지도, 마음으로 공감할 수도 없을 것 같던 이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인위적이고 작위적 스토리로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그들의 삶을 보여 주기만 해도, ‘사회적 벽’으로 그들과 우리 사이가 단절되지만 않아도, ‘우리 이웃’의 이야기에 머리를 끄덕이고 마음을 열 수 있는 우리였다는 걸 다르덴 형제가 일깨운다. 남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지켜야 할 인간의 선, 나의 심성을 들여다보게 한다.
다른 여섯 편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특별전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드물게 마리옹 꼬티아르라는 스타 배우가 함께한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나의 연장수당과 동료의 복직이 상충하면서 벌어지는 직장 내 이야기라 더욱 쉽게 접점을 찾을지도 모른다.
개봉이 기다려지는 ‘토리와 로키타’는 ‘언노운 걸’ ‘소년 아메드’처럼 난민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난민, 그를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이었던 전작과 달리 열한 살 소년 토리와 열다섯 소녀 로키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난민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이미 어려운 가정환경, 사회적 처지에 놓인 ‘제 코가 석자’인 소녀와 소년이 서로를 위하고 돌보는 ‘남매’가 되어 가는 과정이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또 어떤 동(動, 움직임)을 가져올지 궁금하다.
칸국제영화제는 지난해 영화제 탄생 75주년을 기념해 ‘토리와 로키타’에 75주년 특별기념상을 선사했다. 특정 감독의 특정 영화에 공식 부문 외의 특별상을 수여한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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