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한 통 다 먹기, 참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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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원 기자]
양배추 한 통이 냉장고에 한참을 있었다. 식구들이 병치레를 하는 동안 양배추 한 통은 랩도 벗지 못 한 채 야채칸에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켰다. 양배추는 소분해서 반통이나 4분의 1 통도 살 수 있지만 항상 한 통을 구매하게 된다.
▲ 양배추 코울슬로 양배추 코울슬로 |
ⓒ 한제원 |
제일 좋아하는 양배추 요리는 양배추 코울슬로이다. 양배추를 가늘게 채 썰고 (채칼 이용, 손 조심) 마요네즈, 레몬즙, 소금 약간, 홀그레인 머스터드, 채친 당근이 있다면 조금 더 넣어 버무린다. 한양푼 가득 만들어도 숨이 죽어 더 작은 밀폐용기에 딱 들어가게 되니 냉장고 자리 차지 하는 것이 훨씬 적다. 식사 때마다 빵 반찬으로, 밥반찬으로 한 그릇씩 꺼내놓고 먹다 보면 금방 먹는다.
▲ 케마소스 양배추 케마소스 양배추 |
ⓒ 한제원 |
채친 양배추를 케마소스에 비벼주면 아이들이 그래도 잘 먹는 편이다. 케마 소스란 바로 케첩 마요네즈 소스. 옛날 경양식집을 떠오르게 하는 비주얼이고, 정겨움이란 조미료가 추가되었는지 이건 이것대로 맛이 있다. 김치를 안 먹는 아이들이라 케마 소스 양배추라도 식판에 자주 올려주는데 큰아이는 케첩 범벅을 해서 먹는다. 나도 그랬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의 모습이 보일 때면 당황스럽다. 유전이란 이런 것인가.
▲ 오코노미야끼 양배추전 |
ⓒ 한제원 |
양배추전도 빠질 수 없는 요리이다. 오코노미야끼라는 일본 요리이지만, 아마 내가 만드는 양배추 전은 정통 일본식과는 거리가 조금 있지 않을까. 채친 양배추에 부침가루를 조금 섞고 계란과 물을 소량 넣어 양배추끼리 엉길 정도로만 반죽을 한 뒤 두툼하게 팬에 올려 약불에 익힌다.
▲ 양배추찜 전자레인지에 간편 조리한 양배추 찜. |
ⓒ 한제원 |
양배추 4분의 1통 정도는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 쪄서 쌈으로 먹었다. 작게 잘라 한입 크기로 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면 아이들도 한두 번은 먹는다. 그 닥 좋진 않은 표정이지만 식판에 있는 음식 한두 번은 먹기로 한 약속은 잘 지키는 아이들이다.
언젠가는 양배추의 달큼한 맛, 쌈장이나 고기, 하다못해 고추참치라도 곁들인 양배추 쌈의 참 맛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어릴 때 그랬듯, 아이가 더 커서, 채소의 쓴 맛에 어느 정도 둔해지고, 본연의 단 맛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미각이 발달하면, 조금 더 크면 자연스레 채소의 맛을 알게 될 것이라 믿는다.
자투리 양배추는 볶음 요리에 넣거나, 다져서 계란말이에 넣어 먹었다. 그렇게 양배추 한 통을 남김없이 해치웠다. 사놓고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며칠을 냉장고에서 미동도 없이 지내면서도 하나도 상하지 않은 양배추에게 고맙다. 양배추를 실처럼 가늘게, 혹은 조금 더 두껍게 원하는 굵기대로 채칠 수 있게 해주는 채칼도 고맙다. 아마 나에게 칼과 도마만 쥐어 주었다면 이런 양배추 요리들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양배추 한 통을 다 먹고 숙제를 마친 기분인데 또 양배추를 사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 맛있는 채소, 몸이 부쩍 쇠해졌는데 토마토와 함께 삶아서 해독주스를 해 먹어볼까 생각 중이다. 이번 감기가 독하긴 독한지 다 나은 듯 완전히 낫지 않고 있고, 몸과 마음이 부쩍 쇠약해진 느낌이다. 몸과 마음에 독소가 쌓였나, 싶어서 해독주스 생각이 난다. 몸의 독소보다는 마음의 디톡스가 필요할 것 같은데 몸에 좋은 채소를 먹으며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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