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전북, 리더십이 사라졌다
[이준목 기자]
프로축구 명가 전북 현대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무기력하고 재미없는 경기력, 거듭된 패배로 인한 순위 추락,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의 신뢰 상실, 팬들과의 갈등과 응원 보이콧 등 프로구단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도 구단과 모기업은 속수무책이다.
전북은 지난 4월 26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 하나시티즌과의 하나원큐 K리그1 2023 9라운드 홈 경기에서 1대 2로 패했다. 개막 9경기 만에 5패(3승 1무)를 거록한 전북은 승점 10점으로 9위에 머물렀다. 준우승을 차지했던 지난 2022시즌 38경기에서 7패 만을 기록했던 전북은 시즌이 겨우 1/4 정도 밖에 지나지않은 시점에 무서운 속도로 패배를 적립하고 있다.
'현대가 라이벌'이자 선두인 울산 현대(승점 22점)와의 격차는 벌써 12점이나 벌어졌다. 오히려 강등권인 10위 인천 유나이티드(승점 10)와 불과 1점 차, 11위 강원(승점 7)과 3점 차밖에 나지 않았다. 이제는 올시즌 우승 경쟁은 벌써 포기하고 진지하게 강등권 추락이 걱정될 정도의 경기력이다.
전북은 직전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2대 0 승리로 잠시 한숨을 돌리는 듯했지만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제주전에서 김상식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당하면서 대전전에서는 김두현 수석코치가 임시로 지휘봉을 잡았지만 패배를 막지 못했다.
전북을 더욱 굴욕스럽게 만든 것은 이날 상대인 대전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2부리그에 있다가 올라온 승격팀이라는 것. 심지어 전주 원정경기에서 로테이션을 단행하는 여유까지 보이고도 승리를 챙겨갔다는 것이다. 대전은 이날 이진현, 주세종 등 중원의 핵심 선수들이 벤치에서 시작했고 심지어 주포인 티아고는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럼에도 대전은 전북을 압도했다. 전북도 김진수-조규성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탈한 상황이었지만 이를 감안해도 홈에서 너무 무기력했다. 대전은 후반 5분 안톤과 후반 28분 이진현의 연속 골에 힘입어 후반 40분 정태욱이 한 골 만회하는 데 그친 전북의 추격을 따돌렸다. 대전은 이로써 올시즌 현대가 라이벌 울산과 전북에 모두 승리를 거둔 첫 번째 팀이 되며 승격팀 돌풍을 이어갔다.
'전주성'이라 불리우는 전북의 홈구장 전주월드컵경기장은 2022년까지 K리그 전체 구단 중 역대 홈 승률 1위(74.7%)를 자랑하던 '원정팀의 무덤'이었다. 전북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던 2009년부터 13년 동안 9번이나 K리그 정상에 섰고, 특히 안방에서 펼치는 특유의 닥공(닥치고 공격)과 관중석을 가득 메운 홈팬들이 외치는 오오렐레(전북의 대표적 응원가)는 상대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올시즌 전주성은 더 이상 원정팀에게 부담스러운 장소가 아니다. 전북은 올시즌 전주성에게 2승 1무 2패에 그치고 있다. 최근 구단과의 갈등으로 서포터즈가 응원을 보이콧하는 사태가 벌어지며 전북 선수들은 원정만도 못한 분위기에서 홈경기를 치러야 한다.
지난 1일 포항전 패배 이후에는 전북 팬들이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김상식 감독과 언쟁을 벌이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고, 9일 인천전에서는 팬들의 응원거부에 구단이 앰프를 틀어놓는 립싱크 응원으로 대체하자 팬들이 거세게 항의하며 야유를 퍼붓는 등 이겨도 이긴 분위기가 아니었다. 선수단이 홈경기를 더 부담스러워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지난 대전전을 앞두고서는 전북의 한 팬이 2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 원정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제주도를 방문했다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지며 추모 분위기가 형성됐다. 전북 선수단도 홈경기에 해당 팬을 추모하는 검은 리본을 부착하고 경기에 나섰다.
구단과 팬들의 갈등은 추모 국면에서 서로 잠시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냉랭한 기류는 바뀌지 않았다. 대전전에서도 원정 팬들의 응원열기가 더 뜨거웠고 홈 응원석의 분위기는 우울하게 가라앉아있었다. 대전의 승리가 까워질수록 실망한 전북 팬들의 반응은 더 차갑게 식어갔다. 부진한 성적을 반영하듯 최근 전주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숫자도 1만 명대 이하로 점점 감소하고 있다.
전북의 가장 큰 문제는 팀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했는데도 별다른 대책도 방향성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전북의 전력은 여전히 리그 최상위권이다. 조규성, 송민규, 백승호, 김진수는 지난 카타르월드컵 국가대표였고, 이외에도 홍정호, 문선민, 이동준, 아마노 준 등 타 팀에 가면 에이스급인 선수들이 즐비하다.
전북 몰락의 배경에는 무리한 세대교체의 실패와 전술-리더십의 부재가 꼽힌다. 전북은 그동안 구단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레전드로 불리우던 이용(수원FC), 이승기(부산) 등이 팀을 떠났고, 최철순은 1군에서 제외됐다. 전북은 최근 몇 년간 이적생들을 잇달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지만 많은 선수들이 오히려 전북에 입단한 이후 폼이 하락하거나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등 전술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김상식 전북 감독은 현재 전북 팬들 사이에서 허병길 대표 이사와 함께 팀 몰락의 주범으로 꼽히며 비판의 중심에 놓여있다. 김 감독은 부임 첫해 전북의 리그 5연패를 이끌었지만 2년 차이던 지난 2022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북은 지난 시즌 초반에도 한때 강등권인 11위까지 떨어졌다 중후반기에 간신히 반등하면서 리그 준우승과 FA컵 우승으로 체면을 세웠지만, 기복 심한 경기력과 전술 부재, 잦은 인터뷰 설화 등으로 팬들의 신뢰를 잃었다. 전북이 최근 10여년간 시즌 중 9위 이하로 떨어진 건 단 두 번이었는데 지난 시즌과 올해, 모두 김상식 감독 체제에서 벌어졌다.
묘하게도 현재 김 감독의 행보는 현재 '야구판 선동열'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야구의 국보급 투수이자 해태의 레전드였던 선동열 감독은 친정팀 KIA 타이거즈의 지휘봉을 잡으며 기대를 모았으나 선수시절과 달리 감독으로서는 베테랑 홀대-부진한 성적-팬들과의 소통 부재-전임 감독과의 비교 등 각종 논란 속에 초라한 성과를 남기고 물러난 바 있다. 김상식 감독 역시 색깔없는 축구와 애매한 전술로 무너지는 경기가 속출했고, 여기에 팬들과의 갈등을 유연하게 수습하지 못하며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북과 함께 올시즌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는 수원 삼성은 최근 분위기 전환을 위하여 구단 레전드인 이병근 감독을 경질하는 결단을 내렸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김상식 감독의 거취 역시 주목받는 상황이다. 전북 구단은 그동안 부진한 성적과 논란 속에서도 김 감독을 감싸왔지만, 팀성적이나 팬들과의 관계 모두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모기업이 나서서라도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북의 다음 상대는 29일 열리는 강원과의 홈경기다. 8라운드까지 무승에 그친 강원은 지난 경기에서 FC서울에 극장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전북은 지난해 강원과 네 차례 격돌해 2승1무1패로 근소한 우위를 기록했으나 매경기 모두 접전에 한 골 차 승부였다. 이 경기마저 패한다면 정말로 강등권 추락이 눈앞이다. 창단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전북은 과연 이 시련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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