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몸' 흰발농게 노는 줄포만 갯벌, 물 오른 바지락 쏟아진다

백종현 2023. 4.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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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포만 갯벌 생태관찰로 아래에 하얀 조약돌처럼 좍 펼쳐져 있는 것이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흰발농게다.

바닷물이 먼바다로 빠져나가자 갯벌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 됐다. 진흙에서 고개를 내민 갯것과 그 갯것들을 잡으려는 인간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덩달아 먹잇감을 노리는 바닷새도 저공비행에 나섰다. 흰발농게와 말뚝망둥어가 뛰노는 줄포만(곰소만) 갯벌 건너편에선 노란 유채꽃이 물결쳤다. 부둣가 식당에나 어시장에나 제철 해산물이 널렸고, 바다 내음이 진했다. 바지락 캐는 어민, 천일염 거두는 소금밭 일꾼의 숙련된 몸짓도 사람을 끄는 묘한 힘이 있었다. 지난주 전북 부안에서 목격한 갯벌의 봄 풍경이다. 봄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서해안으로 가는 봄 여행은 늘 재밌다.

지난 20일 한 어린이가 부안 줄포만 갯벌생태공원 유채밭을 뛰놀고 있다. 유채밭 너머에 너른 줄포만 갯벌이 있다. 줄포만 갯벌생태공원 유채밭은 지난해 10월 첫 씨를 뿌려 올봄 첫 결실을 맺었다.

반갑다 흰발농게


바닷물이 빠져 나간 사이 농게와 말뚝망둥어가 흙장난을 치고 있다.
부안은 갯벌이다. 부안은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휘어진 활처럼 거대한 해안선(대략 178㎞)을 그리는데, 그 대부분에 넓고 진득한 갯벌이 발달했다. 변산반도 남단의 줄포만은 특히 국제 사회도 인정하는 ‘람사르 습지’다. 칠면초와 나문재·갈대 같은 염색식물을 비롯해 100종이 넘는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 보고다.

이맘때 봄날 줄포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막 먹이활동을 시작한 농게와 말뚝망둥어다. 지난 20일 오전 10시, 물때에 맞춰 줄포만을 찾았다. 농게도 말뚝망둥어도 예민하기가 보통이 아니어서, 다가갈 때 살금살금 발을 옮겨야 했다. 진흙 바닥에 구멍이 송송 뚫린 갯벌 앞에 망원렌즈를 조준해두고 잠복하길 5분. 농게와 말뚝망둥어가 하나둘 구멍 밖으로 빠져나와 흙장난을 시작했다. '갯벌의 귀한 몸'이라 들었던 흰발농게(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도 천지에 널려 있었다.

이맘때 줄포만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흰발농게. 수컷의 한쪽 집게발이 유독 크고 흰 것이 특징이다.


흰발농게는 수컷이 한쪽에 하얗고 커다란 집게발을 가진 것이 특징이었다. 제 몸통(2~3㎝)만 한 집게발을 휘두르는 것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먹왕랄프’를 같기도, 우리네 추억의 만화 ‘주먹대장’ 같기도 했다. 흰발농게가 가진 의외의 별명을 처음 들었다. ‘갯벌의 사랑꾼’이란다. 정은희 줄포만 생태문화 해설사가 “수컷은 집 입구에 흙더미를 쌓거나, 하얀 집게발을 지휘자처럼 휘젓는 행동을 자주 하는데, 다 암컷을 유혹하는 몸짓”이라고 알려줬다.

줄포만 위에 다리 형태로 놓인 관찰 생태로가 갯벌 생물을 관찰하기 좋은 명당이었다. 가만히 내려다보니 칠면초 새싹도 곳곳에 돋아 있었다. 가을 갯벌을 붉게 물들이는 칠면초의 새싹은 연한 초록빛이었다.

줄포만을 따라 난 해안길은 서해안에서도 손꼽히는 일몰 명소이자, 걷기여행길로 통한다. 지난해 개통한 서해랑길 44코스(고창 사포리~줄포만~곰소항, 14㎞)도 이 길을 지난다. 마침 해안길 옆은 지난해 10월 첫 씨를 뿌린 유채가 일제히 꽃을 피워 봄기운이 완연했다. 축구장 14개 크기에 달하는 10만㎡(약 3만 평) 면적의 들판에 노란 물결이 일고 있었다.


탱탱한 바지락 짭조름한 천일염


고사포해변 근처의 하섬은 간조 때마다 바지락 캐는 행렬이 이어진다. 밀물에 휩쓸리는 사고가 더러 있어,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부안 바다에서는 사철 해산물이 올라온다. 항구 앞 수산시장이나 식당 상차림만 봐도 계절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요즘 같은 봄철에는 주꾸미‧꽃게‧갑오징어 같은 해산물이 어디에나 깔린다.

이맘때 가장 친근한 해산물은 바지락이다. 새만금 방조제 사업 이후 종적을 감춘 백합과 달리, 바지락은 지금도 부안 갯벌 곳곳에서 고개를 내민다. 고사포 해변 앞 하섬과 모항 일대는 갯벌 체험객 사이에서도 이름난 명당이다. 간조 때 장화와 갈고리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바지락을 주워 담을 수 있다. 고사포 해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선수들은 1시간이면 10㎏도 캔다”고 말했다. 갯벌 위에서 과욕은 금물이다. 최기철 문화관광해설사는 “갯벌 체험도 좋지만, 안전사고가 잦은 만큼 밀물 시간을 반드시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34년 내력 '변산명인바지락죽'에서 맛본 각종 바지락 요리.

바지락을 맛보러 고사포 해변 앞에 있는 34년 내력의 ‘변산명인바지락죽’을 찾았다. 김선곤 사장은 “건강한 조개는 해감만 해봐도 안다”면서 “산란기 전 4~5월 채취한 바지락이 살도 탱글탱글하고 맛이 탁월하다”고 전했다. 인삼을 곁들인 바지락죽, 갖은 야채와 고춧가루 양념으로 버무린 회무침 모두 비린내 없이 감칠맛이 대단했다.

염전에서 소금이 나기 시작하는 것도 이즈음이다. 염부는 포근한 바람과 햇볕이 드는 4월이 오면 겨우내 가둬 뒀던 염전을 열어 바닷물을 대기 시작한다. 바닷물을 댄 지 열흘이면 네모반듯한 소금 결정이 맺힌다. 곰소항 인근 곰소염전에 드니 마침 채염 작업이 한창이었다. 신인철 염부는 “올봄은 비가 잦아 22일에야 첫 소금을 거뒀다”며 “좋은 소금을 만드는 건 결국 하늘의 몫”이라고 말했다. 염부의 소금 농사는 봄부터 10월까지 이어진다. 투명한 염전 위에 단단하게 핀 소금꽃도, 그 꽃을 거두는 봄날의 노동도 값진 풍경이었다.

부안 줄포만 갯벌 너머로 해가 내려앉고 있다.

부안=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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