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박서보예술상을 어찌하오리까
광주비엔날레재단(대표이사 박양우)이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처음 시상한 ‘광주비엔날레 박서보예술상’에 대해 폐지 요구 시위가 일어나는 등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다. ‘뒤늦게’라는 표현을 쓴 것은 상의 제정 사실이 이미 지난해 2월 공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현상이 가시화 혹은 체감이 되는 시점은 시차가 있을 수 있다. 논란은 ‘단색화의 거장’으로 통칭되는 원로 화가 박서보(92)로부터 기부금을 받고 그 작가의 이름을 딴 상을 제도화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문제 제기에서 시작한다. 박서보 개인 출연금으로 만든 기지재단은 시상금으로 총 100만 달러(약 13억원)를 후원한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이 기부금으로 매회 수상자에게 10만 달러(1억3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2년마다 열리는 행사이므로 20년간 운영할 수 있다. 따지면 기부 액수는 1년에 6500만원 정도다.
반대론의 논지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이런 국제적인 공적 미술 행사에 생존 작가의 이름을 딴 상을 준 전례가 국내외에 없다는 것이다. 미술평론가 A씨는 “이런 상은 공공적인 명분에 맞지 않는다. 박서보는 현재 미술시장에서 가장 핫한 작가다. 공적인 상에 작가 이름을 올려놓으면 ‘퀄리티(질)’를 공적으로 인정해주는 것과 같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광주비엔날레재단이 작명을 통해 특정 작가의 그림값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박서보라는 작가의 이미지가 광주민주화항쟁의 역사적 상처를 예술로 치유한다는 ‘정치적’ 명분으로 탄생한 광주비엔날레의 상징성에 부합하느냐는 점이다. 진보적 성향의 미술가 B씨는 “5·18민주화항쟁은 한국사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단색화가 광주 정신과 무슨 상관이 있냐. 그런 제안이 왔더라도 재단이 거절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실험미술을 했던 원로미술가 C씨는 “박서보는 전위예술가로 출발한 만큼 전위예술의 현장인 비엔날레의 성격과 맞는다”고 피력했다. 박서보가 청년 시절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반대하는 반국전 선언을 하며 당시로서는 아방가르드였던 추상화를 이끈 이력을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박서보로 대표되는 단색화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시작돼 주류 예술로 편입된 엘리트 미술로서 아방가르드 정신과는 맞지 않아 보인다.
광주비엔날레 관계자는 “미술계 ‘어르신’으로서 후배들을 후원하겠다는 뜻을 높이 샀다”고 말했다. 공립미술관 관장 D씨는 “후진을 위한다면 박서보 기지재단에서 충분히 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단색화 작가인 하종현이 개인적으로 만든 하종현미술상이 그런 예다.
순수한 기부는 없다고 프랑스 사회학자 마르셀 모스는 갈파했다. 인간은 속성상 ‘계산기’이기 때문에 모든 기부는 오염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 폴 샤르트르는 기부 행위 주체인 기부자의 이름을 뺀 익명의 기부만이 순수하다고 강조했다. 감정가 2조∼3조원의 이건희 컬렉션이 국가에 기증됐지만 유족은 어떤 조건도 달지 않았다. 새로 미술관을 짓고 그 미술관에 기증자 이건희 이름을 붙여야 된다, 말아야 된다 등의 논의는 기증 이후 세상이 떠드는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는 2010년에 시작한 ‘광주비엔날레 눈 예술상’(상금 중진 1만 달러, 신진 5000달러)을 예산 부족으로 2016년부터 시행하지 못했다. 박서보예술상은 그 후속으로 제정됐다.
나는 상의 권위는 상금 규모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받을 만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상을 받을 때 권위는 절로 생긴다. 문득 베니스비엔날레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제는 황금사자장, 은사자상 등의 이름으로 상을 준다. 놀랍게도 상금은 없다. 한국인으로서는 임흥순씨가 2015년에 최초로 은사자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상의 권위를 의심하지 않는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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