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3법·다주택자 규제’가 되레 전세사기 부메랑으로

이의재 2023. 4. 27. 04: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 경제]
文정부, 임대차법 후 전셋값 27% ↑
20대, 대출규모 28조로 8배 커져
尹정부도 늑장대처 비판 못면해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68개 단체로 구성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피해자와 소통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법안이 될 수 있다”면서 보증금 반환 채권을 정부에서 매입하는 방안을 법안에 담을 것을 요구했다. 서영희 기자


인천 미추홀구뿐 아니라 전국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전세사기 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은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난해부터였다. 그러나 사기 피해의 씨앗은 문재인정부 때 이미 잉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차인 보호와 다주택자 규제에 초점을 맞췄던 부동산 정책이 오히려 ‘악성 임대인’을 늘리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는 지적이다.

미추홀구 전세사기를 주도한 남모(61)씨 등 악성 임대인들은 ‘갭 투자’로 수천 가구의 빌라를 보유해 ‘빌라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들이 주택을 대량으로 매입한 시기는 대개 2021년 전후였다. 당시 시행된 부동산 정책이 결과적으로 전세사기 범죄자들의 활동 폭을 넓히는 배경으로 작용한 셈이다.

다주택자 규제·임차인 보호의 역설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 기조는 임차인 권리 증진과 다주택자 규제를 앞세운 ‘주택 공공성 확대’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정책은 전셋값을 끌어올리고 악성 임대인을 탄생시켰다. 전세사기의 토양으로 지목된 대표적 정책은 2020년 7월 시행된 임대차 3법이다. 이 법은 본래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해 전세 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2년+2년)으로 늘리고 인상률에 상한을 둬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하지만 4년간 전셋값을 올리지 못하게 된 집주인들은 신규 계약 때부터 금액을 일찌감치 올려 부르며 정부의 기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는 전셋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출범 때인 2017년 5월부터 임대차 3법 시행 직전인 2020년 7월까지 전국 전셋값은 평균 10.5% 올랐다. 반면 임대차 3법 시행 이후인 2020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의 전국 전셋값 상승률은 27.3%에 달했다.


불어나는 전세 자금 대출을 ‘서민 주거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내버려 둔 점도 전세사기 위험을 키웠다. 폭등한 전셋값을 마련하기 어려운 서민·청년층은 전세 대출로 몰려들었다. 2017년 말 48조6000억원 규모였던 전세 자금 대출 잔액은 지난해 7월 170조2000억원까지 늘었다. 특히 20대의 대출 규모는 3조6000억원에서 28조1000억원으로 8배 가까이 급증했다. 정부가 보증금 사기 피해를 방지하겠다며 추진한 보증보험 확대 조치는 오히려 대출을 낀 전세 계약을 부추겨 ‘전세 거품’을 심화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깡통 전세’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셈이다.

각종 다주택자 규제와 임대사업자 정책 세제 혜택 폐지는 임대 시장에서 투기꾼들이 차지하는 지분을 되레 늘리는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각종 규제에 부담을 느낀 다주택자와 정상적인 임대사업자들이 시장을 이탈했고, 대신 극단적 레버리지 등의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수천 가구를 매입한 ‘부실 사업자’들이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악성 임대사업자가 다수가 된 임대시장에서 세입자들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26일 “임대사업자가 안정적인 자산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전세사기와 깡통 전세 문제를 초래하는 최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현 정부도 사태 확산 방지엔 실패

정부와 여당은 이 같은 문제 인식에 근거해 전세사기 확산 책임을 전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도 사태 확산을 막거나 제때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윤석열정부는 지난 2월 임차인이 임대인의 세금 체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보증보험 가입 시의 전세가율 기준을 90%로 하향하는 등의 전세사기 방지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지엽적인 해결에 그쳤을 뿐 근본적인 방지 대책은 아니었다.

정부는 막상 정책 지원이 시급했던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해선 ‘늑장 대처’를 반복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가 처음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지난 2월이었다. 피해자들은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실효성 있는 정부의 대응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긴급주거지원과 저금리 대출 대책이 발표됐지만 피해자들이 이용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아 이용률이 저조했다. 정부는 극단적 선택이 잇따른 뒤에야 태도를 바꿔 경·공매 유예 등 본격적인 피해 구제에 나섰다. 이조차도 보증금 선보상 여부를 두고 피해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당정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전세사기 특별법과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 지원 범부처 태스크포스(TF)는 27일 전세사기 특별법을 발표할 예정이다. 수천 가구 규모의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미추홀구에서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진 뒤에야 서둘러 입법에 나선 모습이다. 다만 특별법 내용은 미추홀구 등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에 집중돼 근본적인 전세사기 방지책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피해 방지를 위해 전세 자금 대출의 보증 비율을 낮추고 대출을 억제하는 등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문도 연세대 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빌라의 경매 낙찰가율이 70% 수준인데 매매가격의 90%, 100% 수준까지 보증을 해주면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으로는 전세 대출을 폐지하는 것이 답”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임차인이 제대로 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양측의 정보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