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정부는 2006년부터 지난 15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28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아동수당 지급, 무상보육과 교육 확대, 신혼부부 주거지원 등에 쏟아부으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0.78명까지 하락했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2019년부터 국내총생산(GDP)의 4.7% 수준인 100조원 규모의 재정을 매년 투입해 2011년에 1.23명까지 하락했던 출산율을 2021년에 1.59명까지 끌어올린 헝가리의 예를 들며 더욱 공격적인 재정 투입을 주문하고 있다. 헝가리는 2030년까지 출산율을 2.1명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와 함께 자녀의 수에 따라 최대 4000만원 부채 탕감, 평생 소득세 면제, 자동차 구입비용 지원 등 파격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해 다시 출산율 하락을 경험한다. 높은 수준의 주거와 보육 복지를 제공하는 싱가포르의 출산율도 2022년 기준 1.05명 수준이다. 과연 출산지원금과 아동수당을 과감하게 올리고 신혼부부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면 출산율이 회복될까.
대부분 OECD 국가들이 파격적인 정책과 함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 2.1명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구학자들은 한 국가의 인구 감소가 시작되면 정부가 이를 되돌리기 위한 효과적인 정책을 내놓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이유는 출산율과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인자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결혼과 출산이 분리된 개념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결혼과 출산 간 상관관계는 명확하다. 지난 10년간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의미하는 ‘초혼인율’과 한 여성이 가임 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의 감소 비율 또한 비슷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출산 장려 정책은 출산과 보육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출산 장려 정책이 출산율의 반등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다. 40세 이하 기혼여성의 출산율을 일컫는 ‘결혼 대비 출산 비율’이 2022년 기준 1.30명임을 고려하면 합계출산율의 하락폭을 줄이기 위해선 혼인율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결혼 대비 출산율도 합계출산율과 비슷한 속도로 하락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결혼 기피 현상을 분석한 대부분의 보고서는 30대 남성의 소득분위가 높을수록 혼인율이 높게 나타나는 통계를 근거로 낮은 소득, 고용 불안정성, 높은 주거비용 등을 결혼 기피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리고 저소득층에 대한 결혼자금 지원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30대 남성의 학력이 높을수록 결혼율이 낮게 나타나는 통계와 U자형 곡선을 그리는 30대 여성의 소득분위별 혼인율을 살펴보면 경제적 관점만으로 결혼 기피 현상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무리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결혼 기피 현상의 또 다른 주요 원인으로는 전통적인 성별 분업 체계가 무너진 이후 성역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심지어 여성에 대한 사회의 구조적 차별과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사회의 화두가 되면서 ‘이대남’ ‘이대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남녀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성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며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이 아닌 경쟁해서 이겨내야 하는 대상, 심지어 혐오의 대상이 돼버렸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앞서 인구 감소를 경험한 서구 선진국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60%에 도달하면서 성별 갈등도 완화되고 혼인율과 출산율도 반등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으로 54.6%에 머물러 있는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이 60%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관련 제도의 개선과 사회 구성원의 인식 변화를 통해 성역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한 출산율 하락으로 사회의 생산성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사회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고령인구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논의돼야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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