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방패 거머쥔다…한·미정상 워싱턴 선언, 나토급 핵협의체 창설

박현영, 권호, 박현주 2023. 4. 27.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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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구체적 확장억제 명문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Washington Declaration)을 채택했다. 북한의 직접적인 핵 공격 위협으로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이 높아지자 미 측이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확장억제 방안을 문서화한 것이다.

양 정상은 ▶한·미 간 확장억제 협의체인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NCG) 신규 창설 ▶핵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nuclear ballistic missile submarine·SSBN) 등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정례 전개(regular deployment) ▶미국의 핵자산 관련 정보 공유 확대 등에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올해는 두 나라의 동맹 70주년을 맞이 하는 해다. 한·미는 용기와 희생의 토대 위에 세워진 끊어질 수 없는 관계다. 자유수호를 위해 함께 싸운 미군과 한국군 장병의 피로 맺은 거룩한 동맹”이라고 말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자유를 위한 투쟁의 결과 탄생한 혈맹이다.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거래 관계가 아니며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가치동맹”이라고 화답했다.

확장억제는 동맹국이 적대국의 핵 공격 위협을 받을 경우 미국이 핵우산, 미사일방어체계, 재래식 무기를 동원해 미 본토와 같은 수준의 억제력을 제공한다는 개념이다. 우선 NCG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NPG(Nuclear Planning Group·핵계획그룹)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나토 이상의 강력한 대응”을 언급했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한·미는 나토처럼 한국 땅에 핵무기를 갖다 놓진 않지만, 협의의 깊이와 폭은 훨씬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설되는 NCG를 통해 지난해 11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합의한 확장억제의 ▶정보 공유 ▶협의 절차 ▶공동 기획 ▶공동 실행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주요 위기 상황 때 우리가 어떻게 (핵 자산 운용 관련) 기획을 하는지 한국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많은 면에서 냉전시대 잠재적인 외부 위협이 있었을 때 미국이 유럽의 동맹에 제공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고위 관계자는 NCG는 나토식 핵공유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나토는 전방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갖고 있지만 한반도에는 없고, 앞으로도 계획에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다. 또 한국이 미국의 핵무기 사용 결정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전략폭격기·항모에 핵잠 더한다…핵우산서 핵방패 진화

또 다른 확장억제 강화 방안으로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1980년대 초 이후 없었던 미국의 핵탄도미사일 잠수함의 한국 방문을 포함한 전략자산의 정례적인 전개(regular deployment)를 통해 우리의 확장억제를 보다 가시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핵미사일을 실은 미 오하이오급 잠수함이 한반도에 정기적으로 전개된다면 대북 억제력의 획기적인 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박근혜 정부 이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에 전략자산의 상시·순환 배치 또는 전개를 요구해 왔으나 미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고, 과도한 비용이 추가로 소요된다는 점 등 때문이었다. 대신 한·미는 한 단계 낮은 정례 배치에 합의했는데 이번엔 확장억제 강화 측면에서 핵잠수함을 추가한 전략자산을 더 자주 전개하겠다는 의미로 일단 해석된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한반도에 핵잠수함, 전략폭격기, 항공모함을 정기적으로 전개하겠다”면서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상시 주둔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핵무기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백악관은 “미 전략자산의 구체적인 움직임을 포함해 정보 공유의 폭을 넓히고, 미국의 핵 기획에 있어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효과적으로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소식통은 “워싱턴 선언은 한국의 3축 체계 자산을 미국의 확장억제 자산으로 통합해 억제력을 높이는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의 조건은 워싱턴 선언에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를 준수해 비핵국(非核國) 지위를 유지한다는 약속을 담는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을 핵방패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대신 윤 대통령이 연초에 직접 언급하기도 했던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 가능성은 사실상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이 NPT 모범 국가로서 한국의 면모를 자꾸 부각하는 건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이 더 이상 점증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는 사이버 안보 협력 강화 방안도 깊이 있게 논의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미국이 주도하고 나토 다수 회원국, 일본, 호주 등이 참여한 ‘인터넷의 미래를 위한 선언’에 참여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왔다.

한편 외교가에선 백악관이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이날 브리핑을 열어 주요 합의 내용을 사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국 측과의 사전 협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우리 측도 뒤늦게 “내일(26일) 정상회담에서 강화된 확장억제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라고 브리핑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백악관이 사전에 ‘워싱턴 선언’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 국내의 핵무장 여론을 달래기 위한 의도라는 평가와 함께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언론에 확장억제 강화 방안과 관련한 기사가 연일 나오는 것에 미 측이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권호 기자,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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