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봉호 (8) 주일성수 하려고 입학 신체검사 거부했더니…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경주교회가 속했던 고신파 교단은 계명 엄수에 철저했다.
경주중학교를 마치고 경주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입학시험을 쳤는데 신체검사가 하필 주일에 잡혔다.
나와 경주교회 소속 서너 명 수험생은 4계명을 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신체검사에 불응했다.
신체검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경주교회 출신 수험생은 모두 낙제한 것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계명 어길 수 없다고 판단 후 불응
성적은 2등인데 신앙문제로 떨어지자
학교 배려로 재검사 기회 얻어 구제
경주교회가 속했던 고신파 교단은 계명 엄수에 철저했다. 내 신앙은 아직 설익었으나, 그래도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월요일에 시험이 있어도 주일에는 절대로 공부하지 않았고 교련시간에 ‘국기에 대하여 받들어 총’ 구령이 내려도 나는 ‘쉬어 총’ 자세로 서 있었다. 키가 작은 덕에 뒤쪽에 서 있다 보니 한 번도 들키지는 않았다.
경주중학교를 마치고 경주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입학시험을 쳤는데 신체검사가 하필 주일에 잡혔다. 나와 경주교회 소속 서너 명 수험생은 4계명을 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신체검사에 불응했다. 합격자 발표 며칠 전에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부르셔서 갔더니 “야 임마, 니 떨어졌다”고 하시며 화를 벌컥 내셨다. 신체검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경주교회 출신 수험생은 모두 낙제한 것이다.
부모들이 경주교회에 출석한 친구들과는 달리 나의 부모님은 교회나 기독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유교 신자라 주일성수 때문에 고등학교 입시에 낙방한 것을 용서하실 리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그 때문에 걱정한 기억이 별로 없다. 막연하게나마 하나님께서 잘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경주고등학교에서는 우리 때문에 교무회의가 따로 열렸다고 한다. 신앙문제로 신체검사에 불응했다고 해서 전체에서 2등 한 녀석을 낙제시킬 수 있느냐는 문제를 두고 논의했다고 한다. 그 결과 얄밉지만 ‘그놈’들에게 다시 한번 신체검사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입학시험 성적이 전체에서 2등이었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경주교회 출신 수험생들이 모두 구제를 받은 셈이다.
비슷한 상황이 대학입학 시험에서도 벌어졌다. 1957년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은 월요일에 치러졌는데 수험번호가 적힌 수험표는 그 전날 주일에 배부됐다. 나는 역시 받으러 가지 않았다. 시험 당일 아침 일찍 입학 관계 사무실에 가서 수험표를 달라 했더니 수험표가 들어 있는 서랍 열쇠를 가진 직원이 시험문제 수송차 외출 중이라 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면서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시험 시작하기 한 시간 전쯤 담당 직원이 도착했다. 수험표도 받으러 오지 않는 놈이 무슨 시험이냐고 호통을 쳤지만 그래도 번호표는 주었다. 마치 합격한 것 같이 긴장이 풀려서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에 응했고 그 덕인지 무사히 합격했다. 합격자 발표도 주일에 이뤄져서 보러 가지 않았다.
찬송가 542장(통합 340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가사를 보면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는 구절이 있다. 찬송가 가사처럼 내가 마주한 여러 사건이 나의 믿음을 받쳐주는 좋은 ‘증거’가 됐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98세에 첫 작품전 ‘자연의 풍경’ 열고 있는 정옥희 권사… ‘한국판 모지스’ 할머니, 교회 세
- 손 내미는 ‘동병상련 교회’… 산불 피해 강릉에 단비 - 더미션
- ‘1시간 쪽잠, 연습만 한달’ 필리핀소녀 감동시킨 K-장로님이 그린 벽화 - 더미션
- 신천지, 몽골 정부·신학교까지 마수 뻗쳐… 작년 3000명 덫에 - 더미션
- 개종 땐 사형… 목회자 손발 절단… 수단 ‘수난의 크리스천’ - 더미션
- 독재 정권서 꿈꾼 영혼구원 사역… 43년 만에 이뤘다 - 더미션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
- “태아 살리는 일은 모두의 몫, 생명 존중 문화부터”
- ‘2024 설 가정예배’ 키워드는 ‘믿음의 가정과 감사’
- 내년 의대 정원 2천명 늘린다…27년 만에 이뤄진 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