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블루 시그널] 부끄러움을 아는 미덕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국인이 가장 애송하는 시 중 하나인 윤동주의 ‘서시(序詩)’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서시’를 안다. 시를 공부하든 공부하지 않든, 문학에 관심이 있든 없든 윤동주의 ‘서시’는 대부분 안다. 그만큼 ‘서시’는 인간의 밑바닥에 깔린 사랑 진실 부끄러움의 서정을 담고 있다.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의 삶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다.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의 청년 지식인으로서 스스로가 부끄러운 것이다. 자신의 이상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비극적 현실은 자그만 바람에도 흔들리는 잎새 같은 유약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그 부끄러운 마음을 가슴에 담고 별을 노래하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며 고백한다. 죽어가는 민족, 죽어가는 백성, 죽어가는 조국의 하늘과 바람과 별을 끌어안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는 것이다. 그 길만이 자신의 부끄러운 마음을 지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의 세계를 괴로운 현실과 시련이 차갑게 스치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청년 윤동주는 조국의 밤하늘이 얼마나 아팠을까. 아니, 하늘마저 빼앗긴 조국의 현실이 얼마나 가슴 저리고 부끄러웠을까. 그래서 밤마다 잠 못 들며 괴로워한다. 창문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도, 잎새의 작은 흔들림에도, 자신의 잘못인 양 자책하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하기에 더욱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요즘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힘들고 고통받는다. 온갖 거짓말을 지어내고 악한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 그것도 종교나 신앙의 이름을 팔면서 말이다. 자신의 말과 행위로 인해 온갖 사회적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걸 알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계속해서 악한 말과 위선적 행동을 반복한다. 아니, 오히려 더 뻔뻔하게 악한 언행을 일삼으며 사회적 분란을 일으킨다.
오죽하면 넷플릭스에서 JMS를 비롯해 이단 사이비 교주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겠는가. 그럼에도 이단 교주들이나 거기에 상응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오히려 더 위선적 민낯을 내밀며 온갖 거짓과 악행의 말을 쏟아낸다. 그러면 그럴수록 고통받는 것은 선량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며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썼다. 부끄러움은 통증이다. 마음의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일말의 양심이라도 살아있다는 증거다. 부끄러움은 우리의 피폐한 마음과 사회를 정화하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를 더 오염시키고 난폭하게 만든다.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워하는가. 윤동주의 서시가 우리 마음을, 아니 나의 마음을 때린다. 윤동주가 지녔던 부끄러움의 미덕이 우리 사회를 정화하고 빛나게 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나는 ‘서시, 이후’라는 시를 썼다.
“윤동주 이후/ 우리 모두는 가슴에 시 한 편 가졌다/ 아무리 시에 관심 없고/ 문학에 문외한인 사람일지라도…/ 어머니의 손수건 같은 시 한 편 가졌다/ 우리의 지저분한 마음을/ 가혹한 상처를/ 씻을 수 없는 후회를/ 위로하고 닦아주는 시 한 편 가졌다/ 서시는 지금도/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우리 가슴 속 별이 되어/ 바람에 스치운다.”
(새에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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