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63세 성도 부대가 그린 벽화, 필리핀 보호소 소녀들 감동시켰다
한국인에게 골프 여행지로 유명한 필리핀 클라크. 골프장 인근 지역에선 한국말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지난 24일 (현지 시간) 클라크 공항에서 차로 2시간 떨어진 시골 마을 팔라얀에서도 한국말이 들려왔다. 골프장이 아닌 이곳은 필리핀 가정폭력 피해 소녀들을 위한 보호소 ‘홈포걸스’. 한국인들이 이곳 보호소의 벽면에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1m 50㎝ 높이의 긴 철제 작업대에 올라 페인트칠을 하던 여성은 벽면을 기어오르는 몸짓을 하며 “나 다람쥐 같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벽면 아랫부분을 색칠하던 한 남성은 성격유형검사(MBTI)를 소재로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우리 목사님은 극J예요. 매사가 너무 계획적이거든요”라고 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이들이 “딱 맞네”라고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모습만 보면 20대 30대 같지만 이들은 평균 나이 63세인 장로와 권사들로 대구제일감리교회(오성섭 목사) 단기선교팀이다. “다들 너무 젊어 보이세요”라고 하자 진동휘 장로는 “내 나이 55세, 여기에서 막내”라며 손사래를 쳤다.
대구제일감리교회 선교팀은 홈포걸스와 인근 소년 보호소 ‘링압센터’에 있는 교회 봉헌을 위해 23~28일 일정으로 이곳을 방문했다. 같은 날 링압센터에서도 벽화 작업이 진행됐다. 김명선 김명애 사모, 박덕상 이동하 봉명훈 장영진 홍제호 고인경 진동휘 장로, 조귀호 김명희 김영옥 남성숙 조위자 지영애 권사, 장예원 홍연정 집사 등이 일정을 함께했다.
홈포걸스와 링압센터는 필리핀 정부가 관리 감독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이곳에 교회 ‘사랑워십센터’가 세워졌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봉헌예배가 늦어져 이번에 진행됐다. 링압센터에선 25일, 홈포걸스에선 27일 예배를 드린다.
현지에서 사역 중인 김현태 선교사는 “정부 복지시설 내에 교회가 설립됐다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라며 “대구제일감리교회가 장애인 복지시설 ‘아모르빌리지’에도 교회를 세웠는데 정부 시설 처음으로 교회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선교팀 평균나이가 63세인 것은 봉헌 예배와 링압센터의 35주년 기념식 날짜를 맞추기 위해 방문 일정을 당겼기 때문이다. 보통 학생들 방학 시기에 맞춰 젊은이들과 함께 오지만 봉헌 예배에 앞서 썰렁한 건물 외벽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현지에서 요청했다.
벽화는커녕 그림도 제대로 그려본 적 없는 선교팀은 한국에서 한 달 전부터 준비했다. 대구제일감리교회 공터에 임시 벽을 설치했고 주말마다 모여 페인트를 섞고 밑그림을 그렸으며 색칠을 했다. 오성섭 목사는 “처음에 비전문가인 성도들이 벽화를 그린다고 하니까 페인트 가게 사장이 불가능하다고 만류하더라”면서 “원하는 색을 만들기 위해 스포이트로 페인트 1㎖씩 섞어가며 실습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열정은 신체 나이를 뛰어넘었다. 새벽 비행기로 현지에 도착한 시간은 24일 새벽 2시였다. 이들은 동이 틀 때까지 기본색 페인트를 섞어 필요한 색을 만들고 한 두 시간 쪽잠을 잤다. 이후 오전 7시 30분 예배를 드리고 차로 2시간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온종일 작업에 매달렸다.
벽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에밀리따 홈포걸스 원장은 “그림도 그림이지만 고온다습한 날씨에 지치지도 않고 일하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했다. 홈포걸스에서 생활하는 10대 로즈양은 “어린이를 등에 업은 예수님 그림을 보면서 내가 저 어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평소 느껴보지 못한 사랑을 이 그림에서 발견했다”고 감격했다.
채리토 링압센터 원장은 “몸과 마음의 상처가 있는 친구들이 한국교회 덕분에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돼 기쁘다”고 했다.
대구제일감리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직접 가는 선교든 보내는 선교든 누구든지 하나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선교 현장도 자주 찾는다. 이때는 나름의 원칙도 있다. 단기 선교팀의 성과가 아니라 현지 선교사의 장기 사역 전략을 우선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2015년 필리핀 타를라크에 롬보이교회를 봉헌했으며 장애인시설인 아모르빌리지의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양어장, 양계장, 돼지 축사를 만들어줬다. 로웨나 아모르빌리지 원장은 “한국교회의 세심한 사역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커가고 있다”며 “정말 감사하고,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팔라얀·타를라크(필리핀) 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신천지, 몽골 정부·신학교까지 마수 뻗쳐… 작년 3000명 덫에 - 더미션
- 개종 땐 사형… 목회자 손발 절단… 수단 ‘수난의 크리스천’ - 더미션
- 독재 정권서 꿈꾼 영혼구원 사역… 43년 만에 이뤘다 - 더미션
- [박종순 목사의 신앙상담] 목회 중 설교가 가장 힘든데 챗GPT의 것으로 해도 되나 - 더미션
- 목회자가 요리하는 ‘3000원 식당’… 삶 포기하려던 20대에 희망 - 더미션
- 신학공부, ‘랜선 학교’에 접속하세요 - 더미션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
- “태아 살리는 일은 모두의 몫, 생명 존중 문화부터”
- ‘2024 설 가정예배’ 키워드는 ‘믿음의 가정과 감사’
- 내년 의대 정원 2천명 늘린다…27년 만에 이뤄진 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