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철학자의 도시, 아니면
√2. 무리수(無理數)다. 수학 교과서의 정의로는 두 개의 정수비로 표현되지 않는 숫자다. 이건 ‘irrational number’를 옮긴 단어다. 그런데 번역이 문제였다. 여기 들어가 있는 것이 비율(ratio)인지 이성(ration)인지 헛갈린 것이다. 풀어쓰면 1.4142...이니 일관성도 끝도 없어 과연 이성(理性)이 없는 미친 수인 듯도 하다. 그러나 무비수(無比數) 정도로 번역하는 게 옳았겠다. 세상에는 유리수만 존재한다고 믿던 피타고라스에게도 직각삼각형 빗변의 저 숫자는 어쩌면 미친 숫자였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신이 실수했거나.
다음 단어는 ‘philosophos’다. 역시 피타고라스의 조어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지혜의 탐구자다. 나중에 본인이 철학자로 알려지는 니시 아마네가 일본 메이지 시대에 ‘philosophy’를 철학(哲學)으로 번역했다. 지금은 대학교의 전공으로 좁혀져 있으나 원래는 세상의 원리와 이치를 탐구하는 모든 학문을 지칭했다. 그래서 지금도 전공과 무관하게 박사학위명은 ‘Doctor of Philosophy’다. 뉴턴의 탐구도 과학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는 자연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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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 도시론, 지혜의 지도자 강조
서울시가 제시한 새로운 건설사업
시민보다 관광객을 염두에 둔 계획
한국 도시 관광자원은 안전과 평화
」
플라톤이 보기에 이상적 도시를 위해 필요한 지도자가 지혜의 탐구자(philosophos)였다. 그런데 철학이라는 단어의 지칭 대상이 변화하면서 이 지도자도 엉뚱하게 철학자, 즉 철학 전공 학자로 오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덩달아 플라톤까지 실없는 고대의 철학자로 인식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역의 문제를 걷어내면 플라톤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의 지도자는 지혜로운 자, 혹은 지혜의 탐구자여야 한다.
질문은 우리 시대로 향한다. 서울에 신기한 건설사업 계획들이 발표되었다. 첫 번째 사업은 반지 모양 대관람차 조성이었다. 유행의 발단은 런던아이였다. 런던의 꼬마가 아니고 눈의 의미인 대관람차다. 이게 요즘 표현으로 대박을 쳤다. 관광객이 장사진을 치며 빅벤을 물리치고 런던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그래서 지구촌 곳곳에 대관람차 열풍이 불었다. 서울도 대관람차 계획으로 촌스런 지구촌 대열 합류를 선언했다.
건설사업 개시 홍보를 위해서는 그림이 필요하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내건 그림은 같은 난지도의 20여 년 전 ‘천년의 문’ 사업 당선작의 짝퉁이었다. 사실 대관람차는 구조적 요구 조건이 달라서 ‘천년의 문’과 모양이 같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런 조건 다 무시하고 굳이 ‘천년의 문’을 베낀 건 구조적 지식은 물론이고 책임의식도 저작권의식도 없다는 증언이다. 아니면 이성이 없든지.
서울시는 이번에는 노들섬에 뭔가를 하겠다고 건축가들을 초대한 그림을 발표했다. 이전에 예술섬을 짓겠다던 그 땅이다. 예술섬 조성의 목적은 예술 육성이 아니라 한강변 피사체 조성을 통한 관광산업 육성이었다. 어찌 되었건 들어갈 기능이 다중집회시설이니 이게 성립하려면 대중교통이 문제였다. 그래서 교통시설 조성비, 유지비 포함 1조 원에 이르는 예산이 추정되어 의회 반대로 무산되었던 사업이다.
그런데 이번 사업의 목표도 또 관광자원 조성이라고 한다. 뭐로 쓸지는 알 수 없으나 화끈한 무언가를 제시하라고 건축가들을 지정해서 요구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결국 어떤 그림들이 등장했느냐는 것이 아니다. 이 사업 시작의 철학이 무어냐는 것이다. 그 대답의 순간 이 사업이 지혜(sophos)의 소산인지 판단할 수 있다. 아니면 무지(moros)의 결과인지.
노들섬은 섬답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런 비일상이 대도시 한복판 이 섬의 진정한 가치다. 여기 다중 이용시설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공간을 만들겠다면 가치는 한계로 바뀐다. 그 한계를 극복하려면 세금 계속 부어야 한다. 그래서 얻으려는 것이 볼거리라면 도시는 동물원에 가까워지고 시민들은 행인들일 뿐이다. 관광객 유치가 사업목적이라면 앞으로 시장은 관광객 투표로 선출해야 한다. 우리의 도시에는 이런 무리수 말고도 이성적으로 풀어야 할 기후변화·교통체증·주거부족의 문제가 끝이 없다.
비워두는 것도 지혜다. 간신히 보존해온 빈 공간을 기어이 채워 넣겠다는 건 욕망이다. 이 도시에는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도 남겨두어야 한다. 시민 혈세로 런던아이·에펠탑·시드니오페라하우스를 흉내 낼 필요가 없다. 석유 한계를 맞은 중동의 졸부도시를 우리가 따라가고 경쟁해야 할 이유도 없다. 지구촌이 코리아를 주목하는 시대다. 그런데 외국에서 본 것 흉내 내고 굳이 저명한 외국인 건축가들 모셔와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건 국제화가 아니고 시대 오독이고 납세자 모독이다. 한국의 관광 자산은 대관람차가 아니고 한밤중 배회가 가능한 거리와 노트북 놓고 다녀도 좋은 카페다.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시민들의 진심 어린 환대다. 그런 시민들이 선출한 그는 지혜의 탐구자인가, 아니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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