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세 사기, 공공임대 아닌 민간임대로 풀자

2023. 4. 27.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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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전세 사기를 당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젊은이들이 늘자 정부·여당이 피해를 본 임차인에게 ‘우선 매수권’과 이를 대신할 수 있는 ‘LH 매입임대주택 제공’을 선택지로 담은 합의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야당의 ‘전세 피해 우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 대안과 충돌했다. 결국 전세 사기 대책과 관련된 정부 역할의 범위를 놓고 논란을 빚으면서 국회는 ‘전세 사기 특별법’ 처리를 다음 달로 연기했다.

한국의 독특한 전세 제도는 20여 년 연구한 필자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연구 주제다. 특히 임차인으로부터 조달된 대출금, 즉 전세금을 활용하는 이 제도가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이해 부족으로 지난 여러 정부는 저리 전세대출 확대, 임대차 2법, 안이한 보증금반환보증 등 정책의 악수가 누적됐고, 그 결과 전셋값이 급등했다. 그 이후 금리 급등으로 매매가 및 전셋값이 동반 급락하자 역전세난과 ‘깡통 전세’의 연장선상에서 전세 사기라는 극단적 상황이 초래됐다.

「 여당 대책도 야당안도 한계 많아
임대인 유동성 위기로 인식 필요
신·구 임차인 연결고리 되살려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전세 사기 문제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이고 이해도 부족한 듯하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차후 손실을 회복하겠다는 야당의 주장이나, 사적인 거래에서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책임지는 선례를 만들 수 없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은 각각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전세가 오랜 기간 존속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만기(전세계약 만료) 시점에 상환해야 할 부채인 전세금을 임대인 자신이 아니라 새로 입주하는 임차인이 마련한다는 점이다. 임대인 입장에선 원금 상환에 대한 부담을 거의 무시할 수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세 사기 문제는 임대인의 신용도 상실로 전세금의 전달 고리가 끊긴 단기적인 유동성 위기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해법은 전세제도 유지의 근본 조건인 기존 임차인과 신규 임차인 사이의 전세금 전달이라는 연결고리를 되살리는 것이다. 이는 전세 사기가 발생한 주택들이 좋은 입지에서 임대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공공의 개입을 통해 임대인의 신용을 복구함으로써 그런 신·구 임차인 사이 연결고리를 되살리는 것이 시급하다. 이렇게 해야 갑작스러운 부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전세 사기 임차인이 뜬금없이 떠안아야 하는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된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경매 사례를 보면 평균적으로 2억5000만원 정도의 감정가에 금융기관 대출 원금은 1억 1500만원, 보증금은 8100만원 정도다. 이를 토대로 개략적으로 계산해보면 전세 사기를 당한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을 사용해 최종낙찰가율 60%로 매입한 뒤 차후 감정가의 80%로만 매각할 수 있어도 보증금 손실을 복구할 수 있다. 임대가치가 평균보다 낮아 열악한 물건도 공공이 우선매수권을 대리 사용한 뒤 장래 시세 수준의 매각이 가능하다면 공공이 손실을 크게 떠안을 필요가 없다. 다만 해당 주택이 전세 시세대로 임대가 정상화하고, 매각이 적절한 시점에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시세의 50% 이하 저렴한 임대료로 운영하는 매입임대 방안은 부채 구조가 심각한 물건에는 유효하다. 나머지는 정상적인 민간임대주택으로 운영해야 퇴거하는 전세 사기 임차 가구에 시세 수준의 전세금을 전달해줄 수 있다. 그래야 주거 빈곤층이 아닌 해당 임차 가구들이 민간임대주택시장에서 새집을 찾아 생존할 길이 열린다. 다만 전세 사기 당한 임차인은 전세권이나 우선변제권 행사를 포기하고, 현시세 수준을 반영하는 하향 조정된 전세가 수준의 재계약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부채의 합리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입임대 자금을 활용한 LH의 중간매개 역할이 필요하지만, 이후 임대주택의 운영은 적절한 매각 과정을 거쳐 신뢰성이 보장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사업자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게 재조성된 매입임대 자금은 주거 빈곤층을 위한 용도로 다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세 사기로 촉발된 지금의 시장 상황은 신용경색이라는 단기적인 유동성 문제다. 그런 시장에서 정부는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험을 먼저 짊어짐으로써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시장을 정상화하려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정부의 역할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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