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법과 삶] 정신질환자를 위한 변론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여성혐오 정신질환자인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했다. 경남 진주에서는 조현병 환자 안인득이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른 후 대피하려는 이웃 주민들이 나올 때마다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살해하고 13명에게 중상해를 입혔다. 심지어 모 대학병원에서 양극성 정동장애(조울병) 환자가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를 살해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잇따르자 국회는 경찰 단독 판단으로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이른바 ‘안인득 방지법’을 발의했다.
■
「 인구 4분의 1이 정신질환 경험
치료 접근성 높여야 악화 방지
격리보다 사회적 포용이 효과
」
미국에서는 강력 범죄자들이 사형선고를 피하기 위해 사회적 요인 때문에 정신질환을 얻었다며 면책을 주장하는 사건이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강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애꿎은 정신질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 비난을 쏟아붓곤 한다. 대검찰청 범죄백서에 의하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비질환자의 14분의 1도 안 된다.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심신미약의 정신질환자가 사람을 고의로 해칠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2021년 보건복지부는 우리 국민 중 조현병, 우울증, 의처증, 분노조절 장애, 알코올중독, 니코틴중독증 등 정신질환 유병률이 남자 32.7%, 여자 22.9%라고 발표했다. 4명 중 1명 이상은 평생 한 번은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셈이다. 우리 속담에 병은 소문을 내야 낫는다는데, 유독 정신질환은 숨긴다.
정신의학과를 정신건강의학과로 바꾼 이유 중 하나가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거리낌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형무소를 교도소로 이름 바꾼 계기는 범죄자를 응징하기보다 교도·교화하는 것이 재범 방지와 재사회화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였다.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자 역시 폐쇄 병동에 장기 입원시켜 사회와 격리하는 것보다 적극적 재활치료로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정신질환자는 치료의 대상이지 비난의 대상이 아님에도 혐오감이 줄지 않고 있다. 비난할수록 치료를 기피하게 되고, 그 사이 정신질환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자율기능이 상실된 상태에서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생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신질환자들이 감기 환자처럼 편견 없이 언제 어디서나 치료받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신질환자의 평균 입원 기간은 247일로 OECD 평균 27.5일보다 9배나 길다. 국회는 장기입원에 따른 정신질환자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2016년 정신보건법을 정신건강증진법으로 개정하면서 강제입원요건을 강화하고 퇴원과 사회복귀치료를 유도했으나 실패했다. 개정법을 운용하자 ‘강제 입원’에서 ‘동의 입원’으로 형식만 바꾸어 입원환자 수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장기집단수용이 정부 입장에서는 행정 효율을 높이고, 공급자 입장에서는 진료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법률로 장기입원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정신질환자 입원일이 세계 최고인데 자살비율도 세계 최고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10만명 24.6명으로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정작 치료받아야 할 정신질환자는 치료조차 받지 않고 있고, 퇴원이 가능한 환자는 장기입원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들이 사회적 편견 없이 편하게 치료받음으로써 자살률과 강력범죄율 낮추기 위해서는 의료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7.2%로, 미국(43.1%), 캐나다(46.5%)보다 크게 낮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외의 소아청소년과·내과·외과 등 다른 임상 진료과에서도 적극적으로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여야 한다. 또 의료법·학교보건법·산업안전보건법·지역보건법·국민건강보험법·의료급여법 등을 개정해 학교·산업장·보건소에서 근무하는 정신건강전문간호사나 임상심리치료사에 의한 심리상담치료를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 입원 중심으로 설계된 정신건강증진법을 개정해 장기입원 시 불이익을 주고, 낮병동·지역정신재활치료센터·정신보건상담센터 등 사회적 지지체계 확충에 보다 많은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
근본적인 입법정책으로 정신질환자가 취업, 보험가입 등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이 필요하다. 누구나 정신질환자가 될 수 있다.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격리가 아니라 사회적 포용이다.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임창정 믿었는데…비밀번호 몰라 팔 수도 없다" 동료가수 한숨 | 중앙일보
- 승무원 앞 음란행위…기내 뒤흔든 남성, 'BTS 피처링' 미 래퍼였다 | 중앙일보
- "엄마, 왜 아빠랑 살아?"…아이 그림 속 연기 나는 굴뚝의 비밀 | 중앙일보
- "포르노인 줄"...울산 한복판 '선정성 논란' 광고판 최후 | 중앙일보
- "과거와 많이 다르다"…美기자 자체 핵무장 묻자 尹의 답변 | 중앙일보
- 日무릎, UAE 적, 도청까지…尹 감싸다 일 키운 與 갈지자 해명 | 중앙일보
- 노인들 앞 "n분의 1 드린다"…조희팔 넘어선 다단계 코인 실체 | 중앙일보
- '김정은 벙커' 타격 핵탄두 탑재…한국 오는 美전략자산 정체 | 중앙일보
- '귀한 몸' 흰발농게 노는 줄포만 갯벌, 물 오른 바지락 쏟아진다 | 중앙일보
- 눈병 증상, 전파력 강한 새 코로나 변이, 국내 152건 확인…"면밀히 감시"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