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음식과 약] 봄 미나리 향기, 그 맑고 싱그러운
미나리에는 봄의 향기가 가득하다. 공심채처럼 속이 빈 줄기를 살짝 데쳐 입에 넣고 씹으면 아삭하면서 싱그럽다. 식품공학자 최낙언은 미나리의 맑고 시원한 향기가 피톤치드를 구성하는 물질과 닮았다고 설명한다. 숲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 마음을 정화하는 듯 울려 퍼지는 바로 상쾌한 향기다.
미나리의 이런 강한 향미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많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싫어하기도 한다. 냄새 감각은 유전적 차이가 크다. 진화생물학 박사이며 저술가인 밥 홈즈는 사람의 냄새 수용체가 약 400개이지만 이들 중 30%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다. 미나리를 맛보고 봄의 향기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휘발유 냄새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고수에서 풀 향기를 느끼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비누와 벌레를 연상하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미나리가 사람을 위해 이런 향기물질을 만드는 건 아니다. 미나리에게 향기물질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저항 수단이다. 그래서 산이나 들판에서 자란 돌미나리에는 편안한 환경에서 자란 미나리보다 향이 더 강하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2년 전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아서 화제가 됐던 영화 ‘미나리’에 나온 대사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알고 있을 정도로 인상 깊은 한마디였다. 영화에서 그려낸 것처럼 낯선 이국에서 정착하려는 한국인 가족의 삶에는 고난이 가득했다. 본래 고국을 떠난 이민자의 삶이란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든 뿌리 내리려고 애쓰는 미나리와 비슷하다. 겉으로 보기에 미나리는 그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로만 보인다. 하지만 미나리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변의 위협과 맞서 싸우기 위해 향기 물질을 만들어내고 환경과 씨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미국인의 눈에 먹어 본 적 없는 영화 속 미나리는 생소한 식재료이다. 몰라서 그럴 뿐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당근, 셀러리, 딜, 쿠민, 회향(펜넬)이 전부 미나릿과 식물로 한 가족이다. 인간은 국적을 따지지만 식재료가 되는 식물에 그런 경계란 있을 수 없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지역 식문화마다 다르게 구분해놓았다고 해도 결국 음식이란 인간이 보편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은 게 당연하다.
영화 ‘미나리’ 속 이민 가족의 삶을 보면서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것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그런 보편성 때문이다. 고달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모두 미나리처럼 고난 속에서도 뿌리내리고 삶을 살아간다. 그 가운데 우리가 만들어내는 삶의 냄새가 봄철 미나리처럼 싱그럽고 상쾌한 향기로 느껴지길 바랄 뿐이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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